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은 이제 꿈만 같은 이야기다. 남북은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서로의 처지를 인정하고 입장을 존중해 왔다. 선언문을 만들 때는 작은 문구 하나까지도 협의를 통해 결정했다. 그리고 작게나마 곳곳에서 화해와 협력을 위한 발판을 만들어 왔다.

그런데 남북화해의 상징인 개성공단이 폐쇄됐다. 남북 간 화해·협력의 노력이 잠깐 멈춘 것이 아니라 ‘폐쇄’된 것이다. 개성공단을 누가 멈추게 했는가. 개성공단의 역사를 이대로 멈추게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남과 북, 누구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개성공단은 남북관계 위기 속에서 마지막까지 지켜졌던 보루였다. 천안함·연평도 사건 때도 중단되지 않았다. 오히려 국내 및 대외적으로 남북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역할을 해 왔다. 서해가 남북관계의 긴장상태를 보여 주는 바로미터였다면, 개성공단은 남북의 화해노력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남측 노동자도, 북측 노동자도 모두 일터를 잃었다. 노동자가 일터를 잃었다는 것은 생존의 수단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가발을 만들던 노동자도, 건물을 짓던 노동자도, 전기설비를 정비하던 노동자도, 개성공단 노동자들에게 밥을 해 주던 노동자도 이제 자신의 일터로 돌아가지 못한다. 돈을 벌 직장이 없어졌다는 말이다.

개성공단의 연간 생산액이 2012년 기준 4억6천950만달러라고 한다. 단순 추산으로도 하루 128만달러씩 생산 차질을 보게 된다. 개성공단기업협회측은 입주기업과 연계된 국내 하도급업체까지 계산하면 수천개 업체에서 근무하는 1만5천여명의 근로자들이 영향을 받게 된다고 밝혔다. 2009년 한 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개성공단이 폐쇄되면 협력업체 동반 부도로 인한 직접적인 경제 피해만 6조원에 달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이는 남측 이야기다.

북측은 어떨까. 개성공단에 근무하는 노동자는 5만3천명이 넘는다. 가족까지 합하면 수십만 명이 동반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경제적인 측면을 따진다면, 연간 9천만달러의 현금손실이 예상된다.

이런 예상은 대부분 개성공단이 폐쇄 ‘위기’에 직면했을 때 얘기다. 하지만 지금은 실제 상황이다. 여기에 거론된 노동자들이 모두 현실 문제에 맞닥뜨려있다.

남북관계의 지표이자 평화와 통일의 마중물인 개성공단. 이곳이 다시 열려야 하는 것에 남북 모두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개성공단이 대화의 물꼬를 트는 매개체가 된다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한 태도변화는 쉬워 보이지 않는다. 답답한 노릇이다.

게다가 우리 정부는 남북관계 위기 속에서 애먼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모임에 대해 국가보안법 혐의를 뒤집어씌워 개인의 집을 무리하게 압수수색을 하는 등 공안몰이에 혈안이 돼 있으니, 이런 행태는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거론했던 박근혜 정부가 과연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결국 평화와 통일을 거론하는 것은 나쁜 짓이라는 것을 국민에게 각인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신뢰가 생기겠는가. 신뢰가 생기길 진정 바라는지도 의문이다.

지난 8일 박근혜 대통령은 오마바 대통령과 ‘한미동맹 60주년 기념 공동선언’에서 북한 문제와 관련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및 평화통일을 위한 노력과 북핵 등 북한 문제에 대한 공동대처"를 강조했다.

하지만 한반도 위기를 해결할 구체적이고 전향적 해법은 안 보인다. 한미 정부는 북측이 먼저 올바른 결정을 내리면 대화에 응할 것이라거나, 비핵화를 비롯한 국제적 의무를 준수할 의미 있는 조치를 먼저 취하라고 촉구하고 있는데 북이 과연 이에 호응할 것인가. 대화에 전제조건이 붙는다면, 누가 선뜻 대화에 응하겠는가.

오래된 남북관계 국면 속에서 변하지 않는 해결방법은 언제나 ‘대화’였다.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진정성 있으며, 가장 효과가 컸던 방법이다. 대화의 조건은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네가 먼저 변해야 대화해 주겠다”는 것은 폭력이다.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남과 북은 개성공단에서 수없이 대화했다. 건강하고 거짓 없는 노동현장에서 상호 신뢰를 밑바탕으로 여기까지 왔다. 개성공단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이 역사가 멈추는 것은 남북관계가 다시 냉전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누가 냉전을 원하겠는가.

역사를 되돌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서로 자존심만 지키겠다는 어리석은 기싸움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지금 중요한 것은 남북관계를 평화로 유일하게 이어 온 개성공단을 여는 것, ‘평화의 지대’ 개성공단에서 남북이 대화를 시작하는 것, 그리고 화해의 노력으로 다시 노동자들이 일자리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루빨리 한반도 하늘에 따뜻한 기운이 뒤덮이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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