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노동정책연구소와 ‘노동자 삶꿈네트워크’(준)가 올해 2월부터 매달 한 차례 개최하는 ‘노동운동의 재구성’ 정기 토론회를 <매일노동뉴스>가 지면에 중계한다. 위기에 빠진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해법을 모색하는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토론회 주최측이 정리해 연재한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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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16일 진행된 두 번째 토론회는 ‘금융위기 이후 세계 자본주의의 변화와 노동의 대응’이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이 ‘금융위기 이후 금융 자본주의: 자본 대 사회’에 대해 발제하고, 조상수 전 공공운수연맹 수석부위원장·이종탁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이한진 사무금융연맹 정책기획실장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박근태 전 금속노조 부위원장이 사회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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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금융위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때 많은 사람들이 ‘시장의 실패’를, 그리고 ‘국가의 귀환’과 ‘신자유주의의 파산’을 이야기했다. 일부는 ‘자본주의의 종말’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몇 년간 진행된 양상은 많은 이들의 예상과 달랐다. 많은 사람들이 준거의 틀로 삼았던 1929년 대공황과 달리 연쇄 파산과 경제의 붕괴, 공황(panic)과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았다. 게다가 주식시장과 금융자본은 위기 이전의 수준을 거의 회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어느 전문가도 위기가 끝났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다수는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대다수 민중의 삶의 위기는 지속되는데, 위기의 주범으로 몰렸던 금융자본은 되살아나고, 경제는 여전히 불황의 터널 속을 헤매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자본주의는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노동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이것이 두 번째 토론의 주제다.

자본주의 위기관리 시스템의 진화와 자본의 위계적 질서

이번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자본주의의 위기관리 능력이 대단히 뛰어나다는 것이 확인됐다. 이에 대해 홍기빈 소장은 “20세기 중반 이후 사회적으로 신용과 유동성을 조직하고 생산하고 유통·분배하는 메커니즘은 극도로 세련되게 체계화했다”며 “예전에 금융위기는 아무도 통제하고 개입할 수 없는 혼란과 무질서를 가져왔지만 오늘날에는 다르다”고 진단했다. 정부의 조세권을 기초로 중앙은행을 정점으로 하는 은행 네트워크가 존재하며, 이를 중심으로 기업과 여러 경제단위들의 네트워크가 펼쳐진다는 설명이다. 중심부(대규모 금융기관들과 기업들, 중요한 정부 프로젝트들)는 압도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으며 자신들의 내부에서 발생한 위기와 리스크를 우선적으로 떨쳐 버릴 수 있는 특권적 위치에 있다는 분석이다. 위기 속에 주변부는 희생되지만, 중심부는 공적자금으로 부채와 위기를 털어 내면서 여러 번의 양적 완화에 힘입어 오히려 호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부문 손실 전가를 통한 자본의 위기 탈출

은행 시스템 자체가 붕괴할 정도로 과도한 부채와 거품이 발생한 상태, 즉 총체적인 금융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자금은 결국 세금이다. 자본가들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무작위의 인민대중 전체가 갹출해 돈을 대는 셈이 된다. 하지만 이 돈은 본래 사회의 필수불가결한 유지·보수 비용이고, 이렇게 다른 용도로 크게 빠져나가게 되면 이는 사회지출 감소, 공공서비스 악화 등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조세에 버금갈 만큼 안정적인 수익의 흐름을 낳는 각종 공공서비스 등은 오히려 헐값에 민영화되거나 갖가지 방법으로 자본화돼 대자본의 부채를 해소하는 데 쓰이게 되며, 이는 각종 요금상승의 형태로 다시 사회를 압박한다. 이렇게 수탈한 유동성은 화폐 네트워크의 중심부로부터 불균등하게 배분될 것이다. 결국 대자본은 국민의 ‘혈세’로 위기에서 탈출한다. 경제위기 때도 국가는 자본에 대립하는 존재가 아니다.

