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
울산저널
편집국장

1983년에 나온 영화 <플래시 댄스>는 한국에도 개봉된 춤 영화의 고전이다.

18세의 소녀 알렉산드라(제니퍼 빌즈)는 복잡한 대도시 피츠버그의 제철공장에서 용접공으로 일한다. 잠자리도 버려진 공장이다. 알렉산드라는 밤에는 나이트클럽의 플로어 댄서로 일하는 투잡족이다.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댄서’라는 자신의 꿈을 위해서다.

가냘픈 10대 소녀가 용접 마스크를 쓰고 일하는 거친 작업장에서도 동료들은 그녀를 여성이라고 비하하진 않는다.

이제 나이 오십이 된 주인공 제니퍼 빌즈는 예일대 영문과를 나왔지만 영화배우의 길을 걸었다. 흑인이었던 아버지 때문에 자라면서 인종적 차별과 피해의식을 겪으면서 자칫 비뚤어지기 쉬운 10대를 슬기롭게 헤쳐 나왔다.

지난 19일 거의 모든 신문이 시공 순위 100위 내 건설 대기업에서 첫 여성 현장소장이 나왔다는 기사를 실었다. 주인공은 현대산업개발의 박정한(43) 부장이다. 그녀는 지금 서울 논현동 렉스타워 공사에 현장소장으로 임명돼 일하고 있다.

홍익대 건축공학과를 나와 94년 현대산업개발에 입사해 현장에서 잔뼈가 굵었다는 이력은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기사 뒷부분은 무너졌다. 그녀는 현장에서 일하느라 아직 미혼이고, 건설현장 특성상 사람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에 저녁 술자리 회식에 꼭 참석하고, 그래서 주량이 폭탄주 10잔은 거뜬할 정도라는 미사여구가 나올 때쯤이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기업 건설현장 ‘소장’을 여성이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인 줄 몰라도, 해방 이후 한국 여성들은 직업의 벽을 넘어 건설현장의 다양한 말단 자리에서 보조공으로 일해 왔다.

지금도 건설현장에 가면 벽돌을 나르고, 시멘트를 개고, 미장일을 하는 현장의 보조공 가운데 50대 아주머니 노동자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현장에서 일하느라 아직 미혼이고 남자들과 저녁 술자리에서 폭탄주 10잔을 거뜬히 마시면서 현장소장이 된 커리어 우먼이 부러운가. 되물을 수밖에 없다.

결혼해도 육아 걱정 없이 일하고, 낮과 밤의 가치관이 같은 나라에서 일하는 직장여성들이 더 대접받는 세상이었으면 한다.

50대 청년위원장과 40대 위원들이 수두룩한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를 꾸려 놓고 10~30대 청년들에게 다가서겠다는 정부는 또 정상적인가. 그 청년위원회는 구색을 갖춰 다양한 직업군을 아우르는 모양새지만, 정작 지금 노동시장에서 일하는 이 나라 청년들 대부분이 소속된 편의점 아르바이트 직원은 없다.

언론의 받아쓰기 보도도 문제다. 우리 언론은 19일자에 여러 문제로 수사를 받고 있는 CJ그룹이 자기 회사에서 지금 일하는 아르바이트 직원 1만5천271명을 시간제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해도 아무런 고민 없이 받아썼다. 회장의 신병처리를 앞둔 시점에 나온 권력과 화해 몸짓이라는 해설을 붙인 신문은 매우 드물었다.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그동안 탈핵운동가들에게 분노의 대상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터져 나오는 끝도 없는 원전 비리 태풍을 피해 가려고 위원회가 탈핵운동가 2명을 위원으로 새로 뽑았다. 이를 두고도 조선일보는 원자력 안전을 다루는 위원회에 반핵운동가가 들어가서 문제라고 썼다. 9명 가운데 2명에 불과한데.

울산저널 편집국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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