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훈 철도노조 지도위원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번 주부터 우리 사회 대표적인 공공부문 중 하나로 서민의 발이자 민족의 애환을 싣고 달리는 철도 이야기를 연재하게 된 철도노동자 김영훈입니다.

누구나 어렸을 때 한 번쯤은 장난감 기차놀이를 해 봤을 것입니다. 지금은 전철로 매일 출퇴근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수학여행이나 입영열차의 추억처럼 철도는 우리 생활 가까이에 있지요. 하지만 일반인들이 모르는 것도 많은 분야가 철도입니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불어닥친 신자유주의 광풍 속에서 공공부문 민영화를 둘러싸고 대규모 파업이 연례행사처럼 반복되고 노정충돌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왜 노동자들은 정부가 바뀔 때마다 파업을 하는 것이고, 왜 정부는 출범할 때마다 철도 민영화를 들고나오는 걸까요. 기존 언론에서는 파업 피해와 주동자 처벌, 엄정대처 소식만 내보낼 뿐 정작 시민들은 답답할 때가 많았을 것입니다.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자본주의 태동과 함께 근대국민국가가 형성됐고 국가의 기원이 전쟁과 혁명이라면 철도는 자본주의·국민국가·전쟁과 혁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기제였습니다.

철도노조는 노동계급 탄생 초기단계부터 결성돼 현재까지도 각 나라 노동운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유럽과 일본을 위시한 철도강국들과 미국과 중국의 철도산업 역사와 동향을 살펴보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제3세계 사례를 비교분석하는 것은 철도라는 창을 통해 또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제 철도와 사회, 철도와 국가, 철도와 시장을 둘러싼 여행을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지난 주말 대구역에서 발생한 열차사고부터 얘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첫 연재부터 사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조금 우울하지만 사고 원인과 대책을 살펴보는 것은 철도 특성을 알 수 있는 유의미한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따지고 보면 철도 역사는 사고와의 전쟁이었고 항구적인 안전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투쟁의 날이었습니다.

이번 사고는 지난달 31일 오전 7시15분께 대구역에 정차하다 서울방면으로 출발한 무궁화호열차가 대구역을 무정차 통과 중이던 KTX 고속열차와 접촉해 무궁화호 기관차와 KTX 객차 9량이 탈선해 하행선까지 지장을 줬고, 같은 시간 대구역에 진입하던 부산행 KTX 고속열차가 2차 접촉해 탈선한 사고입니다. 이 사고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열차운행이 빈번한 경부선 상하행선이 완전 불통돼 주말 열차를 이용하던 수많은 승객들에게 큰 불편을 줬습니다. 소수의 경상자를 제외하고 큰 부상자가 없었다는 것은 천만 다행스러우나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사고가 발생한 것입니다.

사고 원인과 대책에 대해 현재까지 확인된 몇 가지 사실을 중심으로 사고를 재구성해 보겠습니다. 무궁화호열차 여객전무는 자신이 탑승한 열차의 진행을 지시하는 것으로 신호기를 오인해 기관사에게 발차전호를 했습니다. 기관사 역시 착각해 출발하지 말아야 할 열차를 출발시켜 정상적으로 진행하고 있던 KTX 고속열차를 접촉한 것이 1차적인 원인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와 코레일은 지금까지 사고 원인을 정밀조사 중이라는 전제하에 신호체계나 열차운행 시스템의 문제는 아니고 여객전무와 기관사가 신호를 오인해 발생한 대표적인 ‘인재’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반면 철도노조는 이번 사고가 심각한 몇 가지 구조적 문제로부터 기인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고 원인에 대한 각 진영의 시각 차이는 대책에 있어서도 극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는데요. ‘인재’를 중심으로 사고를 분석하면 그 대책은 ‘신상필벌’이나 ‘복무기강 확립’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됩니다. 실제로 국토부는 사고 원인에 대해 ‘기관사와 승무원 등이 그동안 철도노조의 민영화 반대 집회 등에 동원되면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함으로 인해 발생했을 가능성에도 주목’한다고 하면서 느닷없이 연봉이 얼마니 하면서 사고와 관련이 없는 대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고는 마주 오는 열차와의 정면충돌은 물론 같은 방향으로 병행해 주행하는 열차끼리도 접촉해서는 안 되는 열차안전시스템의 중대한 몇 가지 결함에서 ‘잉태’되고, 열차안전 최후의 보루인 기관사와 열차승무원·관제사 등 철도노동자들의 ‘착각과 오인’이 결합돼 발생한 사고입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착각을 ‘휴먼 에러’라고 하는데요. 이러한 휴면 에러를 근본적으로 차단해 줄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철도정책의 핵심입니다.

다시 말해 고의로 누군가가 열차사고를 내려고 해도 다른 열차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시스템을 구축할 때 철도안전은 항구적으로 확보될 수 있습니다. 이번 사고의 모든 책임당사자로 지목되고 있는 무궁화호 기관사는 코레일에서 우수기관사를 선발하는 ‘열차운전경기’에 출전할 정도의 베테랑 기관사였습니다. 출발을 지시한 여객전무는 지역본부의 사고와 안전을 담당하는 ‘안전처’ 소속이었습니다.

이들이 국토부의 주장대로 ‘집회에 동원돼 휴식이 부족한 상태의 승무’로 인해 착각을 한 것일까요. 아니면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있었던 것일까요. 앞으로 독자 여러분과 함께 하나하나 분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철도노조 지도위원 (krw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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