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울산저널 편집국장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오염이 다시 문제가 되는 가운데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해 방사능 정밀검사 재료비로 책정한 예산을 장비구입비로 전용하는 바람에 수입 및 국내유통식품 3천800여건의 방사능 검사를 못했다.

당초 방사능 검사에 사용할 재료비는 8억원이었으나 실제론 3억원도 채 쓰지 못했다. 5억원어치에 달하는 방사능 오염 의심 농수산물을 사지 못했다. 대신 식약처는 이 돈을 검사장비 구입에 전용했다.(국민일보 9월3일 1면)

그런데 장비구입 시기도 늦어져 방사능 오염 식품 방역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장비 대부분을 회계연도 종료 직전인 지난해 12월에 샀기 때문이다. 식약처는 플루토늄과 스트론튬을 측정하는 장비 18대 가운데 15대를 지난해 말 뒤늦게 사는 바람에 일본 원전사고가 일어났던 2011년 3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20개월 넘게 방사능 방역에 허점을 드러냈다.

물론 돌발적으로 일어난 원전사고 때문에 미처 장비를 갖추지 못한 식약처가 장비 추가 구입 예산을 편성하지 못한 점은 이해할 만하고, 장비의 필요성도 높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방사능 의심물질 구입에 쓸 돈은 이리 전용해선 안 된다. 특히 일본 방사능 오염 문제가 다시 불거져 국민들의 불안이 높아지는 때에 이런 일이 벌어져 국민들은 다시 불안해졌다.

이런 사실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민현주 새누리당 의원이 식약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른 것이다. 예년 같으면 8월 말부터 이런 유의 잘못된 행정에 대한 통계기사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그 이유는 국정감사를 앞두고 각 의원실이 정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들을 하나둘씩 공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는 9월 초가 돼도 이런 기사를 신문지면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의혹을 놓고 민주당이 서울시청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에 들어가 여야 대치가 한창인 데다,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을 둘러싼 논란 또한 모든 의제를 삼킬 만큼 파괴력이 컸기 때문이다.

정치부 기사들도 장기화하는 여야 대치 속에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천막에서 잠자고 아침에 목욕탕도 안 가고 1호선 시청역 화장실에서 얼굴을 씻는 모범적인 농성 수칙을 이어 가고 있다는 기사를 쓰거나, 민주당 각 의원실 보좌관들이 천막농성과 국감 준비 등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는 가십성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그만큼 한국 정치는 다이내믹하다.

그렇지만 이런 대치정국 관련 기사가 국민들의 삶과 직접 관련이 있어 보이진 않는다. 시민들이, 혹은 시민단체가 몇 달 동안 행정기관과 씨름해야 겨우 얻을 수 있는 각종 행정통계들을 쉽게 받아 내 국정감사에서 각 부처 장관들을 질타하는 야당 의원들의 모습을 보고 국민들은 잠시 시원함을 얻었다.

물론 국감 뒤에도 문제점을 계속 추적해 잘못을 고치려는 의원들이 드물어 용두사미에 그치는 일이 많지만 감사 받는 정부기관들은 잠시라도 긴장할 수밖에 없고, 반복되는 잘못을 고치려는 개선의 노력도 보여 왔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국감을 제1야당을 위해 차려진 무대라고 한다. 물론 의원실 보좌관들에겐 무덤처럼 힘겨운 순간이지만 ‘원내외 병행투쟁’이란 원칙을 잃지 않고 야권이 가을 국회를 제대로 준비했으면 한다. 그래야 1년 한 번 쏟아져 나오는 통계의 홍수 속에서 기자들이 신이 나서 지면을 채울 게 아닌가.

국민들은 국정원과 통합진보당 관련 뉴스에 점점 지쳐 가고 있다.



울산저널 편집국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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