▲ 정기훈 기자

"정치권에 출마할 생각은 결코 없습니다. 정치에 뜻을 두면 노동운동을 제대로 할 수 없어요. 지금 현장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조직의 분열입니다. 지난해 정치방침으로 인해 겪은 혼란과 분열의 상처들이 혹시라도 재현될까 걱정하고 있어요. 혼란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오직 한 가지, 한국노총과 노동운동만을 중심에 놓고 가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한국노총에 문진국(64·사진) 집행부가 들어선 지 1년이 지났다. 지난해 9월 한국노총은 정치방침을 둘러싸고 조직갈등을 겪다가 이용득 당시 위원장이 사퇴하고 보궐선거를 치렀다.

문 위원장은 "내부갈등을 추스르고 노정관계를 복원하는 데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지만 부족한 점도 있었다"며 "내년 1월 선거에서 다시 한 번 조합원의 평가를 받겠다"고 말했다. 한국노총 임원선거를 앞두고 미리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회관 위원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 지난 1년간 기억에 남는 일을 꼽는다면.

"1년간 몸무게가 6킬로그램이나 빠졌다. 전국 곳곳을 돌며 하루하루 일정을 소화하느라 정신없이 보냈다. 최저임금위원회든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든 노사정 협상이 있는 날이면 결과를 기다리느라 밤을 새우기도 했다.

가장 가슴이 뜨거웠던 날을 꼽자면 4만명 규모의 KT노조가 IT사무서비스노련에 가입했을 때다. KT노조가 19년 만에 한국노총으로 돌아온 것이다. 보람이 컸다."

“조직 내 소통 속 타임오프 협상은 성과”

- '화합형 집행부'를 내걸고 당선됐는데. 조직갈등 해소를 위해 역점을 둔 부분은.

"민주적인 소통을 가장 우선시했다. 단순히 소통을 잘한다고 해서 갈라진 조직이 하나로 묶이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모든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다. 한국노총 위원장으로서 얻게 된 정보들을 산별대표자들과 함께 나눴다. 정보를 독점한 상황에서 소통은 결국 한 방향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근면위 협상 과정에서 산별대표자들과 꾸준히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했기 때문에 아쉬운 결과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성과를 거뒀다고 본다."

하지만 문 위원장은 "조직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과거에 시행했던 중앙집행위원회 인터넷 생중계를 다시 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인터넷 생중계의 장단점이 있다. 조합원 입장에서는 인터넷으로 회의를 직접 보면서 알게 되니까 좋을 수 있다. 하지만 외부에서도 보기 때문에 중집 성원들이 모든 것을 터놓고 얘기할 수가 없다. 오히려 소통이 막히는 것이다."

- 상반기 노정 간 협상을 거쳐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고시와 노동부 매뉴얼 변경이 이뤄졌다. 협상 결과가 현장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나.

"당장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개정하는 게 힘들다면 때려죽여도 타임오프 고시와 매뉴얼을 바꿔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우선 타임오프 한도 고시를 개정해 50인 이하 사업장에 전임자를 둘 수 있도록 했다. 1천인 이상 사업장에는 가중치를 부여했다. 한 걸음 진전된 것이다. 중간 단계인 50인 이상에서 1천인 이하 사업장은 노동부 타임오프 매뉴얼 변경을 통해 활력을 찾도록 했다. 아직 단체협상이 진행 중인 곳이 있기 때문에 현장에 미치는 영향은 추후 파악을 해 봐야 한다."

“현재 시간제 일자리 차별부터 해결해야”

올해 5월 노사정은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일자리협약을 맺었다. 일자리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질 낮은 단시간 일자리 양산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협약의 당사자로서 한국노총은 그 역할과 책임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문 위원장은 "장시간과 저임금을 넘어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용률 70%는 결코 정부 의지만으로 될 수 없다. 정부도 잘 알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공약을 지키려면 협약의 파트너인 한국노총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 고용률 70%는 장시간과 저임금이라는 과제를 넘어서지 못하면 아무 의미 없는 전시행정에 불과하다.”

문 위원장은 특히 "정부가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자신이 있다면 현재 차별받고 있는 학교비정규직을 포함한 시간제 노동자에 대해 반드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며 "그래야 제대로 된 성적표를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정부가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하고 있는데. 어떻게 전망하나.

