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승
현대차 사내하청
해고자

투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싸우는 기간만큼 마무리 과정도 매우 중요하다. 긴 시간 함께 투쟁한 동지들 의견을 존중하면서 긴 싸움으로 인한 상처를 최소화해야 한다. 결과에 따른 사회적 영향력과 민주노조운동의 방향성도 따져야 한다. 이 투쟁 결과로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현대차 불법파견 10년 투쟁도 정리해야 할 시점이 있고, 여러 동지들의 노력으로 그 시기를 향해 가고 있다. 그래서 해고조합원들은 28일부로 양재동 현대차 본사 앞 길바닥에서 37일째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철탑에 오른 두 명의 노동자도 224일째 고공농성을 진행하고 있고 현장조합원은 10개월째 파업지침을 이행하고 있다.

10년의 투쟁 어떻게 일단락 지을까

그렇다면 10년을 이어온 투쟁을 어떻게 일단락 지을 것인가. 너무 길게 투쟁하고, 극단적 농성이 길어지니까 어떻게든 빨리 마무리 하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최소 요구를 쟁취해 다음 투쟁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가. 분명 두 가지 다 중요하다. 분리시켜서는 안 된다. 하지만 현 상황은 두 가지 중 무엇을 중심에 놓을 것인지를 요구받고 있다. 무게중심이 어디냐에 따라 투쟁과 교섭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는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지난 20일 금속노조·현대차지부·현대차비정규직 3지회는 불법파견 특별교섭위원(교섭단) 간담회를 개최했다. 교섭단은 특별교섭 재개와 잠정합의안을 7인 모임(금속1·지부3·지회3)에서 다수 의결로 확정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지회는 교섭단 회의에서 확정한 7인 모임에 대해 처음부터 반대해 왔다. 하지만 특별교섭 재개와 현대차비정규직 3지회 입장 통일을 위해 지회는 지난달 9일 금속노조 위원장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간담회에서 박상철 노조 위원장은 “현대차비정규직 3지회가 동의하지 않으면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회 쟁대위는 ‘3지회 동의를 전제로 한 7인모임’에 동의하고, 5인 모임(금속1·지부1·지회3) 주장을 폐기했다. 당연히 7인 모임 동의여부를 묻는 회의에서 ‘(7인의) 투표를 통해 의결을 할 수 있다’는 논의는 존재할 수 없었다.

그러나 20일 교섭단 회의에서 돌연 7인 모임은 투표로 결정할 수 있는 최고 의결기구가 됐다. 쉽게 말해 현대차비정규직 3지회가 반대해도 금속노조와 지부가 찬성하면 잠정합의안으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해당 지회 집행부가 모두 반대해도 현대차비정규직 3지회 총회에 안건으로 상정할 수 있는 이상한 상황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날 교섭단 회의에서 현대차지부 실무책임자인 권오길 사무국장은 “지부는 사실 교섭 2~3번 만에 끝내자는 의견”이라고 했으며, 윤한섭 기획실장은 “마지막 안을 받아 본 것 같다”고 말했다. 박상철 위원장은 24일 현대차지부 대표간담회에서 “7월에는 붙어야 하고, 지부 상태나 요구안을 보면 하기휴가를 넘겨야 될 테고, 9월에는 선거다. 그래서 6월밖에 없다”고 했다. 현대차 윤갑한 사장은 몇 차례 담화문에서 불법파견 특별교섭 재개를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투쟁이 빠진 특별교섭 내외부에서 이용

특별교섭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현대차지부 핵심 간부, 지부와 지회를 중재하는 역할을 하는 금속노조 위원장 전략은 사실상 빠른 시일 내에 교섭을 마무리하자는 모양새다. 이런 상황이라면 7인 모임은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 해결을 위한 투쟁과 교섭을 지휘하는 지도부가 아니다. 현대차가 제시하는 수정안을 받아들일지 말지 결정하는 역할을 할 게 뻔하다. 당연히 불법파견 특별교섭은 형식적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지금도 현대차는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만큼, 생산중단이 가능한 투쟁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사측 수정안은 ‘신규채용’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투쟁이 빠진 특별교섭은 외부에서도 이용당하고 있다. “현대차 노사 간 협의가 잘 이뤄지는 것이 우선이고, 이를 뒤에서 최대한 지원하는 것이 경찰 역할”이라는 22일 이성환 경찰청장은 얘기했다. 또 현대차 불법수사를 담당하는 울산지검 공안부 담당검사는 24일 천막농성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검찰에 고소한 사건은 계속적으로 확인 중에 있고, 고의로 미루는 일은 없다. 몇 주 전에 현대차 임원도 조사했다. 특별교섭을 재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특별교섭을 핑계로 현대차 기소를 계속 늦추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중앙노동위원회는 3월19일 현대차비정규직지회 부당징계(해고·정직) 심의결과가 나왔음에도 2개월 넘게 결정문을 송달하지 않아 ‘승소자’ 권리를 박탈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다음달 13일 ‘구 파견법 6조 3항(고용의제)’을 대상으로 제기된 헌법소원에 대해 공개변론을 예정하고 있다.

