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지난 16일 뉴스검색하다 보았다. “법원, 대를 이어 일자리 보장한 현대차 노사 단협은 무효”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와 있었다. 조합원 유족의 고용조항은 사용자 인사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고, 단체협약으로 규정할 수 있는 사항도 아니라고 판결했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이에 따르면 기자는 재판부가 “근로는 보호돼야 하지만 대를 이어 일자리를 보장하는 방식은 안 된다”며 “누군가가 가질 수 있었던 평생의 안정된 노동의 기회를 그들만의 합의로 분배해 주는 일은 현재 우리 사회가 동의할 수 있는 질서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울산 장아무개 변호사에게 전화를 해서 나는 물었다. 어떻게 된 거냐고. 최근에 선고된 사건인데 판결문이 나왔냐고 오히려 장 변호사는 내게 물었다. 판결문 송달받으면 보내 달라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이날 오후 늦게 판결문이 첨부된 메일을 받았고, 나는 판결문 전문을 읽었다.

2. 노동자는 1979년 3월에 입사해서 단조부 열처리업무 등을 30년 넘게 일하다가 2009년 12월말 정년퇴직했다. 그 뒤 그 업무 때문에 폐암이 발병해서 치료받다가 퇴직 후 1년3개월만인 2011년 3월 사망했다.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받았다. 현대자동차 단체협약은 제9장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장에서 우선채용이라는 제목으로 ‘회사는 조합원이 업무상 사망하였거나 6급 이상의 장해로 퇴직할 시 직계가족 또는 배우자 중 1인에 대해 결격사유가 없는 한 요청일로부터 6개월 이내 특별채용하도록 한다’고 정하고 있다(제96조). 이에 따라 노동자의 자녀는 회사에 채용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회사는 이미 퇴직하고서 사망일에는 조합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유족 채용을 거부했다. 판결문에서 재판부가 인정한 이 사실관계를 읽는 동안 내 머리에는 노동자, 30년, 정년퇴직, 업무, 폐암, 1년3개월, 사망이라는 단어로 한 노동자의 일생이 스쳐 지나갔다.

3. 판결문은 자유로웠다. 천편일률적으로 판결문 작성법에 따라 법조문과 법률용어만 나열하는 판결문들과는 달랐다. 이런 판결문 읽어보는 것이 얼마만인지 판결문의 작성법은 맘에 들었다. 판결문에서는 채용문제는 사용자 인사권의 본질적 사항이라서 단체협약으로 이를 침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여기까지는 대법원 판례에 따른 인사권에 관한 천편일률적인 판결문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판시한 뒤 울산지방법원 제3 민사부는 다음과 같이 자유롭게 판결이유를 덧붙여 쓰고 있었다.

“이 사건에서처럼 결격사유가 없는 한 유족의 채용을 확정하도록 단체협약을 통해 제도화하는 방식은 사실상 일자리를 물려주는 결과를 낳아 우리사회의 정의관념에 배치되며 다수의 취업희망자들을 좌절하게 한다. 경쟁 없는 채용으로 사라진 하나의 일자리는 누군가가 뼈를 깎는 인내와 단련으로 실력을 키워 차지하려 했던 것이다. 줄어든 일자리 하나가 구직자 일반을 좌절시킨다면 당사자가 합의하였다고 하여 사적 자치의 문제로만 그칠 수 없으며, 이 약정이 민법 제104조 소정의 ‘사회질서’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사회질서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다르다. 취업의 기회가 길가의 돌멩이처럼 흔하다면 그것을 얻고 잃는 데에 아무도 관심을 가질 리가 없다. 하지만 지금은 일자리가 넘쳐나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회사의 우량성과 단체협약 규정의 유무효와는 관계가 없지만, 피고 회사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국민기업’이라 불리는 회사 중의 하나이며, 그 취업은 많은 젊은이들의 희망이기도 하다. 국민들의 시선이 쏠려 있는 만큼 그들이 제시하는 ‘기준’의 사회적 파급력이 현실적으로 크다는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청년들의 일자리가 희소해진 근래에는 취업의 기회에 관한 한 고도로 엄격한 기준이 사회질서로 제시될 수밖에 없다. 우승자 몇 명을 미리 제쳐놓는 경쟁에 참여하는 사람에게 나머지에서는 공정하지 않았냐며 설득할 수는 없다. 이동과 상승을 위한 사다리가 있거나, 있다고 믿는 희망은 사회 동력의 근간이다. 그 신뢰를 해하는 것은 적어도 제도적으로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재능과 노력 외의 것으로 취업할 수 있는 길은 합리적인 근거와 함께 예외적으로 마련되어야 하며, 사기업이라고 해서 다른 이들이 손댈 수 없는 그들만의 고치를 구축하고서 그 안에서 서로의 이익을 거래하는 방식으로 비밀의 오솔길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존재한다.

