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6일 만이다. 최병승·천의봉 두 현대자동차 비정규 노동자들이 8일 오후 울산 철탑농성을 중단하고 다시 땅을 밟았다. 이들의 요구는 간명했다. 대법원의 판결대로 현대차는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것이었다. “법대로 하라”는 이 하나의 요구를 위해 그들은 하늘에서 겨울과 봄, 그리고 여름을 나며 외롭고 처절한 투쟁을 했다.

그들의 투쟁은 사회적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우리사회에 만연한 불법파견 문제의 심각성을 재차 드러냈고 수천명의 노동자·시민이 자발적으로 희망버스를 탔다.

그들은 비록 철탑농성을 끝냈지만 불법파견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투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두 노동자는 이날 “또 다른 10년의 투쟁을 이어 가겠다”고 밝혔다. 그들은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구속될 때까지 결코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비정규직 투쟁에 종지부를 찍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제 누가 답해야 할 차례인가.

정부·현대차 “법 준수” 노동자 요구에 답할 때

정호희
민주노총 대변인

최병승·천의봉 두 조합원의 투쟁은 지난한 비정규직 철폐투쟁의 중요한 변곡점이 됐다.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을 사회적으로 공론화하고 법원판결도 무시하는 자본과 그를 비호하는 정권의 민낯을 보여줬다. 또 언론은 희망버스 시민을 폭도로 둔갑시켜 정권과 현대차의 친재벌·반노동 행보를 부추겼다.

비정규직 문제는 사회구조 전반을 개혁하지 않고서는 해결하기 매우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당장 있는 법이라도 제대로 지키는 것부터 시작하자. 자동차산업 뿐 아니라 철강·조선업 등의 불법파견 문제는 정부의 법집행 의지만 있으면 지금이라도 해결 가능하다. 중장기적으로는 사용자 책임을 강화하는 법·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경제민주화와 사회민주화가 함께 실현돼야 한다.

민주노총은 9월 국정감사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제기하고 법·제도를 개선·정비하는 한편 불법파견 등 현행법을 위반하는 사업체에 대한 실태조사와 고소·고발을 진행할 계획이다. 국정원 선거개입으로 민주국가의 정체성을 흔들고 유신독재시절로 회귀하려는 현 정권이 재벌의 불법부당행위는 눈감고, 노동자들의 절박한 호소엔 ‘엄단’하겠다면 우리는 투쟁할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은 불법파견을 포함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더 가열찬 투쟁에 나설 것이다.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 이제부터 시작이다

강훈중
한국노총 대변인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최병승 조합원과 천의봉 사무장이 296일 만에 농성을 끝내고 내려왔다. 건강 때문이다. 이들은 고압 송전 철탑위에서 지난 겨울 한파를 견뎌야 했고 최근에는 살인적인 불볕더위와 싸워야 했다.

이들의 목숨을 건 투쟁은 대법원 판결조차 이행하지 않는 대기업의 안하무인격 기업경영과 불법파견 문제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우리사회에서 기업은 여전히 법 위에 군림하며 법치를 조롱하고 있음을 재확인했다. 이 땅에 사는 노동자들이 얼마나 무기력한 처지인 지도 새삼 다시 확인했다. 그러나 희망버스로 상징되는 일반 시민의 참여와 연대투쟁을 이끌어 낸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현대차 사내하청 문제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사측은 이들이 송전 철탑에서 내려왔다고 모든 상황이 끝났다고 오판해서는 안 된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현대차는 2010년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불법파견으로 규정한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하고,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현대차를 위해 땀 흘려 일한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예의다.

정부도 방관자적 태도에서 벗어나 현대차가 대법원 판결을 존중해 불법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 기업이 법을 능멸하며 법 위에 군림하는 것을 통제하지 못하는 정부는 정부로서의 자격을 이미 상실한 것이다.

국회도 이번 정기국회에서 불법파견을 근절하고 상시·지속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관행이 만들어지도록 관련 법제도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

불법파견 무법천지 10년, 눈도 깜짝 않는 현대차

복기성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수석부지회장

최병승·천의봉 동지를 보기 위해 울산에 왔다. 무려 296일이나 철탑 위에서 버텼으니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였다. 특히 천의봉 동지의 건강이 안 좋아 보였다. 이들이 몸을 추스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제일 중요하다.

어제 이들이 농성을 풀고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한숨이 나왔다. 목숨을 걸고 고공농성을 벌여도 눈도 깜짝 않는 현대차 자본과 지금의 상황을 생각하니 서러웠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10년 가까이 불법파견으로 차별받았다. 아니 공장 내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을 도맡아 했다. 비정규 노동자를 불법적으로 부려먹은 사업주는 구속되지도 처벌받지도 않고, 오늘도 비정규 노동자를 착취하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서럽고 울분이 솟았다.

2004년에는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이, 2010년에는 대법원의 불법파견 판결이 나왔다. 노동자들은 법을 지키라고 요구하며 공장 점거파업에 나서기도 하고, 최병승·천의봉 동지의 고공농성도 있었다. 법과 제도가 있고, 그에 대한 정부와 법원의 판단이 있고,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지만 현대차 자본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심지어 불법파견 판정을 내린 고용노동부도 현대차의 불법행위에 대해 눈감았다. 그러는 사이 비정규 노동자들이 분신하고 죽어나가고, 극단적인 상황까지 벌어졌지만 자본과 정부는 방관했다.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것인가. 적어도 정부는 불법행위를 저지른 기업이 법적 책임을 이제라도 다할 수 있도록 적극적 조치에 나서야 한다. 

김태욱
변호사
금속노조법률원

현대차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 "(최병승씨의) 개인 판결이기 때문에 개인에게만 적용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며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거부하고 있다. 개인 판결일 뿐이라고 하면서 나머지 비정규 조합원들에게도 대법원 판결을 가지고 오라고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막상 현대차는 이 대법원 판결 자체에 대해 법리적으로 다투고 있다.

이는 채무가 있는 사람이 확정판결을 가져오기 전까지는 돈을 절대 못주겠다고 버티고 있는 것과 다름 아니다. 이런 억지를 길게는 최병승씨가 해고된 뒤 10년, 짧게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후 3년간 부리고 있다.

최근 현대차가 이 문제를 두고 특별교섭에 나온다고 하고 있지만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신규채용 방식으로 고집하는데다 채용인원수도 자기 마음대로 정하려고 하고 있다.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이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최병승·천의봉씨가 철탑에 올라간 것이다. 그러다 현대차가 자신들의 다양한 권력을 이용해 계속 버티면서 사태가 해결되기 전 내려오게 된 것이다. 헛된 희망일지 모르나 현대차가 10년간 계속하던 모습을 버린 뒤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교섭에도 전향적으로 나오길 기대한다.

두 노동자의 폭로에 우리가 응답할 차례

이창근
희망버스기획단
대변인

296일은 최병승·천의봉씨가 버티고 싸울 수 있는 최선의 시간이었다. 동시에 현대차 재벌의 버티기 시간이기도 했다. 자본의 잔인한 시간이었다.

두 동지는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가 단순히 현대차 노사문제가 아님을 명확히 드러내고 폭로했다. 두 명의 노동자가 현대차 자본의 불법과 무법을 폭로하기 위해 철탑에서 목숨을 건 투쟁을 한 것이다. 이제는 두 노동자를 본 우리들이 응답해야 할 차례다.

우리가 이 문제를 수습하고 정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현대차 자본이 저지르는 불법을 노동자·시민의 열기로 다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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