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신
한국비정규
노동센터 소장

케이블방송 티브로드 노동자들의 파업이 26일로 23일째를 맞는다. 정당하고 소박한 요구를 내걸고 2천일 이상 길거리 천막농성을 하고 300일 가까이 고압전류가 흐르는 송전철탑 고공농성을 감내했던 비정규직 투쟁을 떠올리면서 또 하나의 장기투쟁 사업장이 생기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물론 티브로드 노동자들의 결의가 높고 탄탄한 단결력을 유지하고 있어 장기화되지는 않을 것이란 믿음이 크다. 하지만 태광그룹의 본색이 드러나는 현 상황에서 이후를 예단하는 것은 대단히 조심스럽다. 중요한 국면을 맞고 있는 티브로드 파업투쟁과 관련해 실질적인 사용자인 티브로드 홀딩스의 역할이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되고 있다.

한국 사회 양극화의 핵심 원인은 비정규직 문제다. 비정규직 문제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노동의제라는 것은 이미 사회적 합의에 가깝게 공론화돼 있다. 특히 사용자 책임을 불법·탈법·편법 양상으로 회피하는 온상이 돼 온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연쇄적인 고리로 이어진 전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사회적 공감대도 형성돼 있다. 오죽하면 노조 결성이 가장 힘겨운 간접고용 비정규직 당사자들이 노조 조직화를 통해 투쟁으로 나서고 있겠는가. 불법적인 다단계 하도급구조와 비정한 남한 자본주의 먹이사슬의 최말단에서 아틀라스처럼 온몸으로 버티는 비정규 노동자들. 이들의 절박한 생존권 투쟁 자체가 더 이상 비정규직 문제를 방치할 수 없는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것을 방증한다.

지금까지의 사실관계만 봐도 이미 명백하다. 도급관계인 협력업체 사장(센터장)을 본사(티브로드 홀딩스)가 내부 발탁·배치전환·외부 영입하는 등 사실상 계열사로 운영하고, 센터장과 케이블방송 기사들의 임금을 활동비 명목으로 본사가 직접 책정해 지급했다. 또 센터 노동자들에게 실적목표제를 직접 시행하면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센터 부진인력 퇴출제도를 직접 지시하고 시행해 명백한 위장도급임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원청 사용자인 티브로드 홀딩스가 실질적인 사용자이고 센터장들은 아무런 권한과 책임도 없는 전형적인 바지사장이자 허수아비임이 숱한 증거와 증언을 통해 밝혀졌다. 티브로드 파업투쟁 기간 내내 “위장도급 NO! 직접고용 YES!”가 핵심적인 요구가 되고 있는 까닭이다.

사태가 이러함에도 책임 당사자인 티브로드는 애초부터 일당 20만원을 받는 대체인력을 60일간 투입한다는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업계를 선도해야 할 케이블방송업계 1위 업체로선 한심한 행태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합리적으로 수용해 파업 장기화로 인한 노사관계 파탄을 막고,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파업 당사자들은 물론 케이블방송 신규가입 등 폭주하는 고객 불만을 해결해야 할 티브로드는 대화에도 응하지 않는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결국 티브로드 노동자들의 힘만으로는 승리하기 쉽지 않은 현실을 보면서 사회적 연대투쟁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절감한다.

1천만 비정규 노동자들의 한숨과 눈물이 넘쳐나는 시대, 사라져 버린 사용자 책임을 찾기 위해 가장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던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들이 용기 있게 떨쳐 일어섰다. 티브로드·삼성전자서비스·현대자동차·인천공항 등 민간과 공공부문을 막론하고 헌법에 정한 최소한의 노동기본권을 되찾기 위해 비정규직 당사자들이 나선 것이다.

노조 탄압과 무노조 경영으로 악명 높은 태광그룹과 삼성그룹 비정규 노동자들의 인간선언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 사건이다. 나쁜 일자리 양산과 남용을 막기 위해 슈퍼갑인 재벌그룹의 횡포를 제어할 수 있는, 현장으로부터의 조직적인 힘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정당한 사용자 책임을 묻고 노동자로서 인간다운 생활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은 그들만의 몫이 아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와 현대차 사내하청 불법파견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달려간 희망버스가 약육강식과 승자독식, 그리고 유전무죄로 얼룩진 천민자본주의 한국 사회에서 가장 먼저 되찾아야 할 가치가 연대와 나눔이란 것을 알려 준 바 있다.

지금 전개되고 있는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을 응원하면서 참신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힘을 보태는 것은 노동의 가치를 아는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다.

마침 티브로드 2차 희망지하철이 다음달 11~12일 이틀간 발진한다. 불법·비리 재벌 태광그룹에 맞서 강력한 파업투쟁으로 당당하게 맞서고 있는 케이블방송 비정규 노동자들과 손을 맞잡고 위장도급을 근절하고 원청 사용자인 티브로드가 법적·사회적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희망지하철 탑승을 제안드린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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