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근로기준법 60년이다. 1953년 5월10일 제정됐으니 지난 10일로 60년이 됐다. 기념도 환호도 없이 지나갔다. 노동자를 보호하겠다고 제정된 이 법률은 여전히 중요한 노동자의 법으로 존재하고 있다. 오늘 이 나라 노동자의 권리에서 근로기준법이 차지하는 자리는 크다. 노동자의 권리는 근로계약·단체협약·취업규칙 등에 의해서 정해진다. 노동자와 사용자의 합의로(근로계약), 노동조합을 통한 집단적 합의로(단체협약), 사용자 일방에 의해(취업규칙) 사업장에서 정해지는 노동자의 권리에 관해 대한민국은 법으로 그 최저기준을 정해놓았다. 근로기준법이다. 이 세상에서 그 지휘·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사용종속관계인 것이라고 선언된 근로관계에서 슈퍼 갑 사용자에 맞서 근로계약으로는 근로자는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확보하기 어렵다. 노조 조직률이 10%에 머물고 있는 조건에서 단체협약은 노동자 대부분의 권리를 정하지 못하고 단체협약이 있어도 모든 사항에서 법보다 높은 수준을 정하고 있지 못하다.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서 사용자 스스로 제게 의무를 부과하리라고 취업규칙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근로기준법이다. 법보다 못한 근로계약, 취업규칙이라서, 법보다 우월한 단체협약을 적용받지 못해서 근로기준법이다. 이 나라 노동자는 그 제정년도를 따져 60년을 기념하고 환호하지 않아도 자신의 권리를 알기 위해서 근로기준법을 살펴봐야 한다.

2. 1953년 5월10일 제정돼서 그 해 8월9일부터 시행된 제정 근로기준법(이하 제정법)은 대한민국 “헌법에 의거해 근로조건의 기준을 정함으로써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 향상시키며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목적으로”(제1조) 했다. 이것은 현행 근로기준법(이하 현행법)도 제1조로 규정하고 있다. “본법에서 정한 근로조건은 최저기준이므로 근로관계당사자는 이 기준을 이유로 근로조건을 저하시킬 수 없도록” 한(제2조) 근로기준법은 근로자를 보호하겠다는 법이니 당연히 최저기준으로서 적용돼야 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 최저기준이 “근로조건의 기준을 법률로서 정하도록” 한 대한민국 헌법(1952.7.7.개정 헌법 제17조)과 “헌법에 의거해 근로조건의 기준을 정함으로써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 향상시키며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목적으로” 한 위 근로기준법 제1조의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노동자 보호를 위한 법으로서 의미가 없다. 과연 어떠했던 것일까. 60년이다. 근로기준법은 이 나라에서 노동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하고 향상시키는데서 어떠한 위치에 있었고 지금은 어떤가 묻게 된다. 근로기준법은 “근로조건은 근로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고 정했다(제3조). 하지만 그것이 어렵기 때문에 국가가 근로조건의 최저기준을 정해주겠다고 만든 법이 근로기준법이었다. 아무리 “단체협약, 취업규칙과 근로계약을 준수하고 각자가 성실하게 이행할 의무가 있다”고 근로자와 사용자에게 그 근로조건을 준수하도록 정하고 있어도(제4조) 노조가 불온시 돼온 나라의 노동자는 노조를 통한 단체협약으로 자신의 권리를 정하는 경우도 드물었고, 노조가 있어도 법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도 아니었다. 그러니 그 근로조건은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취업규칙과 동등할 수가 없는 근로계약이 정한 근로조건이었다.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해 남녀의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하며 국적, 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하도록” 균등처우에 관해서 정했다(제5조). 하지만 아직까지도 남녀의 차별적 대우는 여전하고 국적,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한 차별적 처우도 실질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노동자의 신분을 갈라서 차별적 처우를 하는데도 이를 제대로 금지하고 있지 못하다. 집단적으로 근로계약상 근로제공을 거부하는 경우 업무방해죄 등으로 국가가 처벌하고 손배 가압류로 그 근로를 강요함으로써 강제근로의 금지(제6조)는 퇴색하고 말았다. 사용자가 근로자를 폭행, 구타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제7조) 근로계약관계가 아니라도 이 세상에서 금지 행위다. 근로기준법은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영리로 타인의 취업에 개입하거나 중간인으로서 이익을 취득하지 못한다”고 중간착취의 배제를 규정했다(제8조). 하지만 파견법이라는 법률로 중간착취가 가능하도록 국가가 보장하고 말았다. 선거권 등 공민권 행사야 국가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선 당연히 보장돼야 하는 것이고(제9조), 근로기준법 시행에 관해서 근로감독관 요구시 보고·출석해야 할 의무도 법의 시행을 위해서는 당연한 것이었다(제12조). 제정법은 사용자는 취업규칙 등을 상시 각 사업장에 제시 또는 비치해 근로자에게 주지시켜야 한다고 정했다(제13조). 