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규
공인노무사
(노무법인 참터)

대상판결 / 대법원 2012다14036 해고무효확인등

1. 사건의 개요

피고 ○○은행에서 팀장으로 근무하던 원고는 2006년 ○○회사의 임원과 금전거래를 했다. 이 무렵 ○○은행은 ○○회사에 대출을 해줬다. 피고 ○○은행은 2008년 원고와 ○○회사 임원 간의 금전거래 사실을 확인하고, 관리팀장에게 이 사건을 조사할 것을 지시했다. 관리팀장은 원고의 위임장을 임의로 만들어 모법무사 사무소 사무장을 통해 관련서류를 입수했다.

원고는 ○○회사측에 자금을 대여한 적이 있어 그 변제금을 받은 것이라 해명했으나 피고 ○○은행은 2008년 5월15일자로 “원고가 2006년 7월 원고의 권유로 피고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은 ○○회사와 사이에 금전대차 및 사금융알선 행위를 했으므로 이는 윤리강령·취업규칙·복무규정·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원고를 해고했다.

원고는 2008년 6월 피고 ○○은행의 대표이사·상무이사·차장·법무사 등을 사문서 위조 등으로 수사기관에 고소했다. 그 결과, 대표이사·상무이사·법무사는 각 혐의없음 처분을, 피고 ○○은행 차장과 모법무사 사무소 사무장은 각 벌금 100만원의 처벌을 받았다.

한편 피고 ○○은행도 2008년 6월 수재 등 혐의 및 사금융알선 등 혐의로 원고를 수사기관에 고소했다. 그 결과, 원고는 사금융알선 등에 대해 2009년 1월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고, 수재 등에 대해서는 부산고등법원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선고받았다. 항소심 판결은 그 무렵 확정됐다.

원심은 이 판결 등을 근거로 “금융기관 직원에게 요구되는 업무의 투명성 내지 공정성 등 피고가 주장하는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원고에게 이뤄진 가장 중한 징계처분인 해고에 이른 것은 징계양정이 지나친 것이어서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그러던 중 원고는 원심 변론 종결 후인 2012년 1월31일 정년이 도래했다.

피고 ○○은행은 원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는데, 대법원은 사실심 변론 종결 당시 이미 정년이 지났다면 근로자로서의 지위를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됐으므로 해고무효확인의 소는 확인의 이익이 없다고 보았다. 다만, 해고는 그 양정이 과다해 무효이므로 피고 ○○은행은 원고가 근로자로서 계속 근무했더라면 지급받을 수 있었던 임금 상당액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2. 판결 요지

대상 판례의 해고사유 및 양정의 정당성을 별론으로 하면, 대상 판례의 중요 쟁점은 “해고무효확인 소송 계류 중 정년이 도래한 원고에게 해고무효확인의 이익이 있는가”이다. 이에 대해 대상 판례는 “근로자에 대한 해고가 무효임의 확인을 구함과 아울러 근로를 제공할 수 있었던 기간 동안의 임금을 청구하는 경우, 해고무효확인의 소는 피고와의 사이에 이뤄진 근로계약상의 지위 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것임이 명백하므로, 사실심 변론종결 당시 이미 피고의 인사규정에 의한 당연해직사유인 정년을 지났다면 근로자로서의 지위를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으므로 해고무효확인의 소는 확인의 이익이 없으며, 사실심 변론종결 후에 이미 인사규정 소정의 정년이 지난 경우에도 해고가 무효로 확인된다 하더라도 근로자로서의 지위를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마찬가지라 할 것이다”라고 판결했다.

대상 판례의 판결문를 살펴보면, 원고측도 해고무효확인의 이익에 대한 주장을 펼친 듯하다. 원고측은 이 사건 해고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재취업 기회의 제한과 같은 법률상 지위에 대한 위험이나 불안을 제거하기 위해 해고무효확인의 이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상 판례는 “과거의 법률행위에 불과한 징계면직처분에 대해 무효확인청구를 하는 이유가 단순히 사회적 명예의 손상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면 이는 현존하는 권리나 법률상의 지위에 대한 위험이나 불안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없으므로, 그 무효확인을 구할 이익이 있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해 원고측의 주장을 배척했다.

