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생과 시민 600여명이 지난 24일 저녁 서울 중구 태평로 파이낸스빌딩 앞에서 국정원 선거개입을 규탄하는 촛불 문화제를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국가정보원이 여의도 정치권은 물론 한국 사회의 모든 쟁점을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떠올랐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25일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과 관련한 국정조사 실시에 합의했다. 국정원이 지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을 공개한 지 하루 만에 전격 합의가 이뤄졌다. 하지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구성과 일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정치권의 험난한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특히 국정조사 범위와 증인 채택을 두고 벌어질 여야의 힘겨루기가 정국을 격랑에 빠뜨릴 것으로 전망된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회동을 열고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 실시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여야는 국정조사 요구서를 26일 제출하고 27일 본회의에 보고한다. 국정조사 실시계획서는 다음달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한다.

당초 여야는 이달 20일 국정원 국정조사를 6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새누리당이 "국정원 직원과 관련해 민주당의 매관매직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를 지켜봐야 한다"며 버티면서 국정조사 실시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그런 가운데 국정원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을 이날 전격 공개하면서 국회 분위기가 달라졌다.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는 "더 이상 새누리당에 질질 끌려다녀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들끓었다.

새누리당의 국정조사 합의는 야당과의 대치국면을 예방하려는 차원으로 보이지만 속내는 복잡해 보인다. 홍지만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매관매직 의혹과 인권유린도 (국정조사) 의제에 당연히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조사에서 손해만 보지 않겠다는 뜻이다.

반면 민주당은 국정원 개혁방안을 끌어내야 하는 숙제까지 안게 됐다. 이언주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국정원이 다시는 국내정치에 개입하지 않도록 발본색원하는 계기로 삼겠다"며 "회의록 공개에 대한 국정원과 청와대의 사전교감 의혹도 철저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만일 국정원에 대한 국정조사가 지난해 흐지부지됐던 정부기관 민간인 사찰 사건의 전철을 밟는다면 야당이 그 유탄을 고스란히 돌려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국정원 사태는 정치권 밖의 시민·사회진영까지 뒤흔들고 있다. 민주노총은 '민주주의 없이 노동권도 없다'는 제목의 중앙집행위원회 성명에서 "모든 노동자는 국정원 선거개입 규탄 국민행동에 적극 나서자"고 성토했다. 경실련은 "국정원 국기문란 행위에 대한 국정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국정원 규탄 촛불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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