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국민적 합의와 동의 없는 철도 민영화에는 반대한다”고 공약한 바 있다. 그는 민영화 논의에 앞서 “철도산업 장기 비전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고도 전제 조건을 달았다. 철도노조가 보낸 공개질의서에 대한 답변이었다.

이는 박 대통령은 전 정부와는 달리 무리한 민영화를 추진하지 않을 것이란 기대감을 갖게 했다. 하지만 뚜껑을 여니 박 대통령의 공약은 ‘공갈빵’이었다.

민영화라는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철도를 선두로 가스·공항·병원·전력·은행·물 등 우리사회의 주요 공공재를 두고 민영화라는 이름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데 전 정부와는 달리 대놓고 진행하기보다 은밀하고 교묘하게, 우회로를 통해 추진하고 있다는 공통된 지적이 나온다.

철도는 철도공사가 참여하는 출자회사 설립으로, 가스는 이른바 청부입법을 통해, 전력은 민자 발전회사 신설로, 공항은 청주공항 운영권매각 재추진으로, 진주의료원 혼란을 틈타 의료법 개정안 발의 등의 다양한 방식의 민영화가 시도되고 있다.

민영화 대상으로 거론되는 공공부문 사업장 노동자들은 민영화 저지를 위해 거리로 나선지 오래다. 이들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20년 가스 민영화 전쟁 종지부 찍겠다 

이종훈
공공운수노조
가스공사지부장

자본가들이 국민의 생활과 직결된 전기·가스·철도와 같은 필수적인 공공재에 대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생각하면서 민영화 전쟁이 시작됐다. 그런 측면에서 민영화 문제는 이 사회의 정의와 가치에 대한 문제다.

가스분야의 경우 민영화 전쟁이 길었다. 20년 전쟁을 치르고 있다. 회사를 통째로 매각하는 완전 민영화에서부터 쪼개 파는 부분 민영화, 에너지 대기업이 시장에 참여하는 신규 진입방식의 민영화가 추진됐다. 지금까지는 국민의 반대와 노조의 투쟁으로 막아 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이전 정부들보다 조금 더 은밀하고, 눈치를 못 채게 진행하고 있다. 마치 산업정책인 것처럼, 민간 직수입 활성화 같은 민영화 같지 않은 용어들을 쓰면서 사실상 민영화를 은폐하고 있다. 정부가 새누리당 의원들을 동원해 청부 입법한 '도시가스사업법 일부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가스요금의 공공성이 완전히 훼손된다. 현재 민간 직수입자 점유율이 5년 이내에 20%로 늘어나게 된다. 궁극적으로 70%까지 점유율이 늘어날 것이다. 결국 재벌들은 특혜, 서민에게는 요금 폭탄으로 귀결된다는 말이다.

가스공사지부는 민영화 정책의 본질을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국민이 민영화 문제점을 인식할 수 있도록 투쟁하고 있다. '도시가스사업법 일부 개정안' 입법을 막는 주체로서 여의도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20년 동안 지속된 가스 민영화 전쟁을 끝내도록 하겠다.

청주공항 민영화 백지화·지방공항 내실화해야 

이시우
한국공항공사노조
위원장

지난해 국감에서 제기됐듯 청주공항은 매각과정 내내 졸속 특혜매각 의혹으로 얼룩졌다. 지난 5년간 민영화 추진에 따른 투자 중단으로 시설물 노후화 등 개선이 시급함에도 정부는 또다시 민영화 재추진을 밀실에서 강행하고 있다. 이는 청주공항에 대한 투자단절로 여객편의시설 확충 및 공항활성화를 위한 사업 시행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정부는 그간 인천공항 허브화를 위해 지방공항의 국제선 운항에 제동을 걸어 왔다. 그러다 보니 지방공항은 KTX 운행 등에 따른 국내선 운항단축과 비정기 국제선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갖게 됐다. 하지만 국토균형 발전이란 틀에서 본다면 일본·중국·홍콩·동남아 등 일정 거리에 있는 국가 간 국제선을 지역공항에서 정기운항하게 되면, 전국 지방에서 차비와 시간을 들여 굳이 인천공항까지 갈 필요가 없을 것이다.

청주공항을 시작으로 지방공항을 민영화할 경우 극단적 이윤추구에 의한 국민의 공항이용 비용이 증가해 결국 그 이윤은 재벌과 외국투기자본에 돌아간다. 이는 이미 선진국의 공항민영화 사례에서 자명하게 확인되고 있다. 외국자본과 소수 재벌에 ‘인센티브’까지 주며 재매각을 강행하려는 것은 또 다른 특혜시비 논란만 낳을 것이다. 정부는 국민에게 실익이 없는 청주공항 민영화를 백지화하고, 지방공항 내실화를 위한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민자발전소 전력 수급 불안정성 불러올 것 

신현규
발전노조 위원장

박근혜 정부는 발전부문에서 매각 방식의 민영화가 아닌 우회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 민간재벌 대기업들에게 발전소를 대량으로 허가해주는 방식이다. 정부가 민간기업에 발전산업 진입 통로를 열어 주면서 기존 발전공기업의 영역이 축소되고 있다. 민간발전소 비중을 30%까지 늘리는 것이 정부가 올해 2월 발표한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골자다. 민간기업 발전소의 비중이 증가하는 것은 정부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는 발전소가 늘어난다는 의미다.

