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

연일 뜨거운 뉴스다. 공중파에서도 주요 이슈로 다룰 만큼 엄청난 사건이 되고 말았다. 바로 통상임금 소송사건이다. 보도됐듯이 박근혜 대통령이 방미 기간 중 대니얼 애커슨 지엠 회장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통상임금 문제를 잘 알고 있다,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의도야 어찌 됐건 그 파장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노동부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말이다.

노동자 입장에서 보면 대통령의 발언에 감사(?)할 따름이다. 각자가 통상임금을 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게 된 계기가 됐다. 재판 개입이라고 받아들이게 된다면 법원은 자신들의 입장을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노동현장은 어떤가. 합의를 해 보자는 분위기가 일시에 분쟁으로 격화되는 사업장도 있다. 노사 간 합의안을 만들고 금액조정에 들어갔던 한 사업장 사용자는 대통령의 발언을 이유로 “법으로 정리될 텐데 임의로 지급할 수는 없다”고 기존 합의틀을 깨고 나왔다. 노조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 것이다. 마지막에나 고려했던 소송의 길로 들어서기로 한 것이다.

대통령의 발언은 듣기에 따라서는 앞으로 통상임금 소송이 불가능해지거나 상여금 등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사법부의 판단에 개입한다는 의견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이미 수십 년간 이어져 실질적 의미에서의 법원(法源·법을 생기게 하는 근거)으로 확립된 판례를 행정부나 입법부가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위헌 결정의 운명을 면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이미 소송을 통해 임금 차액을 받은 사람을 상대로 부당이득을 구할 수는 없다. 확정된 개별 노동자의 권리는 단체협약으로도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 노동부의 해석이기도 하다.

통상임금 문제에 관한 모든 사태의 일차적 책임은 노동부가 져야 한다. 우선 최근 보도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방미를 앞두고 지엠 회장의 질문이 예정돼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법원의 입장을 반영한 적절한 답변을 준비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한 준비를 했다면 대통령이 앞서와 같이 답할 리가 없다. 생각하기도 싫지만 만약 법원의 태도를 안내하지 않고 이 같은 답변을 준비했다면 명백한 직무유기다.

노동부는 임금체계에 대한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수많은 판례가 노동부의 행정해석이 잘못됐다고 지적했음에도 지금까지 적극적으로 반영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상여금 문제만 해도 그렇다. 모든 종사자들에게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판례는 90년대 중반부터 이어져 왔다. 지난해 초 나온 대법원 판결은 기존보다 조금 더 나아간 예일 뿐이다. 이른바 통상임금의 요건인 일률성 개념은 유연하게 확대되고 있다. 행정부로서는 이 같은 사법부의 판례를 반영해야 함에도 무시했다. 노동현장에서는 과거 성장시대 통상시급으로 노동력을 착취하던 시대가 종언을 구하고 있음에도 노동부는 과거 틀에 매여 있었던 것이다.

이번 사태가 얼마나 갈지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나름의 기준을 제안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모든 분쟁은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언론에서는 소송으로 40조원의 추가비용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경제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한다. 이 뉴스를 사실이라고 믿는 노동자는 별로 없다. 자신이 기업을 위해 제공한 노동의 정당한 보상을 생각한다면 경제위기 운운하는 것은 노동자들을 더 슬프게 할 따름이다. 사용자는 언론을 이용한 허위광고보다는 노동자들을 위해 그 이상이라도 출연할 수 있다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 줘야 한다.

무엇보다 노동부는 기존 행정해석의 오류를 신속히 인정하고 판례에 따라 정리해야 한다. 다음으로 통상임금 해소를 위한 근로감독을 실시해야 한다. 이미 발생한 통상임금 차액 지급방법에 관해 안내하고 향후 임금체계를 개선하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소송은 그야말로 최후의 선택이다. 노동부가 이러한 행정을 펴겠다고 약속한다면 노동자들이 굳이 소송까지 감수하겠는가.

사용자도 원하는 방향일 것이다. 분쟁에 소요되는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부의 행정지도를 충실히 따른 죄밖에 없다”는 어느 사용자의 최후 변론을 깊이 새겨보길 바란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 (94kimhyung@hanmail.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