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혜정 기자

"가스 민영화법을 막겠다는 게 집단 이기주의라구요? 허허."

이종훈(48·사진) 공공운수노조 한국가스공사지부장이 기가 찬 듯 웃었다. "가스공사 상황을 모르고 한 소리 아니겠냐"고 잘라 말했다.

'가스 민영화법'이라고 비판받고 있는 도시가스사업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김한표 새누리당 의원은 최근 노동계를 향해 반격을 가했다. 예상대로 "집단 이기주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김 의원은 성명을 내고 "가스공사의 영업이익이 떨어질 것을 우려해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며 "기관의 집단 이기주의"라고 주장했다.

집단 이기주의나 '밥그릇 싸움' 논리는 노동계의 투쟁이 있을 때마다 정부나 사측이 주머니에 넣고 만지작거리는 카드 중 하나다. 이와 관련해 이 지부장은 "이번에는 김한표 의원이 패를 잘못 꺼냈다"고 말했다. 공공부문 민영화를 추진했을 때 벌어지는 문제점을 국민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섣부른 여론전은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10일 오전 국회 인근 산업은행 앞 가스공사지부 농성장에서 만난 이 지부장은 "도시가스사업법 개정안이 통과된다고 해서 당장 가스공사에 영업손실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며 "장기적으로는 그렇겠지만 조합원들에 대한 구조조정도 단기적으로는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럼에도 조합원들이 '파업 불사'를 외치며 투쟁하는 이유는 법안이 통과되면 도시가스 요금이 두 배 이상 폭등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부는 이날부터 국회 앞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가스 민간직수입 규제완화를 골자로 하는 도시가스사업법 개정안은 6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달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새누리당과의 당정협의에서 개정안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법안심사소위는 18~19일로 예정돼 있다. 지부는 개정안이 법안심사소위에서 통과될 경우 20일부터 전면파업에 돌입할 방침이다.

- 도시가스사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어떤 문제가 생기나.

"가스요금의 공공성이 완전히 훼손된다. 현재 민간직수입자 점유율이 5%인데, 5년 이내에 20%로 늘어나게 된다. 궁극적으로 70%까지 점유율이 늘어날 것이다. 결국 가스 수입과 판매는 민간에너지 재벌이 지배하게 되고, 가스공사는 가스배관만 관리하는 회사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가스공사는 천연가스 원료비에 단 1원의 이윤도 붙이지 않았다. 반면에 사적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사업자들은 이윤을 붙인다. 겨울철 수요가 많은 가정용 소비자들은 원가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이유로 두 배 이상의 요금을 내야 할 것으로 우려된다.

이미 가스산업을 민영화한 일본이나 영국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일본과 한국의 가정용 도시가스 요금을 비교해 보면 지난해 기준으로 동일한 조건에서 한국이 850원이었을 때 일본은 2천380원이었다. 영국에서는 가스산업 민영화 이후 난방을 못해 동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조합원들은 이런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 파업까지 염두에 두면서 투쟁하는 이유다."

- 가스 민영화 저지투쟁을 시작했는데. 여론은 어떤가.

"공공부문 민영화는 특히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현장에서 대국민 선전전을 벌이면서 서명운동을 벌였는데 보름 만에 10만명이 넘는 서명을 받았다. 오늘까지 12만2천100여명의 서명을 받았다. 서명용지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 전달할 예정이다."

- 정치권의 움직임은 어떤가.

"정부와 새누리당은 당정협의를 통해 6월 임시국회에서 개정안을 처리한다는 데 암묵적인 합의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적으로 개정안에 반대하고 있지만 당론으로 막겠다는 의지는 없는 상태다. 민주당은 6월 임시국회 화두를 경제민주화로 놓고, 본인들이 만든 법을 통과시키는 데 주력하는 것 같다. 그런데 도시가스사업법 개정안도 경제민주화를 역행하는 대표적 악법이다. 민주당은 법안 철회를 위해 보다 적극적인 입장을 밝혔으면 한다."

이 지부장은 "도시가스사업법 개정안은 국민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대표적인 경제민주화 악법"이라며 "서명운동과 선전전을 통해 국민의 민영화 반대입장을 확인한 만큼 전면파업·총력투쟁으로 반드시 법안 통과를 막아 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