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호경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장

지난 4월30일, 3년간 한시적으로 공공기관의 청년 신규채용 3%를 의무화하는 청년고용촉진특별법 개정안(청년고용의무제)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회와 청년유니온 등 청년단체들은 법 통과를 반겼다. 당장에 청년실업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지만 적게는 1천명, 많게는 3천명 가량의 청년들이 ‘좋은 직장’에 취직할 자리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황은 이상한 쪽으로 흘러갔다. 2004년에 제정된 동법 시행령에 법 적용 나이가 만 15세부터 29세까지라고 규정돼 있고, 이 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30대 초반 구직자들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33살의 한 청년구직자는 격양된 목소리로 청년유니온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 각종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어 28세의 늦은 나이에 대학을 졸업했고, 비정규직으로 서너 곳을 전전하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인생의 마지막 희망으로 공기업 취업 준비를 시작했는데 청년고용의무제 때문에 인생을 망치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청년은 법에 따르면 30세 이상의 구직자는 이제 절대 좋은 직장에 갈 수 없는 것이 아니냐고 분노했다. 그의 말에, 통과된 법이 30세 이상을 배제하는 법도 아니고, 신규채용을 확대하자는 취지의 법이라는 설명을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그는 19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4년 동안 대학졸업 말고는 이력서에 쓸 수 있는 경력을 하나도 만들지 못했다. 그의 말대로 스무 살 남짓부터 한 달을 오롯이 쉬어 본 적이 없는데 33살에도 여전히 이전의 경험들이 아무런 경력도 되지 않는 신규채용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에게 공기업 취직은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살기 바빴던 지난 10여년의 삶에서 보인 마지막 재출발 기회였을 것이다.

매년 공공기관의 신규채용 공채 경쟁률이 수십 대 일을 넘는다. 대기업 경쟁률도 마찬가지다. 전체 고용의 10% 정도 되는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청년들이 몰리고 있다. 그리고 그 경쟁에서 좌절한 뒤 구직도, 교육도 받지 않는 청년 니트(NEET) 인구가 100만명을 넘어섰다. 사회는 청년들에게 눈이 높다고 한다. 하지만 청년들은 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을 뿐이다. 청년들은 어떤 첫 직장에 들어가는지에 따라 평생소득과 평생의 삶을 결정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취직한 사람은 고임금 정규직으로 옮겨 갈 가능성이 거의 없다. 대부분 열악한 노동조건에 지속적으로 노출된다. 30살에 그랬으면 40살, 50살에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열심히 살아도 절대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길을 갈 것이냐, 아니면 어렵더라도 취직에 성공하면 중산층의 보통의 꿈을 유지할 가능성이 있는 길을 갈 것이냐의 갈림길에 청년들이 서 있다. 청년 시절의 어떤 노력, 혹은 행운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지게 돼 있다.

12년의 교육과정과 대학과정에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달려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달리면 대단한 성공을 하거나 1등을 할 수 있으리라 어렴풋이 생각했다. 그런데 열심히 달릴 수 있었던 동기는 희망에 대한 열정이 아니라 낙오하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었다. 이기기 위해 경쟁을 하는 줄 알았는데 지지 않기 위해 경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통의 삶을 살고자 하는 경쟁이다. 그러나 청년들은 누구나 열심히 달리지만 그 누구도 결승점에 도달하지 못하는 이상한 게임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지난 1일 청년고용의무제 적용기준을 34세로 확대하는 시행령이 입법예고됐다. 첫 구직자의 나이가 30대 초중반까지 확대되고 있는 현상을 대변한 조치다. 첫 구직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연령은 계속 확대될 것이다. 이와 함께 2014년 최저임금이 이달 5일 5천210원으로 결정됐다. 최저임금 미달자 중 3분의 1이 청년층이다. 경력도 되지 않는 저임금 불안정한 일자리에서 청년들에게 미래는 없고 생계유지만 있다. 본인의 더 나은 삶을 위한 경력을 걱정하기 전에 당장 내일 먹을 끼니를 걱정하고 있다. 열심히 일하면 지지는 않을 수 있다는 말이 더 이상 청년들에게는 위안이 되지 않는 세상이 돼 버린 2013년 여름이다.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장 (yangsou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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