3. 쟁점 검토

민사소송의 특성을 고려할 때, 소송의 이익이 없는 소송에 대해서까지 실체적 판단을 요구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즉 소송 계류 중에 소송의 이익이 객관적으로 소멸된 경우, 이에 대한 실체적 판단은 무의미하다고도 볼 수 있다. 이 같은 관점에서 대상 판례를 살펴보면 일견 타당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 타당성은 “소송 이익의 존부”를 어떻게, 어디까지 볼 것인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단순히 복직 가능성 여부만을 소송의 이익으로 한정하면 대상 판례의 판단은 전적으로 옳다. 그러나 “이 사건 해고로 인하여 원고가 입게 될 사회적 명예의 손상, 이로 인한 직업 활동 및 사회관계의 제한 등”으로 소송의 이익을 확장할 경우, 대상 판례는 소송의 이익을 너무 협소하게 판단했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노동사건은 소송의 이익 측면에서 다른 유형의 민사사건들과 구별되는 점들이 있다. 우선, 소송 계류 중에 소송의 원인이 된 인사처분의 처분권자인 사용자가 얼마든지 그 처분의 성격이나 종류를 변경시킬 수 있다. 다음으로, 근로계약관계를 기반으로 하므로 소송 계류 중에 계약기간 만료나 정년의 도래와 같은 객관적 사정의 변화가 발생할 여지가 크다. 한편, 정직·감봉 등 징계의 경우는 처분권자인 사용자가 지정한 기간의 도래에 의해 자동 종료된다. 과연 대상 판례가 이 같은 노동사건의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한 상태에서 소송 이익의 존부를 판단했는지 의문이다.

“소송은 현재의 권리 또는 법률상 지위에 관한 위험이나 불안을 제거하기 위해 허용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일반론적 원칙은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노동사건에서 이 같은 일반론적 원칙만으로 소송 이익의 존부를 판단할 경우, 쟁송의 당사자인 사용자가 자신의 재량권을 남용할 가능성을 제어하기 어렵다. “사용자가 부당노동행위의 일환으로 노조 활동가를 해고해 장기간의 소송을 유도하고, 노조가 무력화된 이후에 임의로 해고를 철회하고 복직 발령하는 경우”, “사용자가 노동자의 정년이나 계약기간 만료까지 고의적으로 소송을 장기화하는 경우”, “정직·감봉 등 처분 당시 기간이 정해진 징계가 재판 계류 중에 완료되는 경우” 등이 그러하다.

결국 본 사안과 같이 판결에 의한 복직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라도, 그 확인 판결이 현재의 권리 또는 법률상 지위에 영향을 미치거나, 현재의 권리 또는 법률상 지위에 대한 위험이나 불안을 제거하기 위해 유효한 수단이 될 때는 소송의 이익이 쉽게 부정돼서는 안 된다.(대법원 2010.10.14 선고 2010다36407 판결 등 참조) 이 경우 보호돼야 할 권리나 법률상 지위의 내용 역시 노동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해 “사회적 명예, 직업 활동 및 사회관계의 제한 가능성, 노사관계에 미치는 영향, 부당노동행위 등 불법행위의 법률적 확인 등”으로까지 폭넓게 해석돼야 한다.

4. 결론을 대신해

대상 판례를 검토하면서 다시 한 번 노동사건과 일반 민사사건은 다르다는 점을 느꼈다. 사용종속관계라는 특수한 계약관계에 놓인 노동자와 무한대의 인사재량권을 지닌 사용자 간 쟁송이므로, 노동사건이 일반 민사사건과 다른 것은 너무 당연하리라. 그러나 노동사건에 관한 판례들 중에는 이 같이 당연한 현실, 아니 진실에 주목하지 못하고 법리적 완결성에만 집착한 경우가 적지 않다. 법원이 왜 존재하는지, 법리는 왜 존재하는지 다시금 생각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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