근로는 보호되어야 하지만, 대를 이어 일자리를 보장하는 방식은 안 된다. 산업재해로 사망한 근로자의 유족에 … 누군가가 가질 수 있었던 한 평생의 안정된 노동의 기회를 그들만의 합의로 분배해주는 일은 현재의 우리 사회가 동의할 수 있는 질서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사건 단체협약 제96조는 민법 제103조 소정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약정이다.”(울산지방법원 2013.5.8. 선고 2012가합2732 판결)

4. 이 자유로운 판결문을 읽고서 나는 판결의 자유를 떠올렸다. 그리고 아래와 같이 자유롭게 생각해보았다.

판결문에서는 유족 특별채용은 일자리를 물려주는 결과를 낳아 우리사회의 정의관념에 배치된다고 법원은 보았다. 그런데 이 사건 판결문에서 기존의 판례 법리를 다시 반복해서 판단한 것처럼 일자리, 즉 근로자의 채용에 관한 사용자의 권한인 인사권은 침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판결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법원은 그 사용자의 권한(인사권)을 행사하는 권력, 즉 소유의 권력인 자본의 대물림은 당연히 우리사회의 정의관념에 배치된다고 판결해야 마땅하다. 경쟁 없는 소유만으로 사업장의 권력자가 되는 것은 “누군가가 뼈를 깎는 인내와 단련으로 실력을 키워 차지하려 했던 것”이고 그것은 마땅히 취업희망자뿐만 아니라 우리사회 절대 다수 인민을 좌절하게 한다. 일자리보다 더 그 일자리 자체를 지배하는 사업장의 절대권력을 소유의 대물림으로 차지한다면, 그 하나가 구직자를 포함한 나머지 절대 다수의 인민을 좌절시킨다면 당사자의 약정으로 그 양도행위로 하였다고 하여 “사적 자치의 문제로만 그칠 수 없으며, 이 약정이 민법 제104조 소정의 ‘사회질서’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사회질서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다르다. 더 이상 자유경쟁으로 사업장의 권력자, 사용자가 될 수 있는 특히 현대차와 같은 대기업의 오너가 되는 것을 꿈꿀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이런 시대에는 고도의 엄격한 기준이 제시될 수밖에 없다. “우승자 몇 명을 미리 제쳐놓는 경쟁에 참여하는 사람에게 나머지에서는 공정하지 않았냐며 설득할 수는 없다. 이동과 상승을 위한 사다리가 있거나, 있다고 믿는 희망은 사회 동력의 근간이다. 그 신뢰를 해하는 것은 적어도 제도적으로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재능과 노력 외의 것으로” 대기업의 오너가 될 수 “있는 길은 합리적인 근거와 함께 예외적으로 마련되어야 하며, 사기업이라고 해서 다른 이들이 손댈 수 없는 그들만의 고치를 구축하고서 그 안에서 서로의 이익을 거래하는 방식으로 비밀의 오솔길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존재한다.”

재산은 보호되어야 하지만, 대를 이어 사업장의 권력자 지위를 보장하는 방식은 안 된다. “누군가가 가질 수 있었던 한 평생의” 꿈인 대기업 오너의 “기회를 그들만의 합의로 분배해주는 일은 현재의 우리 사회가 동의할 수 있는 질서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를 위한 당사자 간의 약정은 “민법 제103조 소정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약정이다.”

5. 판결문에서 법원은 인사권에 관한 기왕의 판례 법리에 따라 채용에 관한 사용자의 인사권은 인사권의 본질적인 사항이라고 그것은 단체협약으로는 제한할 수 없는 것이라고 판시하였는데 그렇다면 이런 사용자의 인사권은 이 세상에서 노동자가 감히 어찌할 수 없는 불가침의 기본권이라도 된다는 것인가. 정말로 노동이든 자본이든, 제발 재판부가 덧붙여 판결한 대로 이 세상의 권리가 “대를 이어” “보장하는 방식은 안”되면 좋겠다. 그래서 “누군가가 가질 수 있었던” 권리를 “그들만”이 보장받게 되는 “일은 현재 우리 사회가 동의할 수 있는 질서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다. 그렇지 못한데 도대체 무슨 인사권의 본질적 침해이고, 우리 사회가 동의할 수 있는 질서가 아니라는 것이라고 판결하고 있는 것일까. 판결의 자유는 소유의 권력인 자본을 위한 노래를 부르라고 보장된 것이어선 안 된다. 이 세상에서 사업장에서 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위는 주식 등 그 소유자의 사망으로 법적으로 그의 유족에게 당연히 상속된다. 약정도 필요 없다. 이 세상에서 사업장에서 노동에 대한 노동자의 지위는 아무리 큰 공헌을 한 사업장의 유공자라도 노동자의 사망으로 법적으로 그 유족에게 상속되지 않는다. 판결문에선 노사의 약정도 소용없다고 선언하고 있다. 30년 노동자로 일하다 그로 인해서 정년퇴직하자마자 병을 얻어서 사망한 노동자에 대한 보상으로 그 유족인 직계가족 또는 배우자 중 1인에 한해 결격사유 유무를 따져 특별채용토록 한 단체협약이 우리사회의 정의관념에 배치되는가. 분명히 나는 이렇게 단체협약을 묻고 있는데 어째서 판결문을 묻고 있다고 읽는 것일까.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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