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경
영등포산업선교회
노동선교부장
(전 이랜드일반노조
 사무국장)

“현재까지 해고되지 않은 상태에서 파업투쟁을 가장 오래 한 것은 이랜드(510일)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골든브릿지투자증권 동지들이 그 기록을 깰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저는 얼마 전부터 골든브릿지증권 동지들이 이 기록을 깨지 말고 승리하기를 매일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무금융노조 골든브릿지증권지부 파업 485일째이던 지난달 21일 신학생들과 함께 본사 앞 천막농성장 앞에서 기도회를 하면서 제가 했던 말입니다. 이 말을 듣는 조합원들 표정이 편치 않아 보였습니다. ‘괜한 말을 했나….’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기도회가 끝난 후 준비해 온 냉커피를 함께했습니다. 그때 한 조합원이 가까이 오더니 이런 말을 했습니다. “꼭 기록을 깨지 않도록 계속 기도해 주십시오.” 간절했던 그 선한 눈빛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시계를 5년 전으로 돌려 봅니다. 2008년 11월1일 이랜드 투쟁 500일 문화제를 했던 날입니다. 11월이라 다시 두꺼운 잠바를 꺼내 입었습니다. 또다시 추운 겨울을 길거리에서 보내야 하나, 막막한 생각이 엄습해 왔습니다. 상황은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희망을 살리기 위해 자전거를 60여대 빌려 자전거 행진을 했습니다. 홈에버 상암점 앞에서 출발해 홈에버의 새 주인이 된 홈플러스 영등포점까지 자전거마다 우리의 염원이 적힌 작은 깃발을 꽂고 바람을 갈랐습니다. 그리고 밤늦게까지 500일 문화제를 이어 갔습니다. 우리가 만들었던 희망은 열흘 만에 완전하진 않지만 파업 마무리로 이어졌습니다.

일찍부터 찾아온 무더위에 지친 7월2일 골든브릿지증권 노동자들 거의 전원이 ‘노동자 품’이라는 노동자 치유 프로그램을 위해 제가 일하고 있는 영등포산업선교회로 왔습니다. 전날 밤 11시 넘어서까지 동지들을 좀 더 따뜻하게 환대하기 위해 정성껏 준비하느라 잠을 설쳤습니다. 농성장을 지킬 최소 인원만 남기고 거의 전 조합원이 참석한 모습을 보면서 정말 듣던 대로 대단한 힘을 느꼈습니다. 사실 투쟁이 한창인 상황에서 조합원들이 다 같이 이런 프로그램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합원들은 생각보다 더 조심스러웠고, 당장 내일이 불투명한 투쟁 상황에 많이 지쳐 있었습니다. 전원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마음 깊숙이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았기에 서로 아쉬움을 남긴 채 헤어졌습니다. 사실 몇 번의 프로그램을 더 할 계획이었으나 아직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좀 더 소그룹으로 조합원들을 만나 적게나마 위로와 힘을 주고, 답답한 가슴을 확 풀어내는 진한 눈물을 함께 흘리고 싶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한 지 열흘쯤 지난 어느 날 저녁, 불쑥 골든브릿지증권 본사 앞 농성장을 찾아갔습니다. 뻔뻔하게도 출출한데 먹을 것 없냐면서요. 마침 농성 당번이 속한 조원들이 통닭을 사 와서 먹고 있었습니다. 파업 노동자들의 간식을 얻어먹으면서 진솔한 얘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참으로 해맑고 진정성 넘치는 동지들의 웃음을 보자 이랜드 조합원들이 생각났습니다. 대다수 여성이었던 이랜드 조합원들은 지독한 생활고와 가정에서의 어려움에도 항상 밝은 모습이었습니다. “사무국장님, 이리로 좀 와 봐. 이거 좀 먹어 봐. 항상 고생이 많아.” 언니들의 가방에서는 집에서 쪄 온 고구마나 사과 같은 간식이 끊임없이 나왔습니다. 서로 나눠 먹고 수다를 떨면서 호호호 깔깔깔, 속은 새카맣게 타 들어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동지를 위해 웃음을 잃지 않는 언니들을 볼 때마다 코끝이 찡해지곤 했습니다.

언니들이 그렇게 웃을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엄마의 힘, 순수의 힘도 있지만 근원적으로는 투쟁의 정당성과 그로 인한 자신감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는 골든브릿지증권 동지들이 500일이 넘도록 이토록 흔들리지 않고 똘똘 뭉칠 수 있는 힘의 원천과도 같을 것입니다. 골든브릿지 동지들에게 무한한 존경과 애정을 보냅니다. 그리고 동지들의 희망은 반드시 결실을 맺을 것이라는 당연한 말씀도 전하고 싶습니다.

6일 저녁 대한문에서 골든브릿지증권 노동자들이 파업 500일 문화제를 합니다. 많은 이들이 힘겹게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안타까워하지만 가까이 다가가기는 부담스러워하기도 합니다. 때로 나 하나가 무슨 도움이 되겠냐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장기투쟁 사업장에서 한 명의 연대는 정말 한 줄기 빛과 같습니다. 저는 그 빛들의 향연을 온몸으로 경험한 바 있습니다. 성경에는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도서 4장12절)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세 겹 줄 중 한 줄이 돼 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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