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승
현대차
사내하청 해고자

“젊은이들이 사회에 대한 무관심을 버리고 인권을 위협하는 것에 분노해야 한다”고 주장한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는 그가 죽은 뒤 더 회자되고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분노하는 데 인색한 탓이다. 40일(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 동안 단식을 했지만 100일(지율 스님) 넘게 한 사람이 있으니 익숙해졌기 때문인가. 철탑농성이 210일(현대차 비정규직 최병승·천의봉)을 넘어가고 있지만 309일(한진중공업 김진숙) 동안 하늘에 매달려 있던 노동자가 있었으니, 아직 분노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마치 기행을 좇는 사람들처럼 누가 더 오래 버티는지 구경하는 것 같다. 목숨을 건 노동자들에 대해 분노하지 않는 민주노조와 우리 사회를 보면서, 다시 투쟁을 호소하고자 몇 글자 적고자 한다.

95년 5월12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정문에서 해고노동자 양봉수 열사는 경비대를 동원해 폭행하며 노조활동을 탄압했던 현대차에 저항하며 스스로 몸에 불을 붙였다. “조합원을 사랑한다”는 양봉수 열사는 그해 6월13일 끝내 사랑하는 조합원들의 곁을 떠났다.

양봉수 열사가 분신하자 현장노동자들은 “어용 집행부 퇴진”을 요구하며 자발적으로 파업에 돌입했다. 학생들은 양봉수 열사를 분신하게 만든 현대차의 노조탄압을 폭로하고 규탄하기 위해 전국 영업소에 화염병을 던졌다. 시민·사회단체는 전국에서 대규모 집회를 개최했다. 한 노동자가 울산에서 시작한 저항은 전국으로 확산됐다. 이러한 분노에 당황한 것은 현대차와 어용노조밖에 없었다. 현대차노조 파업에 경찰력이 투입됐고 어용노조는 불법파업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18년이 지난 4월16일 기아차 광주공장 사내하청노동자 김학종 동지가 “자녀에게 비정규직을 물려줄 수 없다”며 분신했다. 기아차는 불법파견 은폐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했다. 기아차지부 광주지회는 자녀까지 대를 이어 정규직이 될 수 있는 ‘장기근속자 신규채용 합의’가 알려지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투쟁은 확산되지 못했다. 우월적인 힘을 가진 기아차지부 광주지회는 교섭중단을 선언하면서 사내하청분회를 압박해 이달 6일 합의에 이르렀다. 기아차 광주공장 안전환경팀 유삼용 부장과 기아차지부 광주지회 국정민 노안1부장이 서명한 합의 내용은 이렇다.

“광주공장 노사는 2013년 4월16일 발생한 사내협력사 케이기업 직원 ‘김학종 조합원의 사고’와 관련해 다시는 이러한 안타까운 일이 발생돼서는 안 된다는 점에 대해 인식을 함께하며, 해당 인원의 조속한 쾌유를 위해 적극적인 관심과 함께 공동의 노력을 기울인다.”

이번 합의로 김학종 조합원 분신은 개인적 ‘사고’가 됐고, 기아차는 면죄부를 받았다. 노사는 사고를 안타까워하며 불우이웃 돕기를 하듯 공동모금과 물품 판매를 통해 치료비와 생계비를 지급하기로 했다.

김학종 조합원은 왜 분신을 했을까. 건강이 회복된 뒤 케이기업에 원직복직하고, 치료비와 생계비가 필요했다면 김 조합원은 분신하지 않고 케이기업에서 그냥 일했을 것이다. 그가 분신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는 세 차례나 “자동차 생산공정에는 도급이 존재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는데도, 불법파견을 부정하면서 특별교섭을 중단한 채 신규채용을 강행한 기아차 때문이다. 하지만 합의서 어디에도 기아차의 사과와 책임은 없다.

어떻게 이런 합의서에 노조가 동의했을까. 어용노조가 아니라면 분신한 노동자가 사내하청 노동자이기 때문인가. 도저히 분하고 억울해서 잠을 잘 수가 없다.

더 절망스러운 것은 한 노동자가 분신을 했는데도, 게다가 ‘개인적 사고’로 폄훼한 합의를 했는데도 침묵하는 우리 모습이다. 18년 전과 너무나 다른 사회적 태도도 절망스럽긴 마찬가지다. 법을 어기고, 폭력을 행사하고, 불법을 은폐하면서 일상적으로 차별을 고착화하는 정몽구 회장의 불법경영으로 촉발한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의 분신과 현대차 촉탁계약직의 죽음, 그리고 200일이 넘는 철탑농성에 세상은 너무나 조용하다.

현대·기아차그룹의 불법행위로 사내하청 노동자가 분신하고, 법원판결 이행을 요구하는 철탑농성과 양재동 본사 앞 아스팔트 위에서 비를 맞는 노숙농성이 진행되고 있다. 현대제철 사내하청 노동자 5명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어도 투쟁을 하나로 묶어 내지 못하는 무늬만 산별인 금속노조. 비정규직 철폐를 주장하지만 정파갈등으로 지도부도 뽑지 못하는 민주노총의 모습을 보면서 사회적 관심과 분노를 말하는 것이 사실 부끄럽다.

그래도 “분노하자”고 외칠 수밖에 없다. 사회적 분노가 모아지지 않으면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더 많이 죽거나 다치고 거리에 있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18년 전 양봉수 열사의 외침에 공장을 세우고, 민주노조를 만들고, 더 이상 노동자를 죽이지 말라는 사회적 분노가 들끊었던 것처럼 김학종 동지의 외침에 우리는 답해야 한다. 850만 비정규 노동자가 더 이상 죽음을 선택할 수 없게 우리는 분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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