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 부평구 청천1동 주민센터에서 사회복지공무원이 민원인을 응대하고 있다. 윤자은 기자

지난 15일 새벽. 충남 논산시 사회복지공무원이 과중한 업무를 견디다 못해 또다시 죽음을 택했다. 올해 들어 네 번째 마주하는 사회복지공무원의 죽음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맞춤형 복지정책을 최우선 과제로 강조했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복지업무 과중에 따른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 대체 사회복지공무원의 근무여건과 처우가 어떻게에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걸까. 지난 23일 <매일노동뉴스>가 13년차 사회복지공무원 허윤정(35)씨의 하루를 쫓았다.

사회복지공무원 2명이 수급자 751명 관리

인천광역시 부평구 청천1동주민센터의 사회복지공무원은 2명이다. 복지도우미(기초수급자 중 사회복지업무를 보조하는 인력) 2명과 공익근무요원 1명이 보조인력으로 배치됐다. 사회복지공무원 2명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업무량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20일 허씨의 동료 사회복지공무원이 근무 중 마비증상을 느껴 병원을 찾았다. 과로에 따른 뇌졸중 초기 진단을 받았다. 그는 1주일간 병가에 들어갔다.

청천1동의 복지수혜 대상자는 6천142명이다. 이 가운데 집중관리 대상인 기초생활수급자는 470세대 751명이다. 청천1동은 재개발이 추진되다 중단된 상태라 동네 환경이 매우 열악하고 비교적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

허씨는 “다른 지역 사회복지공무원들은 행정업무와 민원처리 때문에 가정방문을 일주일에 한두 번 가기도 어렵다”며 “이 동네엔 알코올 중독자가 많고 방문이 필요한 사례가 많아서 매일 가정방문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날 오전 8시30분부터 민원인이 들이닥쳤다. 허씨는 업무 준비도 하지 못한 채 민원 응대를 시작했다.

“수급자 증명서를 발급받아서 출근해야 돼요.”

“보육료 지원 카드를 분실했는데 재발급은 어떻게 받죠?”

민원업무를 몇 건 해결한 뒤 허씨는 알코올 중독자인 김상덕(46·가명)씨의 집을 찾았다. 김씨는 세 평 남짓한 단칸방에 앉아 강소주를 비우고 있었다. 옷가지와 텔레비전·전기밥솥·냉장고 등 최소한의 것들만 갖춘 조촐한 살림이다. 전기밥솥 액정화면은 밥을 지은 지 96시간이 지났음을 표시하고 있다.

김씨는 “우울증인지 뭔지, 술을 안 먹고 혼자 가만히 있으면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허씨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며 “일단 술을 최대한 멀리하고 끊어야 한다고 마음 먹으라”고 설득했다. 허씨는 김씨의 동의를 구하고 술병에 남은 소주를 버리고 냉장고에 들어 있던 소주와 싱크대와 찬장에 있는 소주잔을 모두 수거했다. 다음날 허씨는 김씨와 인근 산에 함께 등산하기로 약속했다.
 

▲ 재개발이 중단된 인천 부평구 청천1동. 허윤정 사회복지공무원이 수급자 집을 찾아 골목을 누비고 있다. 윤자은 기자


수급자 휘두르는 칼에 혼비백산하기도

다음으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최희봉(63·가명)씨의 집을 찾았다. 최씨는 이 동네로 이사 온 지 몇 달이 지났지만 그가 최씨를 만난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몇 차례 집을 찾았지만 그때마다 문이 잠겨 있었기 때문이다. 최씨가 살고 있는 지하 방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들어서자 퀴퀴한 썩은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날파리 수백마리가 방 안팎을 어지러이 날고 있었다. 천장과 벽을 가득 메운 검은색 곰팡이, 바닥에 박스를 깔아 놨지만 습기 때문에 박스도 축축하다. 벽에서도 물이 흐른다. 형광등도 없어 알전구를 설치해 놨지만 깜빡깜빡 거리다 꺼져버렸다. 밥상 위에는 원래 어떤 음식이었는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썩은 음식물이 방치돼 있었다.

