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곤가스 누출사고로 하청노동자 5명의 목숨을 앗아 간 현대제철의 올해 1분기 매출액은 2조7천804억원이다. 하루 평균 309억원의 매출을 올린 셈이다. 이런 기업에 하청업체 관리 소홀의 책임을 물어 최대 5천만원의 벌금을 부과한다면 과연 산재사고가 줄어들까.

고용노동부는 21일 유해·위험업무를 도급업체에 맡긴 대기업 원청업체의 안전보건관리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의 ‘중대 화학사고 등 예방대책’을 발표했다. 원청업체에 대한 처벌규정을 기존 ‘1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에서 ‘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 벌금’으로 강화한 점이 눈에 띈다. 이 밖에 △사고현장에 대한 작업중지명령 확대 △고위험 사업장 1천200곳 전담감독관 지정 △5인 미만 사업장까지 공정안전관리(PSM) 확대 적용 △PSM 사업장 ‘고위험-중위험-저위험’ 단계별 관리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박종길 노동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은 “IMF 이후 비용절감형 아웃소싱이 증가한 데다 기업 전반의 안전불감증이 더해져 중대산업재해가 증가하고 있다”며 “공장장과 같은 원청사업장의 실질적인 책임자가 하청업체의 안전보건을 총괄하도록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하고 사고가 날 경우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박 국장은 그러나 기업의 CEO에게 직접 책임을 묻는 방안에 대해서는 “책임이 입증된다면 처벌할 수 있다”는 애매한 입장을 보였다.

노동부 대책에 대해 노동계는 “기존 대책의 재탕으로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박혜영 공인노무사(노동건강연대)는 “하루에 수백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대기업에게 벌금 5천만원은 껌값에 불과하다”며 “정부가 ‘산재사고가 나면 기업 매출에 심각한 타격이 미친다’는 확실한 신호를 보내 주지 않는 한 산재사고 근절은 어렵다”고 지적했다.

상시적 업무에 대한 도급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조기홍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국장은 “간헐적으로 이뤄지는 유해·위험업무는 규제를 강화하면 되지만 대기업이 상시적 업무까지 영세하청업체에 전가하는 것은 금지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국장은 이어 “대기업 CEO를 직접 처벌하기 어렵다면 산재사고시 사회봉사명령이나 안전보건교육 이수명령이라도 내려 안전 문제에 대한 인식을 심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노동부는 이날 대책 발표에 앞서 화학·전자업체 CEO들과 잇따라 만나 간담회를 가졌다. 반면 노동계 산업안전 담당자나 하청노동자들을 상대로 한 의견수렴 과정은 없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노동현장의 문제는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가장 잘 안다"며 "노동부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부터 들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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