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웅 공인노무사(산재보험연구포럼)

최근 여러 노동현안이 불거지고 있다. 그중 지난 7일 고용노동부가 행정예고한 ‘뇌심혈관계 질병의 업무상 질병 인정 여부 결정에 필요한 사항’이라는 개정 고시가 눈에 띈다. 업무상 과로 및 스트레스에 의한 뇌출혈·심근경색의 산재인정 여부를 결정하는 데 있어 어느 정도의 과로가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는 흔히 많은 노동시간으로 피로하다고 한다. 그런데 산재에서 말하는 많은 노동시간은 어느 정도일까. 개정 고시는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에 대해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발병 전 4주 동안 1주 평균 64시간)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업무와 발병과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표현하고 있다. 다시 말해 발병 전 3개월 동안 총 노동시간을 주단위로 나누면 일주일에 60시간 이상의 노동을 제공한 경우 만성적인 과로로 본다는 것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주 40시간 노동에다, 연장근로시간은 1주에 12시간으로 총 52시간을 한도로 정하고 있다. 연장근로시간 한도를 정해 놓은 것은 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건강상의 폐해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주당 52시간을 넘겨 일하는 것을 규제하고 위반하는 경우 이를 처벌하는 내용을 근로기준법에 담은 것이다.

그런데 산재의 경우 이보다 8시간이나 많은 주 60시간, 그것도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3개월 동안이나 주 60시간을 일을 해야 과로로 본다. 그렇지 않으면 1개월 동안 주 64시간이나 일을 해야 과로다. 업무상 과로로 산재가 인정되려면 불법연장근로가 행해지는 사업장, 그것도 한두 시간이 아닌 8시간이나 초과해서 불법이 계속적으로 자행되는 사업장에서 일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제아무리 노동자 본인이 과로라 하더라도 업무상 과로가 아니다.

1주 60시간의 노동시간은 하루 10시간씩 6일을 일해야 나오는 수치다. 주야 맞교대 노동자들에게도 쉽게 나올 수 있는 수치가 아니다. 사무직·연구직 노동자들은 ‘나는 그 정도 노동을 하는데?’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례에서 "노동시간이 객관적으로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과로를 인정받지 못한다. 이것이 업무상 과로를 판단하는 근로복지공단의 태도다.

이런 비판 의견에 따라 개정 고시에서는 "1주 평균 60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경우라도 업무시간이 길어질수록 발병과의 관련성이 서서히 증가할 때"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규정에 의해 60시간 이하의 노동시간을 업무상 과로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 것이라는 기우는 필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야간근무는 주간근무에 비해 더 많은 육체적·정신적인 부담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개정 고시의 내용 또한 마찬가지다.

개정 고시는 근로복지공단이 업무상 재해를 판단함에 있어 가장 구체적인 기준이다. 법과 시행령이 총론적인 부분의 인정기준을 정했다면, 고시는 구체적인 업무상 과로 판단기준이 되는 것이다. 고시 내용처럼 공단이 근로시간 외의 다양한 요인에 대해 종합적인 판단을 한다고는 하지만 아주 높은 노동시간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면 다른 "스트레스 등의 정신적 부담가중 요인"들은 무의미하다. 그래서 업무상 과로의 노동시간 수준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것을 현실적으로 거의 존재하지 않는 수준, 그것도 아예 근로기준법의 연장근로시간 한도를 뛰어넘는 수준으로 정한 것이다.

많은 노동자들은 장시간 묵묵히 일한다. 그리고 그 강도는 노동생산성이라는 명목으로 철저히 감독받는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연간 근로시간 2천90시간(2011년 기준)인 세계 2위의 장시간 노동 국가다. 하지만 이러한 세계 2위 수준의 노동시간도 산재에서는 업무상 과로로 평가되지 않는다. 업무상 과로가 되려면 세계 1위 수준을 훨씬 뛰어넘어야 한다. 노동자들이 뇌심혈관계 질병에 걸리면 ‘과로가 아닌 개인적 질병’이라고 평가받는 것이 통계상 90% 가까이 된다. 그렇게 죽어 간 이들은 말 없는 항변을 지금도 계속한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업무상 과로 수준을 다시 정해야 한다.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