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
철폐연대
상임활동가

국가인권위원회는 최근 최저임금 준수율 제고를 위한 정책개선 권고안을 의결하면서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200만명 정도라고 밝혔다. 전체 임금노동자 8명 중 1명은 최저임금도 못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3년 최저임금은 시급 4천860원, 주 40시간 기준으로 하면 월 101만5천740원이다. 법정 최저임금에 미달하지 않더라도 이미 최저임금을 받는 순간 생계는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통계청의 가계동향 조사에 따르면 단신노동자 생계비가 지난해 기준으로 151만2천717원이다.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이 하루 8시간 노동을 한다면 혼자 살아도 한 달에 50만원의 적자를 보는 셈이다. 지금의 최저임금으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다.

그래서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 택하는 것이 장시간 노동이다. 잔업과 특근으로 자기 몸을 상해 가며 먹고살 만한 돈을 벌려고 한다. 중소기업 등 작은 사업장이 밀집한 공단에서는 노동자들이 잔업과 특근에 따라 직장을 바꾼다. 한국 취업자 1인당 연간 노동시간은 2천90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2위다. 통계청의 2012년 연간 고용동향에 의하면 주당 54시간 일하는 노동자가 600만명이 넘는다. 노동자들은 너무나 피곤하기 때문에 그저 쉬고 싶을 뿐이고, 가까운 이들과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기도 어렵고 책 한 권 보기 어렵다. 시민단체나 정치적인 활동을 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이것이 어떻게 삶인가.

게다가 최저임금으로는 도저히 먹고살기 어렵기 때문에 학생들이나 노인들도 일을 하러 나올 수밖에 없다. 자식들에게 손을 벌릴 수 없는 노인들은 단시간 일자리라도 일을 하려고 하고, 학생들은 부모들이 대학 등록금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비를 메꿔야 한다. 여성들도 출산과 육아를 위한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한 채 일을 하러 나와야 한다.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이들이 많다 보니 또다시 저임금 노동이 확산된다. 고용노동부는 ‘고용률 70% 달성’을 외치며 초단시간 노동을 만들어 내겠다고 이야기한다. 최저임금을 받는 가장의 노동만으로는 먹고살기 어려우니 여성과 아이·노인들이 일을 해서 보충하라는 의미로 들린다.

그러니 이제야말로 최저임금을 현실화할 때가 됐다. 경총은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훼손한다며 최저임금 현실화에 대해 죽는소리를 한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훼손하는 것은 최저임금 인상이 아니다. 하청업체들에 대한 대기업의 단가인하 압력, 경쟁을 부추기고 수탈을 일삼는 프랜차이즈 본사들의 횡포가 핵심이다. 노동자들의 법정 최저임금이 오르면 대기업들도 그 이하로 단가인하 압력을 행사하지는 못하게 된다. 만약 그래도 안 되면 중소기업들이 뭉쳐서 대기업에 대항하면 된다. 일시적으로 경기가 안 좋거나 여러 조건 때문에 최저임금을 맞추기 어려운 곳이 있다면 정부가 지원하면 된다. 대기업의 배를 불리기 위해 그 책임을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는 구조는 더 이상 존재해서는 안 된다.

최저임금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생계비에 맞춰 하루 8시간 노동으로도 정상적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최저임금에 대한 노동계의 요구는 매우 안일하다. 노동계는 ‘전체 노동자 평균임금의 50%’를 최저임금 인상 요구안으로 제기했다. 올해도 노동·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최저임금연대는 내년도 시간당 최저임금을 5천910원으로 제시했다. 올해의 4천860원보다 21.6% 올린 것이며, 지난해 노동자 월평균 정액급여의 절반인 123만4천900원을 시급으로 환산한 금액이다. 그러나 123만원의 시급으로는 생활할 수 없다. 노동계의 최저임금 요구안마저도 생활이 불가능한 저임금인 것이다. 최저임금은 상대적인 개념이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생계비에 기준해야 한다.

이를 위해 최저임금 결정구조와 결정방식을 바꿔야 한다. 지금처럼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노사 간 힘겨루기 양상으로 진행되면 생계를 위한 노동자들의 기본적 권리인 최저임금의 취지가 희석된다. 실태생계비에 의해 생계비 기준을 정하고 하루 8시간 노동으로 해당 생계비만큼의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최저임금이 설계돼야 한다.

최저임금제도 개선을 위한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계비를 누가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조사하고 확정할 것인지의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생계비 결정과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저임금 노동자들의 요구와 힘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후 최저임금을 생계비 수준으로 올리기 위해 제도개선을 시작하는 것은 지금 당장 최저임금의 수준을 올리는 일만큼 중요하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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