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승
현대차 사내하청
해고자

#1.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방법원

필자가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및 체불임금소송(2011가합130349)의 선고일이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은 “임금 액수 정리가 미흡하고, 2013년 1월8일 복직명령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며 변론을 재개했다. 다음달 18일 추가심리를 진행할 예정이다. 재판부는 헌법재판소 공개변론과 무관하다고 밝혔지만 4월18일 선고예정이었던 ‘부당해고 행정소송’이 헌법소원 결과 이후로 연기된 전례로 인해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2. 오전 10시20분 현대차 울산공장 아반떼룸

6개월 만에 불법파견 15차 특별교섭이 재개됐다. 그동안 불법파견 특별교섭을 진행하자고 줄기차게 요구했던 현대차는 막상 노조가 내부의견을 통일시키고, 특별교섭 재개 공문을 발송하자 <함께 가는 길>을 통해 “노조측 교섭요구안이 무리하다”, “기 제시된 신규채용 이행”을 주장했다. 심지어 특별교섭도 의미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이날 교섭에서 현대차는 신규채용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특별교섭 본회의를 정례적으로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불법파견 문제로 교섭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며 불법파견 특별교섭 자체를 부정하기까지 했다. 헌법재판소 공개변론이 있는 날, 6개월 만에 재개된 불법파견 특별교섭은 ‘불법파견’ 사실조차 부정하는 현대차로 인해 파행으로 치달았다. 현대차는 왜 대화를 하자고 했을까.

#3. 정오 울산지방검찰청

지난달 24일부터 울산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울산지방검찰청 앞에서 ‘불법파견 책임자 정몽구 구속’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울산시민 15명이 참여했고, 이달 말까지 1인 시위 참여자가 확정돼 있다. 현대차 비정규 노동자뿐만 아니라 시민사회로까지 확산된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를 검찰은 아직까지도 ‘수사 중’이라 말하고 있다. 참 답답하다.

#4. 오후 2시 울산지방법원

2010년 불법파견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25일간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 10명이 ‘업무방해와 집시법’ 위반 혐의로 총 징역 78개월과 벌금 160만원을 선고받았다. 다행히 모두 집행유예 2년을 받아 구속수감은 되지 않았다.

법 준수를 요구한 노동자는 처벌받고, 불법파견으로 파업 원인을 제공한 정몽구 회장은 법정은 고사하고 아직까지 검찰조사도 받지 않은 사회가 정상적인지 의심스럽다. 법 위에 군림하는 현대차를 보면서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진실처럼 느껴진다.

#5. 오후 4시 현대차 울산공장 정문

고 양봉수 열사 18주기와 현대차 열사합동 추모집회가 열사광장에서 열렸다.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 해고자들이 추모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정문에 갔으나 현대차 경비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막아섰다. 중앙노동위원회가 부당해고로 판정한 뒤 현대차 복직을 명령했는데도 노동자들은 또다시 정문에서 출입투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추모집회를 주관한 열사회 동지들이 지회 해고자들의 출입이 보장되지 않으면 추모집회를 진행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정규직 노동자들도 함께 출입투쟁을 하자고 주장하자 현대차 총무과 팀장은 모든 해고자를 출입시켰다. 폭력을 유발시키고, 불법을 저질러도 아무런 문책을 받지 않고 오히려 승진을 하니 현대차에서 불법이 기승을 부린다. 현대차는 법도 상식도 없는 무법천지가 됐다.

#6. 오후 4시24분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옛 파견법 6조3항(고용의제)에 대한 헌법소원 공개변론이 열렸다. 파견법을 만들 때 환영성명을 냈던 현대차는 15년 후에 파견법이 위헌이라고 한다. 현대차를 대리한 한 변호사는 "불법파견 노동자도 파견법 고용의제를 적용한다"고 판결한 예스코 사건(대법관 만장일치로 불법파견도 파견법상 고용의제 적용대상임을 확정한 전원합의체 판결)을 판결한 대법관이었고, 또 다른 변호사는 예스코 사건에서 노동자측 대리인이었다. 돈과 권력이 법조인들의 양심마저 변화시킨 걸까. 스스로가 인정한 판결과 옳다고 변론한 사건을 부정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현대차가 떼를 써도 ‘인간존엄성을 보호한다’는 헌법정신이 살아 있는 한 헌법재판소가 상식적인 판결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

6월13일 하루가 지났다. 이상하리만큼 많은 일이 있었다. 억압과 고통 속에서 투쟁하고 있는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 법 위에 있는 현대차,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한없이 강한 검찰과 법원. 하루 동안 현대차를 둘러싼 풍경이 우리 사회 부조리를 압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열심히 살았다. 삶의 터전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죽지 않기 위해 오늘도 발버둥 치며 살고 있다. 헌법재판소 공개변론에서 노동자 대리인들의 최후변론으로 하루 소개를 마감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내하청 근로자들의 영령이 하늘에서나마 위로를 받을 수 있도록, 땅에서 더 이상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지 않도록, 그리고 우리 사회 취약계층인 사내하청 및 불법파견 근로자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들이 정의가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루빨리 합헌 결정을 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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