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승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해고자

 연재를 시작하며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인정과 신규채용 중단, 정몽구 회장 구속’을 요구하며 철탑에 오른 지 벌써 280일이 지났습니다. 농성 기간 현대차 불법파견에 대해 많은 언론 보도가 있었지만 당사자인 현대차 비정규 노동자의 목소리가 다 전해지지는 못했습니다.
 
왜 현대차 비정규직이 10년 동안 불법파견 투쟁을 하고 있는지, 우리가 어떤 주장을 하는지, 그리고 어떤 어려움들이 있는지를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씁니다. 몸은 철탑 위에 있지만 매일노동뉴스를 통해 일주일에 한 번씩 세상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현대차 불법파견 투쟁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자 합니다.
 
이 글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현대차비정규직지회 불법파견 투쟁에 조금이나마 관심과 애정을 갖길 바라며 용기를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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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희망버스가 울산을 다녀간 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 ‘혼란버스’라는 동영상이 유포됐고, 현대차는 언론사를 가려 가며 참고자료를 배포했다. 언론은 연일 희망버스의 폭력성을 부각했다.

경찰청장은 지방경찰청장 화상회의를 개최했고, 대검 공안부도 공안담당 대책회의를 진행했다. 그 결과 ‘희망버스 관련 합동수사본부’를 울산경찰청에 구성했다. 합수부는 구성과 동시에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지도부 3명과 민주노총 울산본부 간부에 대해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마치 20일 폭력사태가 일어날 것을 예상한 것처럼 신속하게 법을 집행하고 있다. 도대체 20일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검경은 이렇게 호들갑을 떨고 있는 것인가.

'죽음의 행렬' 막고자 했던 희망버스

지난해 8월 현대차는 대법원 판결은 존중하지만 현재 불법파견은 존재하지 않으며, 다툼 소지 해소를 위해 ‘신규채용 3천명’을 제시했다. 불법파견조차 인정하지 않는 현대차 제시안을 지회 조합원들은 ‘쓰레기 안’이라고 불렀다. 현대차는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고 인원만 500명이 늘어난 제시안만 앵무새처럼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 차이라면 지회 조직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1천98명을 신규채용한 것이다.

현대차는 끊임없이 불법파견 은폐를 위해 노력했다. 전환배치와 촉탁직 투입으로 공정재배치를 진행했다. 전환배치를 거부하는 조합원은 계약해지(해고통보)로 협박했다. 심지어 지회 파업에 참여한다는 이유로 공정재배치를 강요하는 경우도 있었다. 2년 미만 사내하청 노동자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도 전인 지난해 6월 개정 파견법이 시행된다는 이유로 촉탁계약직으로 강제로 전환해야 했다. 개정 파견법이 단 하루라도 불법파견이면 현대차가 정규직으로 직접고용을 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한 노동자는 파업시에는 관리자와 용역경비 폭력에 시달리고, 일상적인 시기에는 현장관리자 눈치를 봐야 했다. 권리를 빼앗긴 노동자는 노예가 돼 고용불안에 숨죽여야 했다.

결국 참사가 일어났다. 지난해 9월 불법파견 투쟁에 열심히 참여하던 2공장 조합원이 목을 맸다. 올해 4월에는 촉탁계약직 노동자가 일방적인 계약해지를 당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이달 15일 현대차아산사내하청지회 박정식 사무장이 ‘꿈과 희망’을 포기한 채 자결했다. 현대차가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상식적인 교섭을 진행했다면 죽음을 선택한 3명의 노동자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희망버스는 동료들을 보낸 아픔을 위로하고, 죽음의 행렬을 막기 위해 현대차로부터 책임 있는 답변을 듣고자 울산을 찾았다. 그러나 현대차는 정문을 컨테이너박스 20개로 가로막았다. 이도 모자라 정문 화단을 갈아엎고, 4미터 펜스를 설치했다. 희망버스 참가자보다 많은 경찰·관리자·용역경비·보수단체 회원들을 동원했다.

폭력을 유발한 자 누구인가

희망버스 기획단은 희망버스 출발 며칠 전 현대차 면담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그러나 현대차는 묵묵부답이었다. 불통의 시작이었다. 20일 당일 정문에서 민주노총 결의대회를 진행하려했던 희망버스 대오는 행복도시울산만들기범시민협의회(행울협) 등 보수단체들과 마찰을 피하기 위해 정문 행사를 취소하고 명촌 철탑으로 향했다. 행진을 하는 동안 어떠한 마찰도 없었고, 평화로웠다. 명촌 새한주유소 사거리에서 민주노총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같은 시각 현대차는 3공장 로드장(주행테스트 하는 곳) 철제 펜스 주변으로 관리자와 소화기 수백 개를 배치했다. 현장 조합원들의 항의와 현대차지부 대의원들의 항의가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주행테스트는 자연스럽게 중단됐다.

