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19.7.19 금 08:00
상단여백
HOME 칼럼 시론
통상임금과 대안적 임금체계 논의

대법원이 다음달 5일 전원합의체에 회부한 통상임금 사건을 공개 변론한다. 대법이 통상임금 문제를 전원합의체에 회부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공개변론이 진행되는 갑을오토텍 사건의 쟁점은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여부다. 대법은 이미 지난해 3월 금아리무진 사건에서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며 원고인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통상임금의 범위를 확대하는 법원의 판결 경향은 지난 95년부터 확고하게 굳어졌다. 대법 전원합의체에서 이를 다루거나 공개 변론하는 것이 새삼스럽다는 얘기다.

이를 두고 여러 해석이 제기되고 있지만 노동계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 때 대니얼 애커슨 GM회장이 통상임금 문제 해결을 요구했고, 박근혜 대통령이 이를 검토하라고 지시하면서 파문이 커졌다는 얘기다. 법원 판결에 따른 비용부담을 거론하는 경영계의 목소리가 커졌고, 부담스러워하는 정부가 임금체계 개선에 나서면서 법원이 그 압력에 영향을 받았다는 설이다. 지난 95년부터 하급심에서 상급심(대법)까지 여러 사례에 대한 판결이 있는데도 대법원이 전원합의체로 회부한 것은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이에 민주노총은 2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하며, 종전 판결의 타당함을 재확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법이 기존 판결을 뒤집을 가능성에 대해 경계하는 셈이다.

사실, 외환위기가 닥쳤던 98년 이후 임금문제는 뒷전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폐업하는 기업이 속출하면서 임금 인상은 언감생심이었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명예·희망퇴직과 정리해고를 통해 연명했다. 그저 일자리만 지킬 수 있다면 임금 동결·삭감도 감수할 수 있다는 분위기였다. 그 후로 15년이 흘렀지만 일자리 위기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여전히 우리는 저성장과 일자리 감소의 긴 터널 안에 있다. 이러다보니 고용문제에 비해 임금문제는 연구도 적었고, 법·제도 개선도 미뤘다. 그간 임금문제는 노사 간의 관행 또는 교섭역량에 따라 정리돼 온 셈이다.

임금구조에서 기본급이라는 줄기에 각종수당이 포도송이처럼 열린 것은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았다. 일자리 위기 앞에 사용자와 노동조합은 ‘고용안정’에 최우선 가치를 뒀다. 노사는 매년 임금·단체협약 갱신협상에서 고용안정 협약을 합의하면 나머지를 순식간에 정리했다. 기본급은 적게 올리되 각종 수당을 늘리는 방식이었다. 노는 고용안정을, 사는 임금비용 부담의 최소화를 주고받기 한 셈이다. 임금 총액은 이전보다 늘어났지만 그 양을 좌우하는 것은 결국 개별 조합원의 몫이었다. 임금총액은 고정급이 아닌 초과근로수당과 성과급이라는 변동급에 의존했다. 물론 이 과정에 정부의 임금인상 억제정책이 영향을 미쳤다. 단적으로 고용노동부의 통상임금 산정지침이 지난 88년 이래 하나도 바뀌지 않은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이러니 시간급을 받는 노동자들은 장시간 근로에 목을 매거나 성과급에 열을 올렸다. 반면 시간급제가 아닌 사무관리직의 경우 연장근로를 하더라도 이를 인정받지 못하는, 이른바 포괄임금제가 적용됐다. 임금체계가 기형화되고 있는 사이, 원청-하청회사와 정규직-비정규 노동자의 임금·근로조건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누구도 임금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하지 않았다. 한 마디로 잊고 살거나 회피했다.

그런데 벼락처럼 다가왔다. 통상임금 소송은 임금문제를 수술대 위에 올리는 계기를 제공했다. 이런 긍정적 신호는 더 확산돼야 한다. 장시간 노동을 유도하고, 격차 확대를 조장하는 현행 임금체계를 개선하자는 공감대로 나아가야 한다. 또 다른 임금억제 정책의 계기로 삼거나 비용부담 최소화의 방향으로 변질돼선 안 된다. 일자리-노동시간-임금을 하나로 보고, 올바른 임금체계 개선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 법원의 기존 판례는 존중돼야 한다. 대법 전원합의체가 견지해야 할 자세도 이것이다. 혼선을 자초한다면 불필요한 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임금체계 개선도 사법부의 이런 판단을 출발선으로 삼아야 한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6월 임금제도개선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지만 노사 당사자들은 참여하지 않고 있다. 논의 과정도 비공개다. 임금문제는 전문성을 요하고, 민감한 문제라고 하지만 이런 식의 논의가 오래가선 안 된다. 대안적 임금체계 논의는 철저히 공개적으로 진행하되, 노사 당사자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 하루빨리 노·사·정 당사자 논의로 전환돼야 한다.

박성국  park21@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성국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