민간산업 부문의 변화와 노동의 불안정화

금융자본주의에서는 금융적 명령, 다시 말해 자본시장에서의 가치상승이라는 지상명령에 따라 기업들이 비용절감에 매달리고, 거의 모든 주요 자원의 시장이 독과점화돼 있는 상태에서 비용절감이란 사실상 인건비를 줄이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제2차 산업혁명까지는 기술혁신의 성격이 주로 물리학적·화학적 과정에 대한 개입과 지배에 맞춰져 있었던 반면 컴퓨터와 정보지식 등 소위 3차 산업혁명에서는 혁신의 초점이 되는 곳이 노동의 조직 그리고 물자와 정보가 이동하게 되는 사회적 과정에 대한 개입·지배가 된다. 산업조직 전체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위치는 더욱 왜소화질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대규모 해고와 노동력의 불안정화(casualization)가 나타나게 된다.

금융자본주의의 위계적 구조와 노동의 양극화

전통적으로 자본과 노동은 생산과정에서 대립적으로 맞서는 주요한 두 개의 존재 혹은 사회세력으로 전제돼 왔다. 사회 전체가 ‘생산’ 활동에 종사하는 하나의 ‘공장’이라고 여겨졌던 이른바 ‘산업사회’ 모델이다.

21세기의 금융자본주의 현실에서 생산은 한 사회가 아닌 지구 전체 차원에서의 노동분업으로 조직된다. 선진국의 경제는 이러한 지구적 생산을 지배하고 분할·재분할하는 금융자본의 활동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금융자본의 축적은 ‘산 노동’의 착취라는 좁은 틀이 아니라 생산부문 전체 그리고 사회 전체를 권력적으로 종속시켜 자신의 금융적 축적이라는 목적에 맞게 최대한 사회와 생산 전체를 재구조화해 나가는 것을 활동의 본업으로 삼는다.

금융자본주의에서는 금융네트워크의 중심에 해당하는 기관 및 조직들이 있고 그것과 거리가 먼 기관과 조직들이 있다. 전자에 종사하는 ‘임노동자’들과 후자에 종사하는 ‘임노동자’들은 이와 같은 금융자본의 조직에 있어 과연 어떤 동질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노동시장의 분절 혹은 양극화는 금융자본주의의 위계적 구조에 조응한다. 오늘날 다수가 겪고 있는 노동의 불안정성은 한때 ‘계급적 단결’의 기초로 이야기되기도 했지만 지금 현실에서는 오히려 원심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자본에 맞서는 사회의 재구성

상당 기간 지속될 지구적 차원의 디레버리징(부채 해소 과정)은 사회 전반에서 다양한 형태로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고 사회를 피폐하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이에 맞서 다양한 형태의 저항과 사회 재구축 노력이 벌어질 것이다.

‘노동’의 진정한 존재는 바로 그렇게 사회 전체에 퍼져 다양한 형태로 금융자본과 맞서고 있는 다양한 운동들 속에 있다고 봐야 할 듯하다. 그 사람들 스스로가 노동자이기도 하지만 노동이 ‘생산자’로서의 정체성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도 한 사람의 사회 성원이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은 금융자본과 효과적으로 맞서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 차원의 연대로 스스로를 폭발적으로 확장해야만 한다.

노동과 노동운동의 사회적 재구성

‘사회운동으로서의 노동운동’과 ‘사회운동노조’라는 주장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산업사회의 자본 대 노동’이라는 구도를 넘어 금융자본주의 시대에는 ‘자본 대 사회’를 중심으로 사고해야 하고, 노동은 이 속에서 재구성돼야 한다는 주장은 근본적이고 과감하다. 그렇다면 노동운동은 각종 사회운동을 부문운동으로 여기며, 스스로 중심을 자임하는 모습에서 벗어나 사회운동의 일부로 본래 모습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노동이란 무엇인가. ‘형벌·저주로서의 노동’부터 ‘인간해방의 본질적 수단으로서의 노동’까지, 유급 노동만이 가치가 있다는 인식부터 ‘인간의 의식적 활동은 모두 노동’이라는 주장까지 노동에 대한 다양한 이해가 있다. 노동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것도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

이 글의 토대가 된 발제자 홍기빈 소장의 주장과는 다른 맥락이지만 사회(적 생존)권 없는 노동권은 노동의 의무에 불과하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동의 정치화’가 아니라 ‘노동의 사회화’라는 주장도 적극 검토할 만하다.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의 맥락에서든, 우리 사회 현실에 대한 인식의 맥락에서든, 기존 노동운동에 대한 평가의 맥락에서든 노동과 노동운동의 사회적 재구성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노동운동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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