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신
한국비정규
노동센터 소장

“늘 만성피로를 달고 사는 남편. 틈만 나면 언제 어디서든 잠이 듭니다. 그래도 가끔 쉬는 일요일이면 아이랑 놀아 주려 어디든 가자고 하는데 안쓰럽기 그지없네요. 가서도 자느라 정신없습니다. 일을 시키려면 잠은 좀 재워 주세요. 일을 그렇게 많이 시켰으면 월급도 좀 챙겨 주세요. 월급은 진짜 너무해요.”(삼성전자서비스센터 협력업체 수리기사 아내가 밴드에 올린 글)

근속이 반영되지 않는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과 하루 12시간을 웃도는 장시간 노동, 점심시간은 사치, 토요일도 종일 출근하지만 휴일수당 미지급, 야간근로수당 미지급, 4개월 동안 하루도 쉼 없이 노동…. 눈 감고 아무데나 찔러도 근로기준법 위반이라는 이곳. 어디 중소영세업체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 굴지의 제조업체인 삼성전자가 주식의 99.3%를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인 삼성전자서비스센터에서 일어난 일이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1970년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그림의 떡인 근로기준법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혹사와 착취를 당하던 어린 여공들의 비참한 실태를 개선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다 결국 자기 몸을 불사른 전태일 열사의 외침이 40여년이 지난 지금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별 셋 삼성. 노동의 최저기준인 근로기준법 위반을 밥 먹듯 해 왔으니 콩밥 먹을 별 숱하게 달아야 마땅하다. 무엇보다 실질적인 사용자가 삼성전자서비스센터임에도 바지사장에 불과한 협력업체 업주를 끼워 법적 책임을 회피하면서 직접고용한 것이나 다름없는 방식으로 인력관리와 제반 근로조건 개입을 일삼아 왔다. 눈 가리고 아웅 하며 명백한 위장도급으로 불법을 저질러 온 것이다. 이런 비인간적인 처우에 고통 받아 온 노동자들이 몸담고 있는 협력업체를 GPA(Great Partner Agency)로 불러온 삼성은 정작 불법고용 행태가 낱낱이 드러나자 오리발을 내밀고 자신들은 아무 책임이 없다며 강변하고 있다. 대법원 판결마저 묵살하고 불법파견으로 판명난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고 있는 현대자동차를 빼다 박은 듯 흡사하다.

참다 못한 노동자들이 참담한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다며 무노조 삼성 철옹성에 노동조합의 깃발을 꽂았다. 정규직은 바라지도 않고 대한민국 국민으로 마땅히 적용받아야 할 노동법 보장이 이들의 소박한 요구다. 대기업의 준법이 생존권 요구가 된 기막힌 시대에 우린 살고 있다. 한국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 자회사가 이럴진대 한국사회 전체에서 얼마나 노동이 천시되고 홀대받고 있을지는 물어보나 마나다. 삼성전자 가전수리 노동자들의 투쟁과 조직화에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갖고 연대해야 할 이유다. 불모지에 피어난 한 송이 꽃처럼 소중한 이 투쟁이 이겨야 자본 편향, 재벌 중심 한국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선회할 수 있다.

좀 더 시야를 넓혀 보면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에서 터져 나온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인권 박탈 문제는 좋은 일자리 정책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둬야 하는지 명확하게 보여 준다. 진짜 사용자를 숨기고 온갖 불법과 탈법의 온상이 된 악질 고용형태인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폐해가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려운 임계점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마트와 케이블방송의 불법 다단계 하도급 문제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 도처에 통계에 잡히지도 않는 나쁜 일자리인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만연해 일자리의 하향 평준화를 가속화해 왔다. 재벌 자본의 탐욕과 불법을 응징하거나 제어하지 않고 시대정신인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의 관건이 되는 좋은 일자리 창출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거대한 먹이사슬 피라미드의 최상층에 자리한 자본가들을 아틀라스처럼 맨 아래에서 힘겹게 떠받쳐 온 가전수리 노동자들의 인간선언이 한국 사회의 새로운 희망이 되고 있다. 을도 아닌 병의 지위에서 갖은 설움을 받아 온 삼성전자서비스센터 수리기사들과 케이블방송 AS·설치 기사 등 지금까지 잊혀져 왔던 비정규 노동자들도 공동체의 일원으로 함께 살아야 한다. 그 시금석이 된 삼성전자서비스센터의 불법고용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부터 좋은 일자리 표본을 제대로 만들어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대한민국 치외법권 지대 삼성, 더 이상 이대로 둬선 안 된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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