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
울산저널 편집국장

경향신문이 지난 12일 경제면에 <미래의 원전 비중 정할 기구에 ‘친원전 인사’ 일색>이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경향신문은 에너지기본계획에 따른 원자력 발전 비중을 결정하기 위해 정부가 구성한 전문가그룹 17명 가운데 탈핵을 주장하는 인사가 2명에 불과하고 나머지 15명은 모두 ‘친원전 인사’들로 구성돼 있다고 비판했다.

다음날인 13일자 조선일보는 1면에 새로 구성되는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 가운데 반원전 운동가가 2명이나 포함돼 문제라는 투로 <새 원자력 안전위원에 반원전 운동가 포함 논란>이란 제목의 기사를 썼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전체 9명의 위원 가운데 2명의 반원전 운동가가 들어가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정치투쟁의 장으로 변질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나만 묻자. 그동안 친원전 인사들 일색으로만 채웠던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원자력 안전’을 위해 뭘 했는지. 그들은 하나같이 원전 마피아의 하부구조를 담당하면서 ‘안전’ 대신 불안과 위험을 증폭시키는 촉매제 역할 외엔 아무것도 한 게 없다. 최근 벌어지는 이 추잡한 원전 비리를 보고도 위원회를 모두 친원전 인사들로만 채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상식을 가진 언론인가.

13일 아침 출근길 차 안에서 기독교방송(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들었다. 아스팔트 빛깔의 흑비가 내린 여수산업단지공단 인근의 한 농민이 나왔다. 유기농으로 재배하는 복분자 수확을 앞두고 모두 버려야 할 판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농민은 그동안 소비자들에게 농약을 치지 않은 자기 복분자를 씻지도 않고 먹으라고 권할 만큼 자부심이 강했다.

그러나 지난 11일 내린 비에 세워 둔 하얀 차 지붕이 모두 아스팔트 빛깔을 띤 것을 보고 놀랐다. 황급히 자기 집 옥상으로 올라가 봤더니 거기도 온통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는 중국에서 온 황사와는 달랐냐고 물었다. 농민은 색깔 자체가 달랐다고 답했다. 농민의 집은 인근 율촌산업단지와 직선거리로 2~3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또 다른 한 지역주민은 지난해부터 비가 온 뒤 쇳가루 같은 먼지를 발견하고 정부에 민원을 넣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주변 여수와 율촌공단의 불법 샌딩작업을 원인으로 의심하지만 조사할 아무런 힘이 없어 발만 구른다고 했다.

라디오 인터뷰 도중 그는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이런 비가 내렸으면 정부가 이렇게 모르쇠로 일관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답답해했다.

정부가 모르쇠로 일관하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언론은 어땠을까. 신문시장을 과점한 조중동은 지면에 한 줄도 언급하지 않았다.

열 개가 넘는 중앙일간지 가운데 13일자 신문에 이 뉴스를 다룬 곳은 3개 정도에 불과했다. 그나마 한국일보가 사회면에 사진과 함께 <여수에 쏟아진 ‘검은 비’ 산단 쇳가루 분진 탓?>이라는 제목으로 지역주민들의 마음에 가장 근접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도 이 기사를 실었지만 제목은 하늘에서 검은 비가 내렸다는 정도에 그쳤다. 한겨레는 사회면 맨 아래에 2단 기사로 처박았고, 경향신문도 사회 3면 아래에 처박았다.

서울에서 이런 비가 내렸다면 난리가 났을 거다. 우리 언론은 1970년대부터 수도권 과밀화를 막고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해 정부가 추진해 온 정책에 원칙적으로 찬성해 왔다. 그 결과 중 하나가 ‘공기업의 지방이전’이란 이름으로 가시화됐다.

사람과 사무실이 내려오면 뭐 하나. ‘생각’이 내려오지 않는데.

울산저널 편집국장 (leejh67@hanmail.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