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인간은 바벨탑만 쌓은 게 아니다.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기술과 경제의 탑을 쌓고 유한한 수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의학의 탑을 쌓으며 신의 경지에 도전해 왔다. 이제 적지 않은 나라들이 의식주를 해결한 복지국가를 구가하고 있으며 수많은 질병이 완치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지상천국을 건설하기에는 아직 매우 중요한 어떤 것이 부족하다. 풍요 속에서 여전히 빈곤이 재생산되고 있으며 완치 가능한 질병도 빈곤으로 인해 치료기회를 박탈당한다.

국제노동기구(ILO)의 발표에 따르면 전 세계 청년층 실업률이 지속적으로 증가해 2018년에는 12.8%를 기록할 것이라고 한다. 서구 선진국에서 청년실업은 상대적 빈곤현상의 하나로서 외국인 배척 등 민족 간 상대적 빈곤을 극대화하려는 극우포퓰리즘의 토양이 된다. 개발도상국에서도 청년실업은 불안정한 저임금 일자리 양산으로 연결돼 상대적 빈곤 문제를 부추긴다. 게다가 남반구의 절대 빈곤은 풍요로운 과학혁명의 시대에 세계적 차원의 상대적 빈곤을 극단적으로 상징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덕적 기준에 근거하는 개인적 차원에서 이 현상은 정당화되지 않는 품성 혹은 인격의 문제다. 그러나 사회적 가치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사회심리적 차원에서 이 문제는 사회질서를 유지하거나 더 나아가 변혁할 수도 있는 인간 속성의 하나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질서에서 이 속성은 두 측면에서 모두 정당화된다.

예를 들어 소득 변화와 관련한 다음 세 가지 선택지 중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선택할까. 첫째는 자신의 소득과 다른 사람의 소득이 모두 크게 증가하되 자신의 소득보다는 다른 사람의 소득이 더 크게 증가하는 경우다. 둘째는 자신과 다른 사람의 소득이 똑같이 조금 증가하는 경우다. 마지막은 자신과 다른 사람의 소득이 모두 감소하되 자신의 소득보다 다른 사람의 소득이 더 크게 감소하는 경우다.

대다수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선택지는 세 번째다. 차선이 두 번째다. 그래서 가장 싫어하는 선택지는 첫 번째가 된다. 물론 여기에 다른 사람보다 자신의 소득이 더 크게 증가하는 경우를 덧붙인다면 당연히 이것이 가장 선호하는 경우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소득이 다른 사람의 소득과 동일하게 증가하거나 다른 사람의 소득보다 적게 증가하는 것보다 오히려 자신의 소득이 감소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소득이 더 크게 감소하는 것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소득만이 가장 크게 증가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도덕적으로 판단할 때는 모두의 소득이 증가하는 것이 옳을 것이며, 자신의 소득 변화만을 절대적 기준으로 판단할 때는 다른 사람들의 소득 증감과 무관하게 자신의 소득만 증가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은 절대빈곤 상태일 때에만 가능하고 사회적으로 정당화된다. 자신이 처한 당장의 절대빈곤을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질서의 본질상 사회적 가치는 언제나 경쟁을 통해 상대적으로 정해지므로 모두의 소득이 증가해도 이들의 상대적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소득보다 자신의 소득이 적게 증가하면 자신의 상대적 가치는 다른 사람의 가치보다 하락한다. 따라서 자신의 소득이 감소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소득이 더 감소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만이 유일하게 사회적으로 정당화된다. 다른 사람의 가치가 더 하락함으로써 자신의 상대적 가치가 커지기 때문이다. 이때 사회적으로 정당화된다는 것은 자신에게 유리하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합리적 선택으로 인정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절대적 빈곤을 벗어난 이후에는 상대적 빈곤이 문제가 되며, 이것은 다시 상대적 박탈의 문제로 연결된다. 자본주의 질서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모순은 절대적 빈곤이나 착취가 아니라 상대적 빈곤과 착취라는 것이다. 더욱이 현대와 같이 발전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상대적 빈곤이 절대적 빈곤을 낳는 주요 요인이 된다.

상대적 빈곤은 동일하게 일하는데 왜 누구는 더 가져가고 누구는 덜 가져가는가의 문제다. 더 일하지도 않고 심지어는 일하지 않으면서도 필요 수준을 넘을 정도로 전유하는가의 문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국 자본주의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따라서 자본주의 질서에서 이를 둘러싼 갈등은 지속될 수밖에 없으며,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새로운 사회의 도래를 앞당기려는 노력이 된다.

기술과 경제의 발전으로 가능할 것으로 보이던 지상천국은 자본을 신으로 설정하면서 바벨탑이 무너지듯 점점 천국의 본질에서 속절없이 멀어져 갔다. 자본의 신은 끊임없이 상대적 빈곤을 존치시키고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픈 심리는 자본주의 질서를 유지시키는 사회적 동기가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상대적 빈곤의 모순을 꿰뚫어 보는 동기가 된다. 이 동기를 사회적 차원에서 변혁의 계기로 발현시킨다면 자본의 신에게 성공적으로 도전하는 무너지지 않는 바벨탑을 쌓을 수 있다.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byungkee@y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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