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순
노동환경
건강연구소
일과건강 연구원
(화섬연맹
노동안전실장)

#1. 석유화학단지 A사 노동자 증언에 따르면 가동한 지 오래된 설비 중 배관 밸브의 노후화가 심각했다. 보수·정비가 제때 이뤄지지 않아 황산 등 취급물질이 수시로 누출돼 이를 발견한 현장 노동자들이 고무장갑을 이용해 임시방편으로 막거나, 처리반(공무팀)이 올 때까지 대기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이 크게 다치지 않는 한 누출사고는 보고되지 않는다. 사고통계로 잡히지 않는 것이다.

#2. 석유화학단지 B사 노동자는 작업 중 누출사고가 발생해 병원에 입원했지만 보도는커녕 회사에서도 쉬쉬하고 있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그는 “부상을 당했지만 심하지 않고 사망사고가 아니기 때문에 사업장 내에서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고 하소연했다. 치료 중인 당사자가 나서 스스로 신고하기 힘든 현장실태를 보여 준다.

#3. 한 공단에서 불산을 취급하는 C사업장의 공장장에 따르면 예전부터 누출사고가 빈번했다고 한다. 불산을 취급하며 중소량의 누출은 자주 있었고, 이러한 경우 신고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자체 소방대나 설비로 처리해 인명피해가 크게 나지 않는 한 외부로 알릴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공장장은 "최근 사회적 이슈가 돼 여기저기 신고를 하다 보니 사고 발생빈도가 높아진 것처럼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4. 석유화학단지 D사 노동자 증언에 의하면 밤 9시께 야간작업을 하던 중 크레인이 주변 고압선을 건들면서 두 차례 폭발과 함께 화재가 발생했다. 이후 출동한 사업장 자체 소방대가 화재를 진화하며 사고가 정리됐다. 엄청난 폭발음과 화염을 발생시킨 사고였는데도 지역언론에도 보도되지 않았다. 사고통계에도 잡히지 않았다.

지난해 9월부터 급증한 화학물질사고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사고가 적었을까. 산업현장에서 사고는 예전부터 있었지만, 집계되거나 보도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와 일과건강은 이러한 주장의 근거를 찾아보고자 고용노동부 제조산재예방과의 ‘전국 주요산단별 화재 폭발 누출 사고 현황자료’와 지자체(전라남도·울산시) 자료를 비교·분석했다. 그 결과 집계 과정에서 사고 누락·은폐 가능성이 있었음을 보여 주는 수치가 나왔다.
 

 

2010년 여수산단 폭발·누출 사고 현황에 대해 노동부와 전남도청 동부출장소가 집계한 결과를 비교하면 누락된 사고건수가 5건으로 누락비율이 83%에 달한다.<표 참조>

울산국가산단 폭발·누출 사고 현황을 울산시와 노동부의 통계치로 비교해 보면 분석의 의미가 없을 정도로 큰 차이가 났다. 노동부 통계로는 매년 1~2건인 데 비해 울산시는 매년 40여건의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했다. 올해 3월19일 열린 '기업체 간담회'에서 울산시가 제출한 자료에서 확인한 것이다. 이처럼 노동부의 공식통계와 지자체 집계가 다르다는 것은 사업장에서 산재신청이나 산업재해조사표를 제출하지 않고 공상으로 처리해 집계에서 누락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고은폐 가능성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이번 조사는 한정된 정보와 통계자료로 인해 수집 과정에서 한계는 있었지만 현재까지 얼마나 많은 사고가 은폐돼 왔는지를 확인하는 것에는 부족함이 없다. 노동부를 비롯한 관계당국은 제기된 문제와 관련해 원인을 조사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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