근로기준법은 취업규칙의 작성권한을 사용자에게 부여했고(제94조 이하), 이를 전제로 이와 같이 주지의무를 부과했다. 취업규칙이라는 이름의 사업장의 법을 사용자에게 작성권한을 부여해준 것이다. 여기서 근로조건 등을 사용자가 정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결국 근로관계에서 근로조건까지도 사용자가 정해서 운영하도록 해왔다. 사용종속관계를 본질로 하는 근로관계는 그 근로조건까지도 사용종속관계 속에서 결정되도록 근로기준법은 사용자에게 보장해주고 말았던 것이다. 이처럼 근로계약관계에서 근로계약관계의 내용, 근로조건 등을 노사가 자유로운 합의로 정하지 못하고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것이라면 주인이 노예의 처우를 일방적으로 정하는 노예관계와 다를 게 없다. 제정법의 총칙은 근로자, 사용자, 근로계약, 임금, 평균임금의 정의규정을 두었다(제14조 내지 제19조). 현행법 제2조 정의규정에서 그대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근로자의 권리라 할 임금은 "사용자가 근로의 대상으로 근로자에게 임금, 봉급 기타 여하한 명칭이든지 지급하는 일체의 금품"이라고 정했고, 현행법도 '근로의 대상'을 '근로의 대가'로 표현을 바꾸고서 그대로 정의하고 있다. 이렇게 "임금, 봉급 기타 여하한 명칭"을 불문하고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근로의 대가로 지급하는 일체의 금품이 근로기준법상 임금인 것인데도 그 뒤 오랫동안 복리후생명목의 금품이나 상여금, 성과급 등을 제외했다. 아직까지도 고용노동부는 예규 등을 통해 복리후생명목의 금품은 임금이 아니라고 파악하고 이것이 이 나라 노동현장에서 통용되고 있다. 현행법은 제정법과 달리 소정근로시간 등에 관해서도 정의규정을 두고 있다. 근로기준법 제50조의 “1일 8시간, 1주 40시간의 법정근로시간 등에 따른 근로시간의 범위에서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에 정한 근로시간”이라고 정의하고 있다(제2조 제7호). 근로기준법은 제정 당시부터 근로시간을 규정하고 있었다. 근로시간은 1일에 8시간, 1주일에 48시간을 기준으로 한다고 정했다(제42조 본문). 그러나 “당사자의 합의에 의해 1주일에 60시간을 한도로 근로할 수 있도록” 정해놓았고(단서), 이것은 현행법에서는 “당사자 간에 합의하면 1주간에 12시간을 한도로 … 연장할 수 있도록” 한 조항으로 변경돼서 존속하고 있다(제53조). 심지어 여기에 고용노동부는 휴일근로는 이 연장근로의 제한조항과는 무관하다고 행정해석함으로써 우리의 근로기준법은 근로시간을 규제하는 노동제로서 의미를 상실했다. 그 결과는 세계 최장수준의 장시간근로로 나타났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은 기껏해야 초과 근로에 대한 임금 산정의 기준이 되는 기준근로시간으로만 기능하고 있다. 여기서 연장, 야간, 휴일의 근로 및 연차휴가의 근로에 대한 대가로서 지급될 임금이 문제됐던 것이다. 바로 그 지급기준이 되는 임금제도가 통상임금제도였다. 통상임금은 법정외근로에 대한 대가로서 임금을 산정하는 기준이 되는 임금인 것이고, 마땅히 법정근로, 즉 1일 8시간, 1주간 48시간(현행법은 1주간 40시간)의 근로에 대해 지급하는 일체의 임금을 기준으로 지급해야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복리후생명목의 금품이거나 상여금이라고 해도 제외해서는 안 된다고 보아야 했다. 그런데도 수십 년 동안 이 나라에서는 법원은 통상임금 산정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결했었다. 아직도 고용노동부는 통상임금 산정지침이라는 예규를 통해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서 이 나라 사업장에서 그렇게 운영하고 있다. 근래 들어서야 법원이 일정한 경우 포함된다고 판결해서 지금 이 나라는 기업 부담을 고려해 그 해결방안을 찾겠다고 대통령까지 나서고 고용노동부는 입법이니 노사정위원회 논의니 추진하겠다고 하면서 통상임금 문제로 야단이다.

3. 제정법 총칙은 변함없이 현행법의 총칙으로 존재한다. 오늘은 근로기준법이 “헌법에 따라 근로조건의 기준을 정함으로써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 향상시키며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꾀하는 것을 목적으로”(현행법 제1조) 하고 있는 것일까. 어찌된 일인지 근로기준법으로 우리 노동현실을 읽어낼 때마다 나는, 사용자를 위해 최저수준으로 근로조건을 정함으로써 근로자를 자신과 가족의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기본적 생활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하며 노자 불균형경제의 확대재생산을 꾀해온 것이 아닐까 의문이 든다. 그것이 제정 60년을 기념도 환호도 없이 지나가도록 한 것이었나. 언급한 것처럼 이 나라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이 중요하다. 근로관계에서 노동자의 권리는 근로기준법이 정하고 있다. 그것이 최저기준이지만 근로계약, 취업규칙, 단체협약이 노동자의 권리를 세워내지 못하고 있는 조건에선 어쩔 수 없이 우리의 노동현실이다. 그러니 혼자만 떠들어댄다고 뭐라 해도 나는 다시 근로기준법을 말하겠다. 근로시간 규제로서 기능을 상실한 노동제, 정당한 법정외근로의 대가로서 산정기준이 되지 못해온 통상임금 등 임금제, 사용자 일방이 제정변경권한을 갖는 사업장의 법, 취업규칙에 복종해야 하는 취업규칙제. 60년 전 제정 근로기준법이 설정해놓은 이 빌어먹을 설계도에서 벗어나야 이 나라에서 노동자권리는 바로 세워질 수가 있다. 노예계약의 의혹을 벗고서 근대의 노동계약으로 확립해내는 길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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