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공공기관 합리화 정책을 보면 ‘시장화 테스트’라는 용어가 눈에 띈다. 이에 따르면 앞으로 신설되는 공공기관은 시장화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민간과 경쟁해 통과하지 못하면 공공기관 신설은 봉쇄된다. 공공기관이 새 공공사업을 하면서 자회사 또는 출자회사를 늘리는 폐단을 없애겠다는 의도다. 시장화 테스트를 받고 신설된 공공기관이라도 3년 후에는 운영성과를 평가받는다. 이를 통과하지 못한 공공기관은 퇴출된다. 기존 공공기관은 상시적 점검을 받는다. 평과 결과에 따라 기관 간 통합 또는 유사기능 조정이 이뤄진다. 기획재정부는 이를 상시적 구조조정이라는 말로 포장했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가 내세우는 시장화 테스트란 무엇일까. 박근혜 정부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아마도 일본 모델로 보인다. 최근 일본 정부가 이 정책을 실시했기 때문이다. 일본 국회는 지난 2005년 ‘공공서비스 개혁법(시장화 테스트법)’을 제정했다.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이 경쟁입찰을 통해 공공서비스 담당자로 결정되는 제도다. 공공기관이 기존에 맡고 있던 사업은 물론 새로 시작하는 공공사업에도 적용된다. 쉽게 얘기하면 공공기관 업무의 민간위탁이라고 보면 된다. 일본 정부는 시장화 테스트법의 첫 시범사업으로 사회보험청이 맡아온 업무를 민간에 위탁했다. 국민연금 보험료 징수사업 등 일부 사업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후 민원창구업무, 지방세·보험·연금 징수업무, 공공시설관리업무, 정부통계조사 관리업무로 확대됐다.

일본 모델은 원조인 영국과 닮았다. 영국의 대처정부는 지방재정 악화를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시장화 테스트를 시행했다. 공공서비스 분야에 대해 민·관 의무경쟁입찰을 실시했다. 처음에는 쓰레기 수집, 도로유지업무, 하수도시설 관리 등 주변업무부터 민간에 위탁됐다. 다음단계에선 법률관련업무·건축설계·부동산에 이어 정보처리·재정·인사 등 핵심분야도 민간기업에 넘어갔다.

일본과 영국 모델이 국회에서 법을 제정해 시장화 테스트를 시행한 사례라면 박근혜 정부는 정부 주도로 진행한다는 게 차이점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기획재정부의 막강한 권한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의 예산과 인력을 전일적으로 통제할 뿐만 아니라 공공기관 평가와 통폐합·퇴출여부를 관장하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주도하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통해 이것이 가능하며,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그들의 가진 무기다. 다른 나라와 달리 시장화 테스트가 정부 정책으로 가능한 까닭이다.

사실, 시장화 테스트라는 용어만 생소할 뿐 공공서비스의 민간위탁은 낯설지 않다. 외환위기 이후 중앙 정부나 지방 정부 모두 민간위탁에 열을 올렸기 때문이다. 한편에선 알짜 공기업이나 은행을 재벌이나 외국기업에 팔아 버리는 민영화가 진행되면서 다른 한편에선 공공서비스의 민간위탁이 실시됐다. 이젠, 핵심 업무로 옮아가고 있으며 공기업 민영화의 한 수단으로도 차용되고 있다. 한국가스공사는 천연가스 도입을 전담했는데 이 분야에서 민간업자의 직수입 확대가 추진되고 있다. 국회에 발의된 도시가스사업법 일부 개정안에 따르면 민간 직수입자의 점유율은 5년 내에 20%로 늘어난다. 지난 2월 정부가 발표한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현재의 민간발전소 비중은 20%인데 이를 30%까지 늘리기로 했다. 최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철도산업발전방안을 보면 철도공사(코레일)는 지주회사로 탈바꿈하되 여객·화물·부대사업은 자회사로 분리된다. 벽지를 오가는 일반여객선은 민간사업자에게 넘기되 여의치 않으면 지방정부가 포함되는 제 3섹터에서 운영하기로 했다.

이런 흐름을 보면 기획재정부는 시장화 테스트라고 포장했을 뿐 공기업 민영화와 민간위탁이라는 종전의 정책방향을 수정할 계획이 없음을 선언한 것이다. 이는 공공서비스의 민간 개방 확대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것은 공공서비스 확대가 아니라 축소다. 일본 정부는 시장화 테스트를 통해 정부 규모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했는데 박근혜 정부는 이를 따르겠다고 한 셈이다. 박근혜 정부의 공공기관 합리화 정책의 핵심 골자는 바로 이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비정규직의 규모를 줄이고 격차를 축소하는데 정부가 모범을 보일 것이라고 약속했다. 정부부터 상시 비정규직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되 이전 정부보다 복지혜택을 늘리겠다고 공약했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공공기관 합리화 정책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은 말의 성찬에 그칠 공산이 커졌다. 공공서비스의 민간위탁을 통해 늘어나는 것은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을 줄이겠다고 하면서 되레 시장화 테스트를 통해 비정규직을 양산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청소나 시설관리 분야의 민간위탁을 철회하고 해당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고 있는데 박근혜 정부는 거꾸로 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정권 마다 민영화·경영혁신·선진화·합리화라고 말만 바꿨을 뿐 공공기관 정책방향은 달라진 것이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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