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영 공인노무사

노동법은 자본주의체제 안에서 노동인권이 확장돼 온 흔적의 일부다. 단어는 낯익으나 그 개념은 명확하지 않은 노동인권을 거칠지만 속 시원하게 정의해 보자. 좁게는 노동법과 헌법에서 정한 노동자의 법적 권리를 뜻하고, 넓게는 자신의 노동으로 가치를 생산하는 자들의 권리를 말한다. 전자는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노동법 영역의 실체적 권리, 후자는 인간의 ‘노동’과 관련한 권리를 뜻한다고 정의할 수 있다.

‘노동자’ 중심으로 해석하고 입법화한 노동법은 계약의 주체인 사용자와 노동자의 관계에 관심을 둔다. 이 경우 노동법의 역할은 계약의 주체인 노동자와 사용자 두 당사자의 권리와 의무를 수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전통적이고 통설적인 노동법 해석과 관련이 깊다.

노동자와 사용자의 계약이 노동법에 의해 수정돼야 하는 이유로는 노동자가 사용자에 비해 경제적으로 약자이거나 종속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자와 사용자 관계에만 집착하는 노동법은 첫째, 노동자가 사용자의 지휘·명령에 종속된 상태에 놓여야 하는 상태를 평등해야 하는 시민권의 질서를 통해 설명하지 못하면서도 지휘·명령의 근거에 의문을 갖는 것을 불편해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둘째, 노동자와 사용자 외에 노동자의 노동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주체들의 책임을 쉽게 감춘다. 노동자의 노동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주체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숨겨진 사용자, 그리고 소유자가 있다. 그래도 숨겨진 사용자는 계약의 주체로 끌어들여지기도 해 때로는 직접적인 사용자로서 때로는 노동권의 일부에 영향을 미치는 제한적 사용자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노동자에게 어떠한 지휘·명령도 행사하지 않는 사업의 소유자는 노동법상 주체가 아니므로 책임을 물을 여지가 없다. 사업을 통해 발생되는 이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유자는 사업의 영위 여부를 결정하는 권력을 소지했지만 노동법 영역의 권리의무 주체가 아니다.

얼마 전 한 지방자치단체가 소유한 사업에 대한 노동법 실태조사를 진행하면서 다시 느꼈던 의문이다. 왜 지자체는 위탁을 좋아할까. 왜 지자체 위탁사업 종사자는 언제나 고용불안에 시달려야 할까.

만 60년이 된 근로기준법을 보면서 이제는 1차원적인 계약관계에 집착하는 노동법이 큰 틀에서 변화를 준비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노동법을 삐뚤게 보자. 혁명론이 아닌 노동법상 보호돼야 할 노동자가 누군인지 다시 생각해 보자. 남이 혹은 내가 나를 노동자로 보든 안 보든, 내가 타인에게 지휘·명령을 받든 안 받든, 내가 하는 ‘노동’이 어떠한 사업에 기여하고 그 사업에 관여해 있는 사람들에게 경제적·비경제적 가치를 나눠 줬다면 어떠한 방식으로든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1차원의 명시적 계약을 넘어 권리를 주장하는 본 논리는 브레이크가 없을 경우 무한대로 확장되면서 도덕적 요구에 머물러 법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내 노동에 대한 가치에 책임을 느껴야 하는 타인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우리는 그 한계선을 ‘사업’이라는 개념 속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학자가 아닌 정당이나 노조 등에서 사업과 관련한 노동법 이슈를 만들어 내는 것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 만큼 ‘노동’이 있는 진보들이 기존 판에서 전전긍긍하지 말고 새 판을 짜보는 것이 어떨까.

그래서 근로자개념 확장도, 사용자 책임의무도 내 장기판에서 화끈하게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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