허씨는 “13년 동안 별의별 집을 다 돌아다녀봤지만 이 정도로 심각한 상태는 처음”이라며 “최씨가 정신질환 때문에 지금의 상황을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허씨는 그에게 당장 다른 곳으로 이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겠다고 설명했지만 최씨는 거절했다. 최씨는 “내 형편이 안 좋으니 이런 집에서 살고 있는 것”이라며 “도움은 필요 없다”고 잘라 말했다. 허씨는 “대부분의 수급자는 도움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리면 받아들이는데 이분은 이미 모든 것을 체념한 상태인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허씨는 그 방을 계약한 부동산을 찾아가 보증금을 빼줄 것을 요구했다. 이날 오후 부평구청 소속 사회복지서비스 전문가인 사례관리사와 함께 다시 최씨의 집을 방문해 설득해 봤지만 요지부동이다. 허씨는 “마음의 문이 많이 닫힌 상태”라며 “자주 찾아가서 설득하겠다”고 다짐했다.

허씨가 가정방문을 다니다 아찔한 일을 경험한 적도 있다. 지난해 4월 정신분열 질환을 앓고 있는 40대 중반 남성 수급자가 “잔소리를 한다”며 허씨에게 칼을 휘둘렀다. 허씨가 혼비백산해 도망치자 그는 칼을 들고 집 밖까지 쫓아 나왔다. 그날 이후 가정방문 때는 동료와 동행한다. 안전을 위해 사회복지공무원 두 명이 함께 가정방문을 다니지만, 그만큼 이후 주민센터에 남아서 처리해야 할 업무 부담이 증가한다.

‘전산장애’도 사회복지공무원 담당?

2000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도입되고 정부와 지자체에서 다양한 복지사업을 추진하면서 사회복지업무가 급속히 증가했다. 허씨가 처음 임용된 2001년에도 주민센터당 사회복지공무원은 2명이었다. 이후 사회복지업무는 수십 배 늘었지만 인력 수준은 비슷하다. 허씨는 “사회복지공무원을 당장 3배는 늘려야 현장에서 업무가 줄어든 것을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회복지사의 손길이 필요한 기초생활수급자는 470가구인데 이를 담당공무원 둘만 갖고는 제대로 관리할 수 없다”며 “전문가들은 사회복지공무원 1인당 적정 기초생활수급가구수를 50가구로 보고 있는데 현재 상태로는 택도 없다”고 말했다.

13개 부처 292개 복지업무가 일선 사회복지공무원들에게 쏟아져 복지업무의 쏠림현상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심지어 사회복지와 전혀 관련이 없는 ‘복지부동’, ‘전산장애’와 같은 단어가 들어간 업무도 사회복지공무원에게 배당된 사례도 있다.

“일을 제대로 하려면 한도 끝도 없어요. 처리할 공문은 어찌나 많은지…. 안타까운 일이지만 목숨을 끓은 분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신규 임용된 분들은 아무리 해도 끝이 나지 않는 업무가 두려웠을 거예요. 이들을 보호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데 화가 났어요.”

복지업무를 체계적으로 처리하고 업무과중을 막기 위해 사회복지전담기구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김진학 한국사회복지행정연구회 명예회장은 “지난 30년 동안 복지전달체계 구축을 위한 정부의 노력이 있었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된 공공복지전달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며 “시·군·구 단위에 사회복지전담기구를 설치하고 전담기구 업무를 현장에서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읍·면·동 복지센터를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무원 죽음 부르는 ‘총액인건비제’

업무과중에 따른 공무원 자살은 사회복지직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공무원의 자살은 직렬을 가리지 않고 있다. 올해 스스로 세상을 등진 공무원은 사회복지공무원 4명 이외에도 교육행정직 2명, 법원공무원 3명이 있다. 이들의 주요 자살요인으로 과중한 업무량이 지목된다. 이의 배경으로 인건비 예산을 줄이기 위해 도입된 총액인건비제로 인해 행정 수요에 따른 자체 인력충원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총액인건비제는 정부가 행정기관별 인건비 예산의 총액을 관리하고 각 기관이 인건비 한도에서 인력규모와 종류를 결정하는 제도다. 2007년 1월부터 전체 중앙행정기관에서 실시했다. 공무원노조 관계자는 “총액인건비제를 폐지해 행정수요에 따라 기관이 자체적으로 인력을 충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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