이렇게 현대차 불법파견 투쟁을 놓고 벌어지는 대내외적인 양상을 보면, 마치 현대차비정규직지회가 정규직 전환 요구를 포기하고 하루빨리 불법파견 특별교섭을 열어 싸움을 마무리 하라는 협박처럼 보인다.

지회는 많은 우려에도 지회 결정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21일 쟁대위 회의를 개최했다. △5월20일 불법파견 교섭단 간담회 결과를 존중한다 △다음 불법파견 특별교섭 노측 교섭단 회의에서 지회 요구안(조합원 타결 즉시 정규직 전환 등)이 교섭단 요구안으로 확정되지 않으면 특별교섭을 진행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했다. 의결방식은 인정하더라도 불법파견 투쟁의 핵심인 ‘정규직 전환’은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지회 결정을 두고도 말이 많다. “지회 결정으로 특별교섭을 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10년 동안 현장 조직하고, 민형사상 피해를 당하며, 부당징계·해고까지 감수한 지회 쟁대위원들이 가장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 배제당하는 7인 모임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최소한의 요구를 제기했다는 이유로 교섭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억측에 불과하다.

비정규직 최소 요구 수용하고 공동투쟁해야

“제2의 류기혁 열사와 같은 억울한 죽음을 막으려면, 현대차 비정규직 차별해소와 정규직화를 위해서는 정몽구 회장이 결단해야 할 때입니다.

1. 노사 대표자가 만나서, ‘모든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올해 안에 할 것’을 합의하고 대국민 기자회견을 통해서 천명합시다.

2. 올해 안에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전원 정규직화할 것을 요구합니다.

3. 현대자동차는 법원판결 취지에 맞게 불법파견 노동자에 대해 당장 정규직화해야 합니다.

4. 사상최대의 순이익이 발생한 지금,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만든 결실을 바탕으로 해서 비정규직 차별해소를 위한 특별기금을 조성하고, 이후 발생하는 신규채용에는 전원을 현재 사내하청 노동자들로 정규직 채용할 것을 요구합니다.”

(2012년 1월 30일 현대차지부 신년 기자회견)

“현대·기아차는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고 있고 당연히 정규직으로 전환돼야 할 비정규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묵살하고 있다. 대법원 판결조차 이행하지 않는 정몽구 회장을 즉각 사법처리해야 한다. 문제 해결을 하지 않는다면 금속노조의 총력투쟁에 직면할 것이다.” (2013년 4월18일 금속노조 기자회견)

현대차지부와 금속노조가 대외적으로 공언했듯, 현대차가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정규직 전환을 해야 한다는 것은 최소 요구이고 목표다. 이를 얻어내기 위해서 금속노조·현대차지부·현대차비정규직 3지회는 힘을 모아 현대차와 싸워야 한다. 아직 공동투쟁은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 이행을 주장하다가 투쟁이 소강국면으로 접어들자 현실적 조건을 이유로 최소 기준도 양보할 것을 강요한다면 금속노조·현대차지부가 비정규 노동자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비난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불법파견 투쟁을 10년 동안 해 왔다. 무수한 어려움을 극복하며, 지금도 죽을힘을 다해 투쟁하는 사람들은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이다. 결정과정에 소수가 참여한다 하더라도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최소 요구를 수용하고, 죽을힘을 다해 함께 투쟁한다면 그 결과가 부족하더라도 모두가 동의하고 수용할 것이라 판단한다. 현대차비정규 노동자가 요구하는 것은 포장된 결과가 아니라 함께 투쟁해서 얻은 피·땀의 결실이기 때문이다. 30일 예정된 교섭단 회의에서 금속노조와 현대차지부 동지들이 이런 비정규직 동지들의 마음을 수용하는 뜨거운 동지애를 표현할 것이라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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