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노동자 권리구제 제도가 있다. 곧바로 법원을 통해서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는데도 굳이 이 제도를 거쳐서 구제받도록 하는 제도가 있다. 사용자로부터 노동자권리가 침해받은 경우 노동자가 구제받을 수 있도록 국가가 마련해 놓은 제도가 있다. 그에 따라 부당해고 등 구제명령이 확정되더라도 해고 등이 무효라고 법률관계가 확정되지 않는 이상한 제도가 있다. 그래서 현대차 비정규 노동자 최병승씨는 파견근로자로 2년 초과해서 근무했으므로 구파견법 고용의제조항에 따라 현대차 근로자라는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고서도 그에 따른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취소 뒤에 다시 사용자인 현대차가 행정소송을 제기해서 지금도 서울행정법원에서 그 사건이 진행 중이다. 최병승씨는 이 부당해고 구제신청 재심판정 취소 사건이 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되더라도 그 판결로 당연히 해고가 무효로 돼서 현대차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사건 재판으로는 단지 현대차가 중앙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구제명령에 따라야 할 의무가 인정될 뿐이다. 이렇게 이상한 노동위원회제도가 이 나라 노동자의 권리구제 제도로 세워져 있다. 이렇게 신속하고 효과적인 구제제도가 되지 못한다는 것만이 문제는 아니다.

노동위원회제도는 노동자 보호를 위해 법적 판단 외의 판단까지 고려해서 노동자 권리구제를 해주는 제도가 아니다. 오로지 법적 판단을 하는 제도로 근로기준법 등 근로자 보호법을 해당 사건에 적용하기 위한 판정기능을 하고 있다. 노동위원회의 판정은 법원의 심판대상이 되고 결국 법원의 판례 법리에 따라 노동위원회는 판정할 수밖에 없다. 만약 판례 법리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서 노동위원회가 판정한다면 법원은 부당하다고 취소하라고 판결하는 것으로 노동위원회 판정을 심판하게 될 것이니 그 노동위원회 판정은 법적 비난을 면치 못한다. 법원의 판결을 받으면 되는 것을 노동위원회 판정을 받도록 한 것이니 역시 이상한 제도인 것이다. 2011년 12월 말 부산지방노동위원회는 2010년 말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투쟁 부당해고 등 구제신청사건 판정을 했다. 현대차 울산공장 비정규 노동자 451명이 제기한 이 사건에서 1공장·3공장은 파견근로를 인정하고, 2공장·4공장·엔진/변속기·시트 사업부는 이를 부정해 도급관계로 인정하는 이상한 판정을 했다. 그 뒤 중앙노동위원회는 재심판정에서 공장별로 구분한 위 부산지방노동위원회의 판정은 부당하다고 취소했다. 그런데 이제 중앙노동위원회는 의장과 비의장을 구분해 의장은 파견, 비의장은 도급으로 판단하고, 도장은 정규직과의 혼재 여부로 파견과 도급으로 판단해 판정서에 쓰고 말았다. 이런 노동위원회 판정이 있자 당시 현대차비정규직노동자들은 노동위원회 앞에서 집회하고 항의했다. 이와 관련해 신청인 노동자들은 물론 피신청인 현대차와 사내하청업체는 모두 불복해서 행정소송을 제기, 서울행정법원에서 그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의 적법성을 심판받고 있다. 이처럼 노동위원회제도는 적법한 법적 판단을 하는 구제제도가 되지 못한 그 판정을 법원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법적 구제제도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이 나라에서 노동자는 노동위원회제도를 통해서 권리구제를 받아야 한다.