현재 20%인 민간발전소 비중이 30%까지 확대되면 이들이 우리나라 전력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정부는 발전소가 많아야 한전이 싼값에 전기를 사들일 수 있다는 논리다. 과연 그럴까. 민간기업은 이익이 나지 않으면 발전소를 가동할 이유가 없다. 발전소를 가동하는 것이 손해라고 판단하면 고의로 발전소 가동을 중단할 수 있다는 얘기다. 민간기업들의 전기 가격을 둘러싼 눈치보기로 발생된 캘리포니아의 블랙아웃 사태만 봐도 알 수 있다.

전기는 단 1초라도 공급이 중단돼서는 안 된다. 최대한 안정적으로 계획하고 운영해야 하는데 민간발전소가 늘어날수록 안정성이 깨진다. 발전부문이 공공의 통제를 벗어나 이윤을 추구할 때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국토부, 철도민영화 일방 발표 중단해야 

김재길
철도노조 정책기획실장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이틀 전에 철도노조의 정책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철도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남북철도연결, 대륙철도연결, 한국철도의 해외시장 진출, 철도의 공공성 기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중장기 청사진이 먼저 결정되고, 이를 바탕으로 철도산업발전방안이 추진돼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민영화를 하지 않겠다고 한 대통령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국토교통부는 정부 출범 100일도 안 돼 졸속적이고 밀실에서 진행한 철도산업 발전방안 초안을 내놨는데, 이를 들여다보면 철도공사를 갈가리 찢어놓고 있다. 철도운영부문을 세분화해 완전 개방하는 방향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졸속·밀실일 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공약과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만큼 국토부는 이달 말로 예정된 철도 발전방안 발표를 철회해야 한다. 그 대신 3~6개월 정도 철도 중장기 발전방안을 논의할 노·사·민·정 논의기구를 만들어 그 안에서 모든 얘기를 다 꺼내 놓을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철도 발전방안은 철도노동자의 임금·고용·노동조건의 변동이 우려되는 만큼 국토부는 철도노조와 교섭을 통해 이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만약 노조의 요구를 무시하고, 국토부가 일방적으로 안을 확정하려고 한다면 전국 역사에서 농성과 촛불시위가 벌어지게 될 것이다. 노조는 이달 25~27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벌여 7월부터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에 나설 것이다.

MB 정부 때 폐기된 의료민영화법 부활 우려 

변혜진
보건의료단체연합
기획국장

맞춤형 복지 운운하면서 당선된 박근혜 정권이 집권 100여일 만에 공공의료기관인 진주의료원을 폐쇄시키더니 6월 국회에 줄줄이 의료민영화 법안을 올리고 있다. 맞춤형 복지는커녕 있는 것마저 빼앗고 이제 국민 의료비마저 폭등시키려 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입법하고 있는 의료민영화 법안들은 이미 MB정부 시기 국민들의 반대로 폐기됐던 법안들이다. 박근혜 정부는 보험회사들이 병원에 직접 환자들을 유인·알선할 수 있도록 해 환자를 ‘거래’하게 하고 건강보험이 아니라 민간보험으로 갈아타도록 유인·알선하는 것을 허용하려 한다. 동시에 보험회사나 해외환자 유치업자와 병원이 ‘의료호텔’을 할 수 있도록 해 불필요한 치료나 검사, 고가 건강검진으로 환자들의 호주머니를 터는 것을 허용하려 한다. 그야말로 미국식 의료제도인 보험사-병원 간 직계약이자 민간보험회사와 병원자본 간의 카르텔을 허용하는 법안들이다. 여기에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은 의료소외계층을 위한다며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까지 올려놨다. 그러나 ‘원격진료’는 의료소외계층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 법은 지난 몇 해 동안 SK·KT·엘지·삼성 등 재벌들이 의료를 이용해 돈벌이를 하려고 온갖 로비로 요구했던 것을 추진하는 것일 뿐이다. 원격의료는 국제적으로 아직까지 그 안전성과 비용 대비 효율성이 입증된 바 없다.

우리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고 의료비를 폭등시킬 모든 의료민영화 법안을 반대해야 한다. 공공의료를 파괴하고 의료상업화를 부추기는 박근혜 정부의 의료민영화 시도에 맞선 강력한 투쟁이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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