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
사이버노동대학
대표

지난 7일 팔순을 넘긴 한 일본인 목사가 대한문 앞 쌍용차 농성장을 찾았다. 그는 그 암울한 70년대에 선교사로 한국에 와서 청계천변 일대 판자촌에서 목회활동과 빈민운동을 했던 노무라 모토유키라는 분이다. 그가 한 말 가운데 비수처럼 꽂히는 말이 있었다. “전태일 분신 때와 한국이 달라진 게 없다.”

앞뒤 맥락을 뚝 자르고 위에서 인용한 문구만 가지고 판단한다면, 그의 말에 동의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72년 10월 유신 이후 40여년이 경과하면서 한국은 엄청나게 변했기 때문이다. 수출과 국내총생산(GDP)이 수십 배나 늘었고 세계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경제대국이 됐다. 제3세계 여러 나라들이 본받고자 하는 경제개발 성공사례이자 아시아국에서 100만명 가까운 노동자들이 돈을 벌고자 이주해 와서 노동하고 있는 ‘꿈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말을 전적으로 부인할 수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과연 달라졌는가.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연탄가스로 사망한 아이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당시 서울 여의도의 한 대형교회에서는 부흥회가 열리고 있었다. ‘신은 여의도에만 있는가’라는 절망까지 들었다”고. 그랬다. 그 시대는 그야말로 절망의 시대였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인정되지 못하던 시절, 그렇게 인정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지 않던 시절. 반면에 ‘금전대의 부피’만이 지상의 가치로 인정되던 개발독재 시절이었다. 그러했기에 전태일 동지는 이렇게 갈파했다.

“인간을 물질화하는 세대, 인간의 개성과 참 인간적 본능의 충족을 무시당하고 희망의 가지를 잘린 채 존재하기 위한 대가로 물질적 가치로 전락한 인간상을 증오한다. … 인간을 필요로 하는 모든 인간들이여, 그대들은 무엇부터 생각하는가. 인간의 가치를? 희망과 윤리를? 아니면 그대 금전대의 부피를?”

이렇게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현실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노무라 목사의 말처럼 한국이 전태일 분신 때와 달라졌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런 부조리한 현실을 타파하고자 많은 사람들이 이른바 민주화운동 또는 민족민주운동을 하며 헌신하고 투쟁했다. 그럼에도 변한 게 별로 없다. 군사독재는 쫓겨났지만 그들이 차지하던 권력의 자리를 군복 대신 민간인 복장을 한 기존의 엘리트들이 독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 엘리트들의 독재 과정에서 성장한 독점자본이 부를 독차지하고 권력의 향배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반면에 절대다수의 노동자와 근로민중은 그야말로 존재하기 위한 대가로 점점 더 물질화하고 물질적 가치로 전락했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한국은 그동안 달라진 게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참으로 많이 달라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가치 저하와 물질화, 그리고 인간들 간의 비인간적이고 비평화적 관계는 극도로 악화돼 폭발 직전에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 전망 속에서 보면 이런 악화와 위기는 자본주의 전개의 필연적인 귀결이기도 하다. 물질적 빈궁이 지배하던 단계에서 자본주의는 강제적으로 노동자들을 혹사시키면서 사회의 생산력을 발전시켰다. 오로지 지배계급의 부와 권력을 위해. 그들은 이렇게 물질적 부를 증대시키고 그 부스러기를 노동대중에게 던져주는, 즉 선성장 후분배 정책으로 자신들의 계급적 지배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그 자본주의 노선의 대가는 너무 비쌌다. 노동자는 더욱더 자본에 종속되고, 더욱더 노예화·비인간화·황폐화·물질화·동물화·불구화했다. 여전히 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들 중에서 가장 길고,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건에서 보듯이 산업재해도 매우 심각하다. 노동인구의 절반이 비정규직이고 그 90%가 무권리 상태에 있다. 그와 더불어 청년들 태반이 알바와 백수를 넘나들고 있고, 연애도 결혼도 자녀도 포기하고 있다. 출산율은 세계 최저이고 자살률은 세계 최고이며, 청소년 사망 원인의 첫 번째가 자살이다. 자살을 생각하는 초등학생조차 생겨나고 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길을 걸어 왔음이 분명하다. 자본주의 원리를 100%로 좇아서 물질적 부를 사회와 인간의 지상 목적으로 삼고서 질주했던 것이다. 야만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더 늦기 전에 이것을 바로잡아야 한다.

사회와 국가의 목적은 물질적 부의 증대가 아니라 인간적 부의 증대로 바뀌어야 한다. 인간적 부가 아니라 물질적 부의 추구, 그런 부를 맹목적으로 무한하게 추구하는 자본주의 문명·제도·가치 등과 결별할 때가 됐다. 전도된 것을 바로 세울 물질적 조건은 이미 충분히 확보돼 있다. 물질적 부의 생산이 부족해서 우리가 과연 불행한가.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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