작업까지 중단시킨 현대차는 동료의 죽음을 슬퍼하는 지회 조합원들을 향해 욕설과 야유를 보냈다. 고 박정식 사무장을 위해 설치한 분향소를 세 차례나 침탈하고, 폭력을 행사한 현대차에 분노하고 있던 조합원들도 거칠게 항의했다. 설전이 오가던 사이 현대차는 소화기를 분사했다. 현대차 폭력으로부터 분향소를 지키기 위해 슬퍼할 시간도 없었던 조합원들은 흥분했고, 싸움이 벌어졌다. 철제 펜스를 무너뜨리는 등 격렬하게 울분을 토했다.

현대차는 기다렸다는 듯이 파이버·방패·쇠파이프로 무장한 관리자와 용역경비를 배치했다. 그리고 소방차·고가살수차 등 소방차 3대와 소화전에 호수를 연결해 물포로 사용했다. 사전에 계획하지 않았다면 이런 신속한 대응은 불가능하다. 소화기 분사로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죽창, 공업용 칼과 낫까지 사용했다는 증언도 잇따르고 있다. 마치 지난해 경기도 안산 SJM에서 폭력을 휘둘렀던 용역깡패들을 보는 것 같았다.

현대차는 이러한 상황을 영상으로 꼼꼼하게 찍고, 마치 지회가 폭력을 유도한 것처럼 편집해 유포하기 시작했다. 울산시민 반응까지 인터뷰한 참고자료를 진보언론을 뺀 나머지 언론사에 배포했다. 떳떳했다면 왜 언론사를 선별해 자료를 나눠 줬을까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불법파견 형사 처벌에 침묵하던 경총과 전경련은 불법시위 엄단을 연일 떠벌리고 있으며, 울산지역 국회의원들과 울산시장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 마치 잘 짜여진 각본처럼 맡은 바 책임을 다하며 한 주를 장식했다. 폭력사태의 시작과 대응 이후 나온 언론보도와 검경의 신속한 체포영장 발부를 볼 때 현대차가 폭력유도를 기획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형평성을 잃어버린 ‘법’ 집행

20일 희망버스 폭력사태 핵심은 현대차가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아도 어떠한 책임추궁도 하지 않은 국가에게 있다. 대법원 판결 시점에서 3년이 지난 지금도 현대차 불법파견에 대한 검찰 조사는 진행 중이다. 고용노동부는 검찰 조사가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어떠한 행정집행도 하지 않고 있다. 만일 대법원 판결 이후 신속하게 현대차를 압수수색하고, 파견법 위반으로 처벌했다면 지난해와 올해 3명의 사내하청 노동자 목숨은 구할 수 있었다. 아니 2010년 황인화 조합원의 분신도 없었을 것이며, 25일 CTS 점거파업으로 인한 해고자 114명(울산·아산·전주)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방적으로 현대차에게 유리한 법 적용으로 현대차 비정규 노동자들은 때로는 목숨을 걸고, 때로는 온몸에 피멍이 들며 싸워야 했다. 필자가 철탑에 오른 286일 동안 파업 등 투쟁 과정에서 현대차 관리자와 용역경비에게 폭행을 당해 다친 조합원이 200여명에 달한다. 아직도 수술과 치료를 위해 입원한 조합원들이 있다.

검경은 20일 폭력사태의 근본적 원인에 대해 침묵하고, 당시 상황도 눈감으면서 일방적으로 희망버스만 폭도로 몰고 있다. 소방법과 경비업법을 위반하고, 폭력 자제를 요구하는 울산 중부경찰서 경비과장을 향해 소화기를 던지는 등 훨씬 더 폭력적이었던 현대차에 대한 수사는 미뤄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27일 울산지법은 합수부가 체포영장을 발부해 출두한 민주노총 울산본부 배문석 조직2국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무리한 수사라고 인정한 것이다. 형평성을 잃은 법 집행을 누가 인정할 수 있겠는가.

검찰은 폭력에 참여하지 않은 박현제 지회장을 책임자로 지목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그렇다면 불법파견 노동자 사용을 지시·결재한 정몽구 대표이사에게도 책임을 물어 체포해야 한다. 경찰에게 소화기를 던지고, 쇠파이프와 공업용 칼로 폭행을 지시한 현대차 책임자도 동일한 법 집행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법 집행이 공정했다면 현대차 비정규 노동자가 10년 넘게 공장에서, 거리에서, 철탑에서 싸우지 않았을 것이다. 불합리하고, 불공정했기에 지회 조합원은 더 단결할 수 있었고, 꿈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우리가 포기하면 어떤 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10년 탄압에서 몸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현대차 비정규 노동자들은 차별을 철폐하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 투쟁했고, 이에 공감하는 시민들의 자발적 행동인 희망버스도 이끌어 냈다. 시민 불복종 운동 선구자인 헨리 데이빗 소루우도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알아야 한다. 인간 존엄성과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 한 현대차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은 계속될 것이며, 시민들의 자발적 연대인 희망버스도 멈추지 않을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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