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
(변호사)

길었던 장마와 무더위를 식힐 속 시원한 뉴스를 찾기가 쉽지 않은 요즘이다.

NLL·회의록·국정조사 같은 낱말들만 떠다니고 있다. 이제는 뭐가 쟁점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판박이 보도는 아마도 지루한 장마처럼 더 이어질 전망이다. 지겹기까지 하다. 여기다 개성공단·날씨·휴가 소식을 더한 것이 공중파 뉴스의 전부다. 이제는 언론이 균형감각을 잃지 않았나 하는 염려가 된다.

언론의 편중 보도에 묻힌 탓인지 노동소식은 아예 찾기조차 어려운 지경이다. 장마 기간 다단계 하청 뒤에서 쓸쓸히 죽어간 이주노동자들의 사연과 당연히 대표자가 처벌되리라는 생각을 머쓱하게 만든 이마트 부당노동행위의 수사 발표도 있었다. 세계 일류와 국제기준을 외치고 있지만 후진국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공무원노조 설립신고 반려 사건이나 최근 또다시 노동 없는 청와대 참모 개편 등도 크게 보도된 일이 없다. 이 외에도 중요한 노동뉴스는 얼마든지 많다. 하지만 정작 노동자들 삶과 이어질 만한 중요한 이야기는 꺼낼 틈도 없는 게 요즘 현실이다.

누구의 표현처럼 보이지 않는 손이라도 있는 것일까. 정말 궁금해 죽겠는데 아무리 인터넷 서핑을 해 봐도 올라오지 않는 뉴스가 있는가 하면 똑같은 내용임에도 모든 언론사들이 거의 매일 쏟아 내는 기사도 있지 않은가.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해결 촉구를 위한 희망버스도 그렇다. 지난달 20일 희망버스 이후 언론은 그 본질에 대한 뉴스를 내놓지 않고 있다. 왜 희망버스가 꾸려졌는지, 그 해결 과정은 어땠는지, 과연 희망버스가 아니면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인지, 앞으로의 전망은 어떠할 것인지에 대한 분석 기사 정도는 실리는 게 상식 아닌가.

반면 나오는 뉴스 방향은 사건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아니 오히려 왜곡에 가깝다. “오랜 만에 죽창이 등장했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다”,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보도가 주를 이뤘다. 이제는 수사기관이 몇 명을 소환 조사할 예정이며, 현대차는 몇 명을 고소하고 얼마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이라는 등의 낚시성 기사가 이어지고 있다. 우려는 이 같은 대형 매체의 지속적인 왜곡 보도가 결과적으로 사건의 본질을 흐리게 되지 않을까 하는 데 있다. 이른바 수면효과의 부정적인 방향이다.

희망버스의 본질은 이렇다.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차별이다. 300일 가까이 철탑에서 겨울과 봄, 그리고 여름을 난 최병승씨가 그 상징이다. 그가 제기한 소송에서 대법원은 현대차 공장에서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는 그 누구든 동일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것도 올해 초까지 두 번이나 된다. 현대차가 이들 하청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요지도 분명하다.

그럼에도 회사는 최병승씨와 같은 일을 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을 직접고용으로 전환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회사가 보여 온 모습은 판결문을 받아 오면 당사자에 한해 개별적으로 응하겠다는 정도다. 최근 선별적으로 정규직 전환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순수성을 믿는 이는 없다. 조직 분열의도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회사는 버티기만 하면 이긴다는 단순 전략으로 가는 듯하다.

문제는 이 같은 “고집불통”이 통하는 게 오늘의 노동현실이다. 왜 그럴까. 이른바 파견법에서는 불법파견을 징역 또는 벌금으로 처벌하고 있다. 행정벌은 더욱 강력하다. “장관의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근로자파견사업을 하는 자는 당해 사업을 폐쇄하여야 한다.”(파견법 제19조)

대법원 판결을 기초로 한다면 현대차는 불법파견 노동자를 사용한 것이 분명하므로 적어도 이들을 파견한 하청업체들은 폐쇄됐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러한 처벌이나 행정벌을 받았다는 속 시원한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 이러한 업무는 행정부가 담당이다. 검사가 철저한 수사로 공소를 제기해 형사처벌이 내려지면 노동부가 해당 회사를 폐쇄하는 순서를 따라야 한다. 결국 현대차 비정규 노동자 문제는 정부가 법에서 명한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현대차 비정규 노동자들의 철탑농성이 8일 오후 중단된다고 한다. 비록 철탑농성은 중단되지만 현대차 불법파견 해결이란 희망을 놓는 것은 아니다. 모두의 희망이 절망이 되지 않기 위해선 정부가 본래 책무를 다해야 한다. 그보다 앞서 언론이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농성자들이 하루빨리 건강을 회복하길 기원한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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