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

얼마 전부터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계약서상 당사자 표시를 고쳐 사용하고 있다. '갑'과 '을'의 표시를 원래 의미인 '의뢰인'과 '대리인'으로 바꾼 것이다. 사용의 편리보다 부끄럽게도 달라진 사회적 의미를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바야흐로 '갑을 논쟁'이 정점을 향하고 있다. 민주당은 아예 '을'을 위한 정당으로 거듭나겠다고 하지 않는가.

아마도 일련의 사건들은 갑을 관계의 규형을 가져다주는 큰 계기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작은 명예혁명이라고나 할까. 상황도 그리 나쁘지 않다. 최저임금 인상이나 통상임금 재산정에 따른 임금을 지급하면 경제가 망할 것이라던 대기업들은 세계 곳곳에 조세회피 목적으로 위장회사를 설립하고 수천억원씩 감춰 두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갑의 위선과 거짓말이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논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누구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제껏 이른바 갑의 지위를 남용하지 않은 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을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이다. 노동자와 조직된 노조도 그렇다. 사용자에 비하면 노동자는 분명한 을이다. 하지만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엄연히 유사한 관계가 존재함을 부인할 수 없다. 흔히 겪는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 사이도 그렇다. 언제나 갑이라고 여겨졌던 사용자라고 하지만 때론 상황에 따라서는 을의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다. 최근 논쟁에 불을 붙인 모 대리점 사건이 좋은 예일 것이다.

이참에 노조도 돌아보자. 노조는 헌법과 법률에서 인정한 분명한 을이다. 힘의 불균형을 보완해 대등한 교섭력을 보장하기 위한 목적이 노동기본권의 고전적 정의이기도 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노조가 언제나 을이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혹시 일부 관계에서는 스스로 갑임을 자처하지는 않았는지 하는 의문이 든다. 애초에 약속한 을의 역할에 소홀하고 갑인 양 행세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다.

조직된 노조의 중요한 책무 중의 하나는 미조직 노동자들을 위한 보호라고 말해 왔다. 힘이 센 노조는 영세하고 힘이 약한 노조와 연대하겠다는 선언도 늘 있어 왔다. 훌륭히 본받을 예가 없는 것은 아니나 반성해 보면 이 같은 약속이 약속으로 끝난 경우가 허다하다. 대기업 사업장 정규직노조와 비정규직노조 사이에 속이 후련한 연대가 있었다는 뉴스를 들어본 지 오래다.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정규직노조의 이기심에 있다는 주장에 시민들이 호응하는 것을 두고 보수언론의 여론호도라고 비판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현실 때문인지 최근 양대 노총이 아닌 노동단체들과 전문가들이 연대해 비정규 노동자들의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다. 조직된 노동자들에게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충고를 귓등으로만 흘릴 수 없는 이유다.

나름의 분석으로는 새로운 동력을 찾지 못하고 오랜 기간 같은 방식의 운동에 머무른 결과가 아닌가 한다. 갑을 논쟁에 붙이자면 오늘의 조직화된 노조는 미조직된 노동자들로부터 이미 공고해진 기득권 연장에만 안주하려는 갑의 모습이 아닌가 한다. 많은 시민들이 우리의 모습을 갑으로 여기지 않는가.

최근 몇 번의 정부가 지나갔지만 노동자들이 주도적으로 노동정책을 만들어 낸 경험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정부입법으로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정책은 더더욱 그러하다. 지난해 총·대선 기간에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나온 수많은 노동입법에서 의회나 정부가 조직화된 노동자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한 예는 드물다. 당사자인지 여부를 고려하면 딱히 할 말이 없다. 하청·기간제·파견 등 비정규 노동자들이 조직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조직 노동자들의 보호자로 정부가 나섰다는 자체가 슬픈 현실이다.

이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실천방안이 있었다. 그럼에도 정작 실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그 순서가 잘못되지는 않았는지 재검토해 볼 때다. 바로 조직화가 시작이다. 고용률 70% 달성, 좋은 시간제 일자리 창출 등 정부는 연일 고용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이 같은 정책이 좋은 정규직 일자리를 나쁜 일자리로 만들기 위한 꼼수라고 비판만 할 것인가.

일자리를 찾고 있는 노동자와 열악한 일터에 있는 노동자들이 적어도 정부의 덕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나.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의 대변인이 아닌 당사자가 돼야 한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 (94kimhy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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