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
사이버노동대학
대표

지난 18일은 광주 민주화운동이 33돌 되는 날이었다. 물론 5·18 광주항쟁은 한참 지나간 과거의 사건이다. 그러나 아직 현재진행형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5·18 행사를 둘러싸고 논란과 정치적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지난 주말에 있었던 5·18 민주화운동 33돌 기념행사도 그랬다. 어느 통신은 "'반쪽 난' 기념식 … '빛바랜' 대통령 참석"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또 어느 신문은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올해 기념식은 임을 위한 행진곡의 공식 제창이 무산된 것과 관련해 5·18 관련 단체장들과 회원,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 광주시의회 의원 대부분이 기념식에 불참해 반쪽 행사로 전락한 모양새였다. 유족 등 100여명은 기념식 1시간 전부터 5·18 국립묘지 입구인 ‘민주의 문’ 앞에 주저앉아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항의했다.”

이것은 현재의 정치·사회 세력들이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인식과 태도에서 현저하게 대립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97년에 5월18일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했지만 이 운동을 받아들이는 마음자세 면에서 수구보수 세력과 여타 국민 사이에 극과 극의 간격이 있는 것이다. 지난 이명박 정권이 그 한 예다. 그는 취임 첫해인 2008년 5·18 묘역을 방문한 것을 빼면 두 번 다시 이곳을 찾지 않았다. 심지어 지난해에는 국가기념일인 5·18 행사의 기념사도 대통령 기념사가 아니라 국무총리 기념사로 대체해 그 격을 깎아 내렸다.

박근혜 정권은 다른가.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몇 년간 이명박 대통령이 보여 온 행태와 달리 광주 5·18묘역에서 치러지는 이번 기념행사에 직접 참석했다. 기념사도 낭독했다. 그러나 그는 많은 사람들이 일어서서 제창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않았다. 이에 앞서 그의 휘하에 있는 국가보훈처가 기념식장에서 그 노래를 제창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는데, 이는 다시 말해 그가 그 노래의 제창을 반대했음을 뜻한다.

그러면 박 대통령은 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거부했을까. 노래를 부를 줄 몰라서일까. 아마 노래를 부르기 싫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랬으므로 합창단이 노래를 부르고, 많은 참석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제창할 때 그는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입은 벙긋하지도 않았다.

그러면 그는 그렇게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기 싫어하면서 왜 그 행사에 참석했을까. 이유는 그의 기념사에 들어 있다. 그는 기념사에서 “5·18 정신이 국민통합과 국민행복으로 승화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정부는 국민통합과 국민행복의 시대를 열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고 밝혔다.

국민통합.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단어다. 박정희 정권은 유신독재 시절 노동자에게 완전한 무권리를, 그리고 온 국민에게 긴급조치로 입에 재갈을 물리고 무단통치를 했다. 그때 그가 내건 구호가 '국민총화'였다. 독점자본이 지배하는 사회를 세우는 토대 구축을 위해 노동자와 농민 나아가 모든 민중에게 착취·수탈과 무권리와 무단적 폭압을 ‘국가와 민족을 위해’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라고 강요한 노선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 부친을 이어받아 그 부패한 노선과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하기야 대한해협 건너 일본에서는 아베 수상이라는 자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침략과 통치를 정당화하는 언행을 계속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2차 세계대전 직후에 미군정 치하에서 민주화가 이뤄졌다고 했지만 그 귀결은 지금 전쟁범죄자 기시(전 일본총리)의 외손자가 그 할아버지의 기치를 다시 쳐들고 있는 것으로 귀결됐다. 이것은 미군정이 사회주의를 제압하기 위해서 군국주의 세력을 철저하게 청산하지 않고 복권시킨 탓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그와 마찬가지로 미군정이 반공을 이유로 친일파를 복권시킨 탓에 그 후예들이 지금 이 나라의 주인노릇을 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친자본 민주주의 세력들이 군사파쇼세력을 철저하게 청산하지 않고 그들에 빌붙어 정권을 잡거나(김영삼), 그들의 일부와 공동정권을 꾸리거나(김대중), 그들과 대연정을 기도하거나(노무현) 하면서 그 세력을 철저하게 청산하지 않고 복권시킨 탓에 그들이 지금 다시 정권을 잡고 파쇼(비록 민간파쇼이지만)의 기치를 치켜들고 있다. 박근혜 정권이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끝내 거부한 것은 과거로 회귀해 파쇼통치를 계승하겠다는 의사표현에 다름 아니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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