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
울산저널
편집국장

충남 논산에서 60대 중국 동포 조선족이 집에 불을 질러 2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지난 15일 한낮의 일이다. 건설현장 일용직으로 일하던 조선족 허아무개(60)씨가 불을 지른 집은 자신을 현장에 소개해 준 직업소개소장 김아무개(53·여)씨가 사는 집이었다.

허씨가 불을 지른 시각, 그 집엔 김씨의 시모(83)와 딸(22)이 있었다. 이 불로 허씨와 김씨의 시모가 그 자리에서 숨지고 김씨와 딸도 중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김씨는 중태다.

자신이 지른 불에 타 숨진 조선족 허씨는 김씨가 운영하는 직업소개소를 통해 논산 일대 공사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다 7년 전 허리를 다쳤다. 허씨는 이후 일을 제대로 못했지만 산재보상은커녕 치료비도 받지 못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허씨는 자주 김씨의 집에 찾아가 자신이 허리를 다친 공사회사의 연락처를 알려 달라고 했지만 소개업자 김씨는 거절했다.

간접고용의 폐해가 노동자 본인과 애꿎은 80대 할머니의 목숨을 앗아 갔다. 소개업자 김씨가 회사 연락처를 가르쳐 주지 않은 이유도 있다. 계속 소개업을 하려면 사용사업자와 마찰이 생기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일용직 간접고용 조선족 노동자와 소개업자 김씨의 갈등 속에서 이익을 챙긴 사람은 따로 있다. 허씨에게 일을 시켰지만 법적으로 고용하지 않은 사용사업자인 공사회사다. 그런데도 공사회사는 뒤로 빠진 채 직업소개소와 노동자만 피해를 입었다.

이런 고용구조를 도대체 누가 만들었을까. 해방 직후 서울역 앞엔 한자로 ‘구직(求職)’이라고 쓴 나무 명패를 자신의 목에 걸고 지루하게 서서 일자리를 구하던 수많은 노동자들이 넘쳐났다. 이들에게 일자리를 소개해 주고 뒷돈을 챙기던 사람장사치들도 넘쳐났다.

한국의 간접고용은 이렇게 시작됐다. 박정희 정부는 쿠데타 직후 이런 사람장사를 아예 못하게 직업안정법을 만들어 간접고용을 원천 금지시켰다. 이 법의 원칙이 김대중·노무현 정부 들어 야금야금 무너지면서 간접고용 시장은 늘어만 갔다. 돈 많은 재벌급 진짜 사장은 뒤로 숨고, 영세한 바지사장들이 앞에 나서 가난한 노동자들과 대립한다. 지금은 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자신의 고용주가 누군지도 모르고 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 일상이 된 대표적인 업종이 건설업이다. 최근 검찰이 전 정권의 최대 사업인 4대강 공사에 대한 전면수사에 들어가 건설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검찰은 4대강 공사에서 입찰 담합을 주도한 게 현대건설이라는 정황이 담긴 문건을 확보했다는 보도도 있다.

현대건설이 누구인가. 업계 1위를 자랑하는 명실상부한 한국 최대의 건설사다. 이런 업체가 국민의 피 같은 세금인 정부 예산을 이런 불법으로 빼먹어 떼돈을 번다. 그런데도 정작 현장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는 노동자는 현대건설의 3·4차 하청업체에 소속돼 있을 뿐이다. 저임금은 물론이다.

뉴스타파가 지난 22일 조세피난처 버진아일랜드에 유령회사를 차린 한국인 245명 가운데 1차로 5명을 공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지낸 이수영 OCI 회장과 부인 김경자 OCI 미술관장 부부가 포함됐다. 이 회장은 경총 회장 재임 시절 여러 보수언론에 재계 입장을 대변하는 칼럼을 실어 왔다. 그 내용은 대부분 계약자치의 원칙에 입각한 자유주의 원칙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조세피난처에 유령회사를 세운 것이 꼭 불법은 아니지만, 부유층의 해외재산 도피수단으로 널리 악용되는 것도 사실이다. 부인 김씨가 운영하는 미술관도 문화사업이란 좋은 취지를 넘어, 최근엔 손쉽게 비자금을 만드는 창구로 활용돼 왔다.

이젠 검찰과 국세청이 나서 줄줄 새는 세금을 잡아야 한다.

울산저널 편집국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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