"정부는 연공급을 성과급·직능급·연봉제 같이 경영효율을 극대화하는 임금체계 도입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한다. 임금피크제 같이 임금을 감액하는 수단을 만들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복잡한 임금체계를 단순화하고 안정성을 담보하는 작업이다. 모든 임금은 노동의 대가다. 법정 소정근로시간을 근무했을 때 받는 임금은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 대법원이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한다고 판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임금피크제의 경우 기존 임금수준보다 불리하지 않게 노사가 합의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노동자들이 퇴직금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보호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천당과 지옥 젓가락'

- 박근혜 대통령을 평가해 달라. 더불어 청와대 노동전담팀 구성을 요청한 이유는.

"지난달 27일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를 찾은 박근혜 대통령이 ‘천당과 지옥의 젓가락’ 이야기를 했다. 천당과 지옥 모두 아주 기다란 젓가락을 쓰는데, 지옥에서는 제 입에만 넣으려다 굶어 죽고 천당에서는 서로의 입에 넣어 줘서 살았다는 얘기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노사 간 균형을 맞춰 달라고 주문한 것이다. 노동자를 생각하고 있구나 싶었다.

청와대 노동전담팀 구성을 요청한 것은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서다. 현재 한국노총과 소통할 수 있는 라인이 없다.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실 고용노사비서관과는 다른 별도의 노동전담팀을 만들어 노동계와 언제라도 소통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 아직 구체적인 프로세스가 나오지 않고 있다.

한국노총은 올해 대의원대회에서 '개입과 견제'를 사업기조로 정했다. 정부가 강조하는 고용의 문제에 대해 적극 개입해서 우리의 의견을 관철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처럼 친사용자적으로 흘러간다면 견제를 넘어 강력한 투쟁으로 맞설 생각이다."

- 공무원노조·전교조 사태와 관련해 민주노총과 공동대응할 생각은 없나.

"아직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을 만나 보지 못했다. 통화도 해 본 적이 없다. 전교조나 공무원노조도 마찬가지다. 만나서 공유한다면 뜻을 같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회원조합대표자회의나 상집회의에서 논의해 보겠다."

- 올해 8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현장순회를 했는데. 현장 분위기는 어떤가.

"현장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조직의 분열이다. 정치프레임에 휩쓸리거나 개인의 이해관계에 얽매인다면 조직은 다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정치에 한눈팔면 제도개선도 할 수 없다. 정치방침을 둘러싼 갈등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정치적 중립을 지킬 것이다."

"노조법 개정, 끈질기게 요구해야"

- 한국노총은 노조법 개정을 위한 총력투쟁을 하반기 사업계획으로 정했다. 하지만 정기국회에서 노조법 개정안 처리가 불투명해 보이는데.

"노조법에 나오는 타임오프 대상업무 규정을 아예 없애야 한다. 김경협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노조법 개정안이 노동계 입장에서는 최선의 안이다. 여야를 움직이면 노조법 개정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행히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도 노조법 개정안을 냈다. 정기국회에서 노조법이 개정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노조법 개정 투쟁은 노동운동의 숙명이다. 노동 문제가 언제 한칼에 해결된 적 있었나. 끈질기게 요구해야 한다."

- 내년 1월 임원선거가 치러진다. 재선에 도전할 생각인가.

"지난 임기 동안 못했다면 스스로 조용히 물러날 것이다. 충분히 노력했다면 평가를 받고 싶은 게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1년간 조직의 안정화와 노정 간 대화 복원, 노동기본권 확대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3년은 대단히 중요한 시기다. 복원된 조직력으로 힘 있는 사회적 대화를 추진하고 싶다. 문진국은 말도 잘 못하고 우유부단하다는 평가도 있다. 전투성이 없다는 비판도 있다. 다 낭설이다. 노동자로서 투쟁할 때는 과감하게 나선다. 모든 것을 공유하고 설득해 이끌어 가는 중용의 리더십이 내게 있다. 그것이 문진국의 색깔이다. 내년 1월 임원선거에서 다시 한 번 조합원들의 평가를 받고 싶다."

글=김미영 기자
사진=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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