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동 변호사
(법무법인 지안)

대상판결 / 서울남부지방법원 2012가단25092 손해배상

사건의 경위

피고 회사는 주식회사 A텔레콤의 자회사로서 A텔레콤 고객센터를 운영하면서 콜센터·사이버 고객상담·방문 고객 상담업무 등을 수행하고 있고, 원고는 2007년 9월 피고 회사에 입사한 이래 분당지점, 강남지점 등에서 방문 고객 상담 업무를 담당해 왔다.

피고 회사의 강남지점은 총 직원 25명 중 22명이 상담직원으로 근무했는데, 2012년도 기준 1인당 1일 평균 처리상담건수는 48건으로 타 지점에 비해 업무량이 많은 편이었고, 정규 운영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였으나, 대부분 대기고객으로 인해 초과근무를 해야 했다.

또한 피고 회사 상담직원들의 임금은 기본급·상여금·직급수당·식비·교통비·성과급(인센티브의 형태로 구성돼 있고, 월평균 실수령액이 160여만원 정도인데, 기본급(86만원)은 최저임금 수준이었고, 상여금(28만6천667원), 식비(11만4천원), 교통비(9만5천원), 초과근로수당(평일 11만9천463원), 격려금(10만원)은 매월 정액 지급되는 반면, 성과급(인센티브)은 상담 내용에 대한 고객만족도·직무지식 평가시험결과·처리 업무의 양·고객보호원 불만 접수·지점장 및 부지점장의 정성평가 등의 평가항목에 관한 점수의 합계를 기준으로 최저 12만5천원에서 최고 27만5천원까지 차등 지급됐다. 특히 위 성과급 결정 기준 중 가장 기준 점수가 높은 고객만족도 부분은 본인 신분증을 가지고 온 방문고객으로부터의 피드백 결과에 따라 점수가 부여됐고, 부적절 처리건수가 발견될 때마다 감점됐다. 그 다음으로 기준 점수가 높은 지점장 및 부지점장의 정성평가점수는 태도·패기·지점협조도·예정 등으로 평가하도록 돼 있다.

피고 회사는 고객들로부터 불만사항이 접수되면 그 불만원인을 밝혀서 책임소재를 확인하고, 중재하는 등의 제도적 절차가 마련돼 있지 않고, 대부분의 경우 지점장 내지 부지점장이 해당 직원으로 하여금 고객에게 사과를 하도록 지시하는 한편, 불만 고객에게는 해당직원을 교육시키고 징계하겠다는 취지의 안내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지어왔다.

그러던 중 원고는 2012년 3월경 고객과 임대전화기 개통에 관한 상담을 하면서, 기존의 번호와 동일한 번호로 임대전화기를 개통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설명했고 해당 고객도 이러한 설명을 들었다는 의사를 표시하고 동의까지 했음에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지 못하는 고객의 동생으로부터 계속된 고객 불만접수가 있었다. 이에 원고는 사실관계에 대한 충분한 해명을 고객의 동생에게 했으나, 고객의 동생은 원고가 사과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막무가내식의 고객불만 접수를 하였고, 이러한 과정에서 피고 회사의 지점장은 원고에게 무조건적인 사과를 할 것을 강요했다. 이와 별도로 피고 회사는 고객의 동생에게 담당직원의 CS교육 및 상급자에게 조치해 페널티를 부과하겠다는 안내를 했다.

원고는 다음날 주변 동료들에게 이 사건에 관해 너무 억울하고 인간적인 모멸감을 견딜 수 없다는 말을 남긴 후 피고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 사직서에는 본인은 “정신적 압박의 고통과 충격으로 인해 퇴직하고자 하오니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기재돼 있고, ‘퇴직자 의견란’에는 “안정과 휴식 및 병원진료”, ‘건의사항’에는 “서비스직일지라도 기본적으로 직원들의 인격은 지켜줘야 함이 당연함”이라고 기재돼 있었다.

원고는 다음날 수면제를 과다 복용해 자살을 시도했고, 같은날 회사 업무 등 환경적인 스트레스에서 기인한 것으로 추정되는 불면·집중력 저하·분노 등 상병이 의심되는 상태를 보이고 있어 향후 이에 대한 적절한 치료적 접근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는 소견과 함께 중등도의 우울성 에피소드·기타 심한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비기질적 불면증 진단을 받았다.

