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노조 조합원

산업노동정책연구소와 ‘노동자 삶꿈네트워크’(준)가 올해 2월부터 매달 한 차례 개최하는 ‘노동운동의 재구성’ 정기 토론회를 <매일노동뉴스>가 지면에 중계한다. 위기에 빠진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해법을 모색하는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토론회 주최측이 정리해 연재한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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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경제민주화와 노동’ 이라는 주제로 열린 세 번째 토론회는 이종태 시사인 경제팀장의 ‘경제민주화 그리고 노동’이라는 발제를 토대로 진행됐다. 현광훈 전 공공운수노조·연맹 미조직비정규실장·이영일 사무금융연맹 조직실장·홍석범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토론회 진행은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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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단일화 안 하는 거야.”
“수서발 KTX 민영화 ○○○ 후보는 안 한대.”
“○○○으로 단일화해야 이길 수 있어.”

지난해 치러진 18대 대통령 선거 기간에 철도노조 조합원들 사이에 오간 대화는 이 세 마디가 전부였다. 민주노총이 “노동 없는 경제민주화 반대”나 “재벌개혁”을 외쳤지만, 철도노조 조합원들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민주노총의 요구는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철 지난 유행가 가사일 뿐이었다.

조합원들은 한국사회의 모든 것을 돈이 결정하고, 그래서 정치권에서 말하는 재벌개혁이니 하는 것은 단지 선거 때 표를 얻기 위한 사탕발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신문과 TV에서 경제민주화라는 말이 나와도 그들만의 말잔치라 여겼다. “어차피 돈 없으면 선거 못하는데 그 돈이 누구에게 나오겠어” 정도의 반응만 있을 뿐이다.

경제와 민주주의 … 넘을 수 없는 다리?

모두가 평등하다는 민주주의,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이 대장인 자본주의에서 경제민주화는 골목대장을 투표로 정하자는 말처럼 들린다. 돈이 많은 놈이 최고인 ‘1원 1표’의 경제 영역을 모두에게 동일한 권리인 ‘1인 1표’의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만들겠다는 것은 자본주의에서 서로 넘을 수 없는 다리처럼 보인다.

그러나 근대 이후 지금까지 모든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정부가 경제영역에 개입하고, 자본을 통제한다. 단지 각 나라의 사정에 따라 은행 및 주요 산업을 국유화하기도 하고, 노동자들의 경영참가를 보장하기도 하며, 각종 정책수단을 통해 분배의 형평성을 만들기 위한 방안을 실행했다.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헌법 119조 2항에 경제민주화 관련조항을 만들고, 각 시기마다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정책을 시행했다.

다양한 얼굴을 한 경제민주화

한국에서 경제민주화는 70년대 박정희 정부의 국가주도 경제개발과 정경유착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됐다. ‘정부로부터의 자본의 자유’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에 90년대 초 경실련·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와 개혁적 경제학자들이 관치 반대와 금융 자율화·재벌개혁을 주장했고, 정부는 부동산·노동·사회서비스와 관련한 각종 규제를 풀었다.

97년 외환위기 이후에는 국제통화기금(IMF)도 재벌개혁을 요구했는데, 이는 대기업을 관치와 기업집단에서 해방시켜 주주들의 단기수익 추구에 부응하라는 요구였다. 외환위기 이후 벌어진 재벌개혁과 각종 규제의 철폐는 정부와 사회가 아니라 주주의 단기이익을 위한 경영으로 전환하게 하고, 산업과 금융 등 사회 전반에 ‘수익성 우선’ 이라는 주주자본주의를 안착시켰다. 이렇듯 경제민주화는 시대적 상황과 이해집단에 따라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지난해 18대 대통령선거에서 경제민주화는 97년 외환위기 이후 전면화된 신자유주의 정책에 따른 사회양극화와 빈곤화의 심화, 가계부채의 거대화에 따른 금융시스템의 위기, 내수붕괴로 인한 자본축적의 위기, 세계경제의 연속되는 위기와 장기침체 등 세계경제와 수출주도의 한국경제가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제기됐다. 겹겹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재벌개혁·양극화 해소·일자리 창출·복지 확대 같은 다양한 논의가 대선이라는 허공을 떠돌았다.

가장 많이 논의된 재벌개혁 역시 재벌의 탐욕에 대한 응징과 규제라는 윤리적 관점, 성장엔진인 재벌을 향한 정치적 개입은 곤란하다는 실용적 관점, 창조경제 식의 신산업정책으로 환원하려는 방안 등 논란만 무성했다.

진보적 경제민주화’ 의제화 못한 민주노총

외환위기 이후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는 어땠나. TV 인기 드라마 ‘직장의 신’에서 나오듯 우리나라 국민의 소원은 ‘통일’에서 ‘정규직화’로 바뀌었다. 자본에 의한 양극화와 빈곤화가 개개인의 삶을 통째로 앗아 간 상황에서 고용된다는 것, 그것도 안정적인 정규직으로 고용되고 회사가 주는 복리후생에 만족해야 하는 숙명에 처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대선 기간에 민주노총은 ‘노동 없는 경제민주화’에 반대하며 각 산별노조의 목소리를 모아 요구안을 만들어 발표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철도·가스·전력·의료·물 민영화 반대, 원·하청 불공정거래 근절, 자본시장법 전면 재개정을 포함한 금융공공성 강화 등이 요구안에 포함됐다.

그러나 이러한 백화점 식 요구는 조합원들이 절실히 바꾸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를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진보적 관점의 경제민주화가 무엇인지 구체화하지도, 쟁점화하지도 못했다. 신자유주의에서 비롯된 각종 사회문제가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관철되고 있고, 노동자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그동안 각 산업은 어떻게 대응했고,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를 제시하지 못했다.

노동의 관점에서 경제위기 극복방안 찾아야

이번 토론회에서 현광훈 전 공공운수노조·연맹 미조직비정규실장은 “경제민주화의 기본 프레임은 시장경제-공공경제-사회경제의 균형적 체제를 지향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내수주도·소득주도의 경제구조를 바탕으로 공공경제와 사회경제를 빠르게 확장해 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노동의 관점에서 현재의 위기를 넘어서기 위한 다양한 대안과 실천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자본주의는 자본과 노동이 함께 존재해야 굴러간다. 자본 없는 노동도, 노동 없는 자본도 불가능하다. 야누스 얼굴, 그 자체다. 앞과 뒤가 함께 존재하는 것, 자본은 노동을 전제로 존재하고, 노동은 자본을 전제로 존재한다. 이를 선과 악이 함께 붙어 있는 ‘아수라 백작’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가.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이분법을 넘어서고자 하는 노동의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성장과 발전이라는 강박관념에서 저성장, 아니 비성장과 생태를 중심으로 사고를 전환할 필요가 있다. 고용의 문제에 대해서는 기업의 임금과 국가의 복지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하고, 자본에 종속되지 않는 생산과 고용·소비를 모색해야 한다. ‘자본=노동’이라는 공식에서 벗어나려는 사회적 실천이 필요하고 이를 위한 노동운동의 재구성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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