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애림
전국비정규직
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암 투병 중이신 팔순의 아버지께서 상태가 안 좋아 보름 새 두 번이나 보라매병원 응급실 신세를 졌다. 병원의 인력부족 문제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직접 겪어 보니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아버지께서 몸을 움직일 수 없어 119 구급차로 응급실에 도착했는데 환자를 옮길 이동침대가 없어 119 대원들이 10분 이상 떠날 수가 없었다. 응급실이니 비상 상황이 잦을 테고 기기나 물품이 부족할 수 있다고 해도 구급차로 실려 온 환자를 옮길 이동침대도 없고 그걸 찾아볼 인력도 없어 결국 청원경찰이 병원을 뒤져서 찾아 주는 현실이란.

그 상황에서 환자와 보호자가 처음 맞닥뜨리게 된 예진 간호사는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기도 전에 먼저 벽에 붙여 놓은 안내문을 읽으라고 했다. 응급실로 온 환자 곁에 항상 보호자 1인이 상주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응급 상황이니 의료진이 진찰을 하기 위해 환자의 상태를 잘 알고 있는 보호자가 곁에 있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상주’해야 한다는 지시사항은 뭔가. 응급실에서 24시간을 상주하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됐다. 환자의 대소변도 받아 내야 하고 환자의 상태를 계속 살피고 검사나 투약을 보조하기 위해 보호자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잠깐. 이건 보호자가 아니라 의료진이 해야 할 역할 아닌가. 그런데 의료진, 특히 간호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니 보호자가 옆에 없는 환자는 어쩔 수 없이 방치되다시피 하는 것이다. 피곤에 지친 얼굴로 식사와 휴식도 갖지 못한 채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을 보고 있자니 문제를 제기하기가 곤란했다. 하지만 앉을 의자도 부족한 응급실에서 상주해야 하는 보호자의 불편도 결코 작지는 않았다.

병원에서 화가 절정에 이른 때는 아버지께 덮어 드릴 담요를 구할 수 없을 때였다. 병원이라 그런지 건강할 사람도 추위를 느낄 정도로 냉방기가 돌아갔다. 추위로 끊임없는 고통을 호소하는 아버지 때문에 계속 덮을 것을 요청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담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응급실로 실려 오는 환자나 보호자가 적절한 준비를 하고 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데도, 환자의 체온 유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얇은 모포라도 얻기 위해 그것도 보호자들끼리 눈치경쟁을 벌여야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응급실의 거의 모든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추위로 벌벌 떨면서 한 나절 혹은 하루를 버티고 있는데도 시립병원에 담요마저 제대로 구비돼 있지 않다니. 여기서 나의 분노가 폭발했다. 인력부족 문제가 단시간에 해결될 수 없다면 환자에게 필요한 물품이라도 제대로 갖춰 놔야 하지 않는가. 이건 시립병원이 환자보다 돈벌이에만 혈안이 돼 있다는 방증이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보라매병원을 담당하는 서울시 담당자에게 민원을 제기했다. 전화통화는 친절하게 받아 줬지만, 2주 뒤 다시 찾은 보라매병원 응급실에는 여전히 담요가 없었다.

이런 상황은 보라매병원뿐만 아니라 아마도 대부분의 병원에서 보게 되는 풍경일 것이다. 왜 그런지 우리는 입원한 환자 곁에서 보호자가 간병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보호자가 할 수 없으면 간병사를 고용해서 환자를 돌보는 일을 감내하고 있다. 그러나 잠깐만.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체위를 변경하고, 검사와 투약을 보조하고, 대소변을 받아 내고 옷을 갈아입히고 씻기는 모든 행위는 치료의 일환이다. 따라서 이는 병원에서 필수적인 의료서비스로 제공해야 하는 일이고, ‘국민’건강보험제도를 갖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건강보험 급여로 제공돼야 마땅한 일이지 환자와 보호자가 추가로 고통과 비용을 감내할 일은 결코 아니다.

그리고 이런 고통과 비용부담의 근저에는 병원의 인력부족 문제가 깔려 있다. 의사와 간호사가 부족하니 필수서비스인 간병이 환자와 보호자의 추가부담으로 전가되는 것이다. 최근 보건의료노조가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노동자 10명 중 6명(61.5%)이 “인력부족 때문에 환자들에게 필수적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담요 한 장을 얻지 못했던 보라매병원에서, 이송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이 ‘생활임금 보장’ 등을 적은 작은 피켓을 이동침상에 붙여 놓고 일하는 모습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지켜봤다. 이들은 보라매병원이 아닌 하청업체에 고용돼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이다. 서울시가 주인이고 서울대병원이 위탁운영하는 시립 보라매병원은 수년간의 리모델링으로 하루 외래환자수가 3천명을 넘는 외적 성장을 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일하는 정규·비정규 노동자들은 인력부족과 중간착취로 살인적인 저임금·중노동·장시간 노동에 신음하고 있다. “이윤보다 생명을”이라는 요구는 병원산업에서 적절한 인력 확보와 노동권 보장으로부터 현실화할 수 있을 것이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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