재판의 경과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피고 회사의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이른바 ‘감정노동자’로 근무하면서 받아 온 지속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이 발병한 상태였고, 상담고객 본인도 아닌 제3자에 불과한 자로부터 부당한 불만제기를 받은 상황에서 피고 회사의 강남지점장으로부터 부당한 사과요구와 징계경고, 사직 압박 등을 받아 자살시도에까지 이르는 등 우울증이 악화됐으므로 피고 회사는 원고의 우울증 발병 내지 악화에 대해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취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서울남부지방법원 민사8단독 이예슬 판사는 원고에게 1천만원의 위자료 청구권을 인정하면서도 원고의 극단적인 행동을 선택한 잘못 부분 등을 참작해 그 위자료 액수를 70%인 700만원으로 제한했다.

판결의 쟁점

원고의 여러 주장 중 핵심적인 것은 원고는 배우가 연기를 하듯 타인의 감정을 맞추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하는 일을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노동을 이른바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이라 하고, 이러한 감정노동을 수행하는 근로자의 경우 고객에게 즐거움 같은 감정적 반응을 주도록 요구되는 동시에 사용자로부터 감정 활동의 통제, 실적 향상 및 고객 친절에 대한 지속적인 압력을 받고 있어 이로 인한 우울증·대인 기피증 등 직무 스트레스성 직업병에 심각하게 노출되어 있고, 피고 회사는 서비스업을 영위하고 그 담당직원인 원고는 이러한 감정노동자의 전형이라 할 것인바, 피고 회사의 열악한 근무환경과 본건에서와 같은 근무기간 중 계속된 고객 불만 접수시의 부당한 사과요구 및 징계압박 등으로 인해 원고는 심각한 스트레스에 노출됐고 이로 인해 원고에게 우울증이 발병될 수밖에 없었다고 할 것으므로 피고 회사의 근무 여건과 원고의 우울증 발병 및 그로 인한 자살시도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돼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 동안 대법원 판례는 고용관계 또는 근로관계에 있어서 사용자의 피용자에 대한 보호 의무를 인정하면서도, 회사의 업무수행에 따라 발생한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우울증의 발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함에 있어서는 사회평균인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하면서 대부분의 사례에서 그 인과관계를 부정해 왔고, 더욱이 ‘감정노동자’라고 하는 직업적 특수성이 있는 근로자들의 사정에 관해 별도의 배려를 하는 판례가 없었다.

서울남부지법 판결은 “감정노동을 수행하는 근로자의 경우 고객에게 즐거움과 같은 감정적 반응을 주도록 요구되는 동시에 사용자로부터 감정 활동의 통제, 실적 향상 및 고객 친절에 대한 지속적인 압력을 받고 있어 이로 인한 우울증·대인 기피증 등 직무 스트레스성 직업병에 심각하게 노출돼 있다고 할 것인 바, 감정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사용자로서는 고객의 무리한 요구나 폭언에 대해 근로자를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하고, 발생사안에 따라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지침을 제공해 근로자로 하여금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고객과의 사이에 근로자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 관리감독자로서 개입해 분쟁의 원인을 밝히는 등 중재역할을 다해야 하고, 고객의 위신을 높이는 데에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사실 관계를 따져보지도 않은 채 근로자에게 무조건적인 사과를 지시함으로써 인격적인 모멸감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할 것이다. 또한 노동과정에서 식사시간, 화장실 가기 등 기본적인 생활상의 욕구를 만족시켜야 하고, 고객과의 분쟁이나 좋지 않은 일이 발생했을 때 또는 심리적인 휴식이 필요할 때 쉴 수 있는 자율성을 보장해야 하며, 노동과정을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업무량에 대해서는 이를 적정선에서 규제해야 할 근로계약상의 보호의무 내지 배려의무를 부담한다"고 하면서 감정노동자를 고용하는 회사의 근로자(감정노동자)에 대한 근로환경개선 등 적극적인 보호 의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이를 인정하는 판단을 했다.

판결의 의의

이 판결은 감정노동자를 고용한 사용자로 하여금 고객으로부터의 부당한 요구 등에 대한 근로자의 응대 매뉴얼 등의 작성하도록 해 이에 노출되는 근로자의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근무환경을 조성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고객과의 분쟁 발생시의 중재의무, 감정노동자의 구체적인 근로환경개선의무를 인정했다. 고객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과 강요 등의 행위를 금지함으로써 감정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사용자들이 근무환경을 적극적으로 개선하도록 했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특히 감정노동자의 경우 업무환경과 우울증의 발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함에 있어 매우 엄격한 태도를 취하던 기존 판결과는 달리 실질적인 관점에서 평가함으로써 권리구제의 길을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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