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노조

"전력산업의 경우 다른 나라들이 걸어간 길을 따라가지 말고 한국에 맞는 길을 찾아가야 한다."(다그데위렌 영국 하트퍼드셔대 교수)

일찍이 전력산업 부문에 시장화 정책을 도입한 미국·영국·뉴질랜드·일본의 전력 전문가들이 최근 전력산업 시장경쟁체제 도입 확대 정책을 펼치고 있는 한국정부에 신중할 것을 주문했다. 강창일·오영식 민주당 의원과 여상규 새누리당 의원, 전력노조(위원장 김주영) 공동주최로 지난 6일 오전 서울 코엑스 콘퍼런스룸에서 열린 '전력산업 정책방향 모색을 위한 국제 심포지엄'에서 이 같은 의견이 잇따랐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훌야 다그데위렌(Hulya Dagdeviren) 영국 하트퍼드셔대 교수·오카자키 노부카츠(Okazaki Nobukatsu) 일본 전국 전력관련산업노조총연합 사회산업정책국장·고프 버트람(Geoff Bertram) 뉴질랜드 빅토리아대 경제학 수석교수·칼 우드(Carl Wood) 미국 공공노조 규제정책국장·송유나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이 발표자로 나섰다. 이들은 자국의 전력산업 시장화 정책 사례와 문제점에 대해 발표한 뒤 "전력산업 경쟁체제 도입은 결국 요금인상과 공급안정성 훼손으로 이어진다"고 입을 모았다.

◇"영국, 노년층 연료빈곤 문제 심각"=과거 영국의 전력산업은 잉글랜드·웨일스 지역 기준으로 정부 소유 영국중앙발전국(CEGB)이 발전과 송전을 독점하고, 12개 지역위원회가 배전과 판매를 독점하고 있었다. 그러다 80년대 들어 대처정부는 주요 국영기업을 민영화하기 시작했다. 전력산업은 89년 전기법이 법제화된 직후인 90년 3월 민영화됐다.

민영화 초반에는 업체 간 경쟁으로 전력 도매가가 인하되고, 생산성이 향상됐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전기요금이 인상되기 시작했다. 다그데위렌 교수는 "자유화되고 경쟁적인 시스템에서 소비자들은 전력공급업체를 자유롭게 선택·교체할 수 있게 됐지만 민간 발전사업자들은 이로 인한 수익의 불안전성 때문에 발전소 투자를 꺼리게 됐다"며 "안정적인 에너지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요금이 비싸졌다"고 말했다. 이어 "요금이 오르면서 은퇴한 노년층의 연료빈곤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정부에 "전력산업의 경우 (한국은) 다른 나라들이 갔던 길을 따라가는게 아니라 한국에 맞는 길을 찾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민영화하려면 강력한 규제 있어야"=뉴질랜드는 영국과 같이 수직통합적 공기업 독점체제를 민간경쟁체제로 전환했다. 고프 버트람 교수는 "당시 신자유주의자들은 전력산업 시장화 정책으로 새로운 혁신과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이 넓어질 것이라고 기대했고, 실제 성과도 있었다"며 "그러나 정부가 규제를 하지 않으면서 발전사업자들은 비용절감 이익을 소비자들과 공유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버트람 교수는 "전력사업 개편은 소비자들에게 이익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민영화를 한다면 강력하고 효과적인 규제를 동반해야지만 부당이익과 바가지 요금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뉴질랜드 국민의 80%는 민영화에 반대하고 있다"며 "뉴질랜드도 한국(한전)처럼 전력구매자를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소매·발전 전면 자율화를 골자로 한 전력산업구조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오카자키 국장은 "정치권은 원자력 없이도 전력 자유화를 실시하면 전기요금이 낮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것 같다"며 "과연 그런 마법 같은 방법이 정말 존재하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미 외국에서 전력산업 규제완화에 따른 폐해가 나타나고 있다"며 "외국의 사례에서 교훈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력산업 민영화가 구조조정과 노조파괴로 이어진 사례도 발표됐다. 칼 우드 국장은 "미국의 민간발전사들은 이윤을 내기 위해 노동력을 줄이는 기술적 프로그램을 밀어붙였다"며 "스마트 미터·스마트 그리드가 검침원을 대신했고, 발전소를 폐쇄하는 방법으로 노동자들을 해고했다"고 말했다. 우드 국장은 또 "반국민 어젠다를 가지고 있는 공격적인 재벌 기업들을 누르기 위해서는 우리부터 연합하고,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과 연맹을 맺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