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승
현대차 사내하청
해고자

송전탑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5년 9월5일 새벽 현대차 울산공장 A엔진 공장 옆 송전탑에 올라갔다가 다음날 새벽 내려온 적이 있다. 만 하루도 못 채운 22시간 농성이었다. 류기혁 열사의 죽음을 알리고, 현대차 폭력을 규탄하기 위해 오른 하늘 길. 그러나 태풍 ‘나비’를 핑계로 스스로 투쟁을 포기하고 내려와야 했다. 그 이후 내가 함께한 투쟁은 모두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하거나 조합원 피해만 확대됐다.

현대차비정규직노조의 임금·단체협상이 한창이던 2006년 8월14일, 시트2부 파업투쟁에 참여했다가 노조사무실로 돌아오던 길에 체포돼 구속됐다. 당시 노조 사무국장이었다. 구속 뒤 노조는 파업을 계속했고 3자(현대차와 원·하청노조) 협의를 통해 잠정합의안이 도출됐다. 하지만 노조 쟁의대책위원회가 직권조인으로 규정해 집행부가 총사퇴했다. 2006년 투쟁에서 임원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2009년 현대차는 미국발 금융위기(리먼브러더스 사태)를 핑계로 하청노동자 우선해고를 진행하고 있었다. 당시 금속노조 대의원이었고, 집단해고 반대투쟁을 조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화물노동자 박종태 열사 투쟁으로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 간부들이 모두 대전으로 향한 5월16일, 지금은 없어진 에쿠스공장 화장실에서 납치된 뒤 경찰에 인계돼 구속됐다. 결국 대의원으로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집단해고 소식을 울산구치소에서 들어야 했다.

2010년 25일 동안 진행된 현대차 CTS공장 점거투쟁 때도 절망은 계속됐다. 점거파업 중이던 2010년 12월8일 체포영장이 떨어졌다. 급히 짐을 싸서 수배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지회는 다음날 CTS공장 점거파업을 풀었다. 당시 나는 금속노조 미조직비정규직국장이었다. 조합원들이 추위와 배고픔을 버티며 투쟁했지만 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고생한 조합원들에게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도 못했다. TV를 보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매년 이어지는 투쟁에 운 좋게 함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난해 10월17일 철탑을 오르고 난 뒤 신규채용이 중단되고, 특별교섭이 재개되면서 처음으로 필요한 사람이 된 것 같아 기뻤다.

하지만 철탑농성이 장기화하면서 또다시 지회투쟁에 부담이 됐다. 표현하지 않으려 해도 나의 힘겨움이 느껴지는 걸까. 매일 내려오라는 전화를 받을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철탑에 오르면서 생각했던 것은 딱 한 가지였다. 10년 동안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현대차비정규직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언론과 대선을 통해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알리는 첫 목표가 이뤄지자 한 가지 욕심이 더 생겼다. 언제나 중간에 포기했던 내가 이번 투쟁만큼은 조합원들과 함께 투쟁을 마무리하고 싶어졌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처음으로 함께 나누고 싶었다. 이게 271일째 철탑농성을 하는 현재의 이유다.

그러나 내 꿈은 아주 먼 미래에나 가능할 것 같다. 현대차는 불법파견 특별교섭 16차례, 실무교섭 8차례를 진행하는 동안 불법파견을 부정하고 있다. 불법파견 은폐와 현대차비정규직지회 탄압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이달 10일 파업에서는 교섭대표인 박현제 지회장을 용역경비를 동원해 스타렉스에 실어 납치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또 자재박스 위에서 사진촬영을 하던 이진환 선전부장을 떨어뜨려 이 부장의 흉추 1번과 3번이 골절됐다. 집단폭행으로 문지선 법규부장의 이가 부러졌다. 폭력과 탄압은 멈추지 않았다. 파업 다음날인 11일 현대차는 폭력사태 책임을 물어 지회 상무집행위원 출입을 막았다. 황당한 일이다. 12일 파업 때도 현대차는 어김없이 용역경비들을 투입해 조합원들을 폭행했다. 집단폭행으로 뇌진탕 증세를 보인 조합원들이 병원으로 후송됐다.

현대차비정규직 조합원 500여명이 파업을 하면 사내하청 노동자는 도급업체 정규직이라던 현대차가 1천명이 넘는 관리자와 수를 셀 수 없는 용역경비를 동원해 파업파괴에 나선다. 부품사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는데 현대차가 개입하는 것이다. 현대차는 불법파견을 부정하면서 노무관리를 직접하고 있음을 집단폭행과 납치로 치졸하게 보여 주고 있다. 폭행이 난자한 상황에서 불법파견 특별교섭이 아무리 열려도 좋은 결과가 나올 리 없다. 그런데 현대차는 특별교섭 파행 책임이 현대차비정규직지회에 있다고 한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언론도 진실에 침묵하고 있다. 앞에서는 교섭을 촉구하고, 뒤에서는 용역경비를 동원해 폭력을 행사하는 현대차의 이중성을 보도한 기사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현대차 불법파견 투쟁의 진실이 세상에 알려지기 위해서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다. 그래서 아직은 철탑농성을 접고 내려갈 수가 없다. 이번만큼은 투쟁의 끝을 보고 싶은 내 작은 소망이 있기에 더더욱 이곳에서 버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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