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권
새로운사회를
여는연구원
부원장

예상했던 대로다. 정부는 내년 예산안 발표를 통해 경제정책의 초점이 경제 활성화임을 명확히 했다. ‘경제활력 회복과 성장 잠재력 확충’을 첫째 과제로 내세운 것이다. 정책효과로 성장률을 얼마나 끌어올리려고 하는지 명시적으로 밝힌 대목은 없으나 내년 성장률을 3.9%로 잡았으니 기대치를 높게 잡고 있음은 분명하다. 다만 올해는 총지출 증가율이 7.2%나 됐는데도 3% 미만의 성장률밖에 달성하지 못할 것인데, 내년에는 재정지출을 2.5%밖에 늘리지 않고서 얼마나 성장률 상승에 기여할지 의심스럽다.

또 하나 짚어 둘 것은 지난해 성장률을 예상할 때 국제통화기금(IMF)의 올해 세계성장률 전망치 3.9%를 참고해 경제성장 전망치를 4%로 잡았다가 낭패를 봤다는 사실이다. IMF는 올해 성장률을 3.1%로 대폭 낮췄고 우리 역시 2.7%로 더 낮출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IMF는 내년 세계성장률을 3.8%로 잡고 있다. 우리는 성장률을 3.9%로 예상했다. 잘못하면 똑같은 과대평가와 하향조정이 그대로 반복될 우려가 있다.

그런데 몇 가지 예산계획 숫자나 과도한 전망에 앞서 주목해야 할 문제가 있다. 내년 예산안을 경제 분야로 국한했을 때 가장 큰 문제점은 성장 패러다임이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5년째 계속되는 대침체로 인해 과거식 성장전략이 더 이상 통하기 어려워졌다. 정확히 1년 전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앞으로 산업화 시대의 성장 패러다임, 민주화 시대의 분배 패러다임을 넘어 새로운 변화의 시대를 열어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첫 예산안이라고 할 내년 예산계획안에 나타난 성장전략은 ‘산업화 시대의 성장 패러다임’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우선 ‘투자 촉진, 수출 역량 강화’라는 이름하에 수출 의존형 성장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다.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의 무역의존도가 100% 전후를 오갈 정도로 더욱 커졌고, 2011년부터는 역사상 처음으로 수출규모가 민간소비 규모를 추월했다.

이제는 국민의 소득기반을 확대해 구매력을 끌어올림으로써 내수에 힘을 실어야 한다. 소득 재분배를 통해 불평등을 완화하는 효과를 얻게 해 주면서, 동시에 내수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전략이다. 성장과 분배의 이분법을 넘어 효율과 형평성을 동시에 달성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성장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이런 방식이 고용의 양과 질을 제고하면서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부는 수출 진흥정책과 외국인 투자 유치정책이라고 하는 과거의 정책을 그대로 답습해 내년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배치했다. 하다못해 수출 주도형 경제의 상징으로 알려진 중국조차 내수 주도형 전환을 서두르는 마당에 우리는 언제까지 손 놓고 있을 것인가.

게다가 건설경기 부흥을 통한 경제활성화 정책 기조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4대강 사업을 제외한 지난 5년 동안의 SOC 평균 투자규모 22조4천억원보다 많은 23조3천억원을 내년 예산으로 편성했다고 정부 스스로 말하고 있을 정도다. 이는 부동산 경기부양에 집착해 왔던 최근의 동향에서 이미 예견됐던 것이긴 하다. 부동산 경기를 부양한다면서 취득세 영구 인하 등으로 조세 수입을 줄이고, 거꾸로 건설투자는 늘리는 식의 성장방식도 전형적으로 과거의 것이다.

다음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고려가 매우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21세기 경제성장은 단선적인 물질적 성장을 극대화시켜 왔던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받고 있다. 과도한 에너지 사용이 한계점에 도달했고 지구의 환경과 생태가 점점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지속 가능한 성장’이 G20을 포함한 세계적인 주요 회의의 가장 중요한 의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 예산안을 보면 ‘창조경제 기반 확충’이나 ‘미래 먹거리 창출’ 어디에도 이와 관련한 고려가 없다. 에너지체제 전환을 위한 계획이나 저탄소, 친환경 산업구조를 위한 계획이 전혀 없다. 아예 환경예산으로 독립된 항목은 올해 추경예산 대비 절대 금액이 감소하기도 했다. 지속가능성이 고려되지 않은 창조경제나 미래 성장산업은 앞으로 점점 더 정당성과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는 점을 현 정부는 거의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박근혜 정부에서 나온 첫 예산계획안에는 여전히 수출 중심 경제·건설 주도 경제·환경 없는 성장이라는 과거 방식에서 달라진 점을 찾기 어렵다. 성장 패러다임의 전환은 하면 좋고 안 해도 무방한 그런 성격의 것이 아니다. 패러다임이 전환 없이 성장 자체가 어렵게 될 수 있다. 더 이상 고성장을 뒷받침할 대외적 수요가 계속되기는 어렵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도 부동산 경기를 과거처럼 되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태와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성장도 언제까지 용인될 수 있겠는가.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 (bkkim21kr@naver.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