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훈 기자

금융위원회는 지난 17일 공청회 방식으로 금융회사 지배구조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TF를 구성해 3개월여 동안 논의한 내용이지만 발표 뒤 금융위는 공수표·역부족·빈 수레 같은 수식이 붙은 여론의 질타를 들어야 했다. 정작 핵심적인 내용이 빠졌다는 비판이다.

금융위도 보도자료를 통해 CEO·사외이사의 보수상한 제한, CEO 임기제한, 노조 등이 참여하는 공익이사제 도입 같은 의제가 제기됐지만 채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지배구조는 제도의 문제라기보다 사람과 관행의 문제로서 단일한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은 만큼 획일적 규제를 도입할 경우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에 인식을 공유했다”는 이유를 달았다. 그러면서 “자체검증과 시장평판에 따른 관행개선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는 여건 조성에 중점을 뒀다”고 했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는 소유지배구조 성격이 강해 경영지배구조 논의에 중점을 둔 선진화 방안에 포함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야당과 시민사회단체·전문가·노동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2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금융기관 지배구조의 투명성 강화를 위한 새로운 모색 토론회’에서 금융위가 빠뜨린 의제들이 금융회사 지배구조를 바꿀 수 있는 핵심 내용으로 다시 지목됐다. 이날 토론회는 이종걸·김기준 민주당 의원이 주관하고, 금융노조와 사무금융노조·투기자본감시센터·경실련·참여연대가 공동 주최했다.

지배구조 개편, CEO 선임절차 바꾸기 그쳐

첫 번째 발제를 맡은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과)는 “지배구조는 이사와 CEO의 선임이나 이사회 운영에 관련된 좁은 의미와 회사 의사결정을 통제하는 다양한 메커니즘을 뜻하는 넓은 의미가 있다”며 “금융위가 협의의 기업지배구조 역할을 과신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전 교수는 “지배구조를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금융감독당국의 규제 실패를 덮거나 다른 곳으로 주의를 기울이게 할 위험이 있다”며 “CEO 선임절차보다는 대주주나 CEO의 적격성 심사 같은 광의의 지배구조를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국회에 계류돼 있는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제정안에 대해서도 ‘사실상의 지배자’를 규제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전 교수는 “현행 규제는 금융회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주에게만 집중하는 바람에 주주의 특수관계인이면서 주주가 아닌 자에 대한 규제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사실상의 지배자나 그 특수관계인에 대한 적격성 심사를 강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 그는 “임원의 보수총액을 공개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며 “실질적인 공개를 위해 임원과 사실상의 지배자를 대상으로 금액 기준 상위 10대 수령자의 명단과 수령액을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행이나 보험사가 과도한 위험을 추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주식뿐만 아니라 은행채 등 채권의 시장가치에 임원보수를 연동하고,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예금자나 보험계약자·채권자로 확대할 것도 주문했다.

기업 내부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임운택 계명대 교수(사회학과)는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내부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며 유럽식 공동결정제도를 모델로 제시했다. 임 교수는 “최근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둘러싼 일관된 논조 중 하나는 기업의 의사결정과 감시체계에 ‘기업 외부의 목소리’를 포함시키는 것”이라며 “주주에게 감독받고 정보를 주는 것만큼 종업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임 교수가 제시한 공동결정제는 기업의 의사결정단위인 감사회에 노동자의 참여를 보장하는 방식이다. 감사회에서는 이윤분배나 투자·기술도입·작업조직 재구성·노동시간단축 등과 관련한 의사결정이 이뤄진다.

임 교수는 공동결정제를 경제민주화의 주요 수단으로 봤다. 그는 “주주가치 지향의 금융시장자본주의는 20여년 동안 기업기배구조는 물론 사회 영역에서 민주적 의사결정의 자유를 훼손했다”며 “경제민주주의와 금융시장 규제를 목표로 노동계와 시민사회가 새로운 연대경제의 가능성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기준 의원은 “공익이사제를 대체하는 방안으로 유럽식 공동결정제도를 적극 검토할 것”이라며 ”창의적이고 실효적인 규제방안을 도입해 금융기관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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