2. 노동법원 설치를 위한 관련 법률안을 읽었다. 지난 6월3일 최원식 민주당의원의 대표 발의로 국회에 접수됐다. 2004년 노동자권리 구제를 위해서는 노동법원을 도입해야 한다고 토론회를 기획해서 진행하고 노동법원에 관한 단행본 책자를 발간했다. 토론회를 준비하고 책자를 만들던 그때만 해도, 그것으로 이 나라에서 노동법원 도입에 관한 논의를 촉발시켜서 우리의 법원제도로 도입될 수 있을지, 그것이 언제야 가능할 것인지, 스스로도 확신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2005년 노무현의 민주당 정권 아래 대통령 소속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에서 김선수 변호사를 팀장으로 해서 노동법원 도입에 관한 논의가 시작되고 노동법원 설치에 관한 법률안이 마련됐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에서 그 법률안은 정부안으로 국회에 제출되지 못했다. 당시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에서 만든 노동법원 설치 법률안은 민주당 정권이 한나라당 이명박 정권으로 교체된 이후에야 민주당 의원의 발의안으로 국회에 제출될 수 있었다. 이 법률안이 사개추위에서 논의할 때 나는 위원회에 참석해서 반대 의견을 밝혔다. 노동법원을 도입하면서도 노동위원회를 그대로 존치시켜 여전히 부당해고 등 구제신청사건에 관한 판정기능을 수행하도록 두고 있는 등 노동위원회의 반발을 우려해서 어정쩡하게 절충된 노동법원제도였던 것이다. 이번에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해서 국회에 제출한 법률안은 노동위원회의 심판기능은 폐지하고 노동법원이 전면적으로 담당하는 것으로 정하고 있는 등 과거 사개추위에서 마련한 노동법원안보다는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노동형사사건도 노동법원의 관할로 정하고 있다. 과거에 했던 내 비판의 많은 사항은 이제 이 법률안에 대한 비판이 되지 못하게 됐다. 이 법률안을 읽으면서 현재의 헌법상 법원제도 내에서 내 비판을 조금은 담아냈다고 읽는다. 그렇다고 이 노동법원안이 2004년부터 내가 주장했던 ‘노동자의 권리 구제의 실효성 및 노동자(대표)의 참여보장을 위한 노동법원의 도입방향’에 전면적으로 부합하는 것이라고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노동법원 도입 논의에 부쳐 당시 했던 내 말을 다시 해본다. “(이에 부합하지 않는) 노동법원이라면 도입할 이유도 없음을 유의해야 한다”(노동자 권리구제의 실효성 확보 및 노동자(대표)의 참여보장을 위한 노동법원의 도입방향, 노동법원론(노동과 법 제4호), 2004년). 어쨌든 이 법률안의 발의를 계기로 이 나라에서 노동자권리 구제의 실효성을 보장하고 노동자(대표)의 참여가 보장되는 노동법원의 도입논의가 노동자의 관심 속에서 본격적으로 진행되기를 바라본다.

3. 오늘 이 나라 노동자들에게 노동위원회는 법원보다 우월하게 권리구제를 해주는 국가기관이 아니다. 노동위원회는 법원이 존재하는데도 사용자의 해고 등 불이익처분으로부터 노동자를 구제하겠다고 설치된 국가기관이다. 그렇다면 노동자권리구제에 법원보다 유익해야 한다. 3개월 내에 판정을 받을 수 있고 인지대 등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 노동위원회의 존재이유가 될 수 없다. 그런 노동위원회 판정은 법원의 심판대상이 되는 것이니 그렇다. 법원보다 노동자권리구제를 폭넓게 인정하고 그것을 사용자의 이행을 강제할 수 있을 때에만 노동위원회제도는 노동자권리구제제도로서 존재 의의가 있다. 그렇지 않은데 법원에 선행하는 노동위원회라는 국가기관을 둘 이유가 없다. 시간과 비용만 소요된다. 노동자에겐 고통이다. 오히려 노동자의 권리구제를 위해서는 폐지돼야 한다. 노동위원회에 판정기능이 도입된 이후 사용자로부터 해고 등 불이익처분을 당한 수많은 노동자들은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해 왔다. 법원보다 노동위원회가 사용자의 해고 등 불이익처분으로부터 자신들을 폭넓게 구제해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구제신청서를 제출했던 것이 아니다. 해고당했으니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법원은 변호사 선임료에 인지대 등 비용이 드니 그 보다 적은 비용으로 구제받기 위해, 빨리 판단을 받아보기 위해서 찾아가는 곳이다. 그러니 노동사건에 관해 노동자를 위해 비용이 적게 들면서 신속하게 판결하는 법원이 있다면 당연히도 노동위원회는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이런 노동법원을 도입하고 노동위원회를 폐지해야 한다. 그러나 노동법원이 행정법원, 가정법원처럼 단순히 노동사건을 전담하는 현재의 법원제도로 도입돼선 안 된다. 그것은 비난의 대상을 노동위원회에서 법원으로 바꾸게 될 뿐이다. 공익위원이 아니라 판사가 판결한다고 해서 노동자권리가 보호되는 것은 아니다. 구체적인 사건에 판례의 노동법 해석 법리를 충실히 적용하는 것이 담보될 뿐이다. 노동자권리 보호를 위한 법원으로서 노동법원이 설치돼야 한다. 법원의 운영, 판사의 임면, 재판진행 등 노동법원의 조직 운영과 재판에서 노동자(대표)가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권리구제를 위해서 존재하는 법원이라고 법률로 명확히 선언하고서 노동법원은 도입돼야 한다. 이를 위한 조직 운영과 재판 절차 등을 고민한다면 얼마든지 제대로 된 노동법원을 도입할 수가 있다. 그래야 노동자들이 법원의 부당한 판결에 항의하며 집회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사용자로부터 침해된 자신의 권리를 구제해주는 기관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 때에야 우리는 이 나라에서 제대로 된 노동자권리구제기관을 갖게 된다. 지금처럼 무용한 노동위원회제도를 폐지하고 노동자(대표)가 참여하는 노동자를 위한 노동법원을 도입해야 한다. 이것은 노동자에 달려 있다. 노동자가 노동위원회제도, 법원제도 등 노동자권리구제제도를 비판하고, 그것을 노동자권리로 심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노동자권리 보호를 위한 노동법원제도를 도입할 수가 있다. 결국 노동법원도 노동운동의 일이다. 심판을 심판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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