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
 울산저널
편집국장

2011년 10월 서울 강남의 한 빌딩 주변 정화조에서 60대 중후반 여성의 시신이 발견됐다. 시신의 신원은 18개월 전인 2010년 4월20일 행방불명된 이 빌딩 주차장 청소미화원 이아무개씨였다. 이씨는 당시 66살이었다. 시신은 정화조 안의 오·폐수 속에서 1년 반이나 방치돼 있었다. 부검을 했지만 사망원인을 밝히기엔 역부족이었다.

경찰은 이씨가 행방불명된 2010년 4월20일 상황에 주목했다. 경찰은 그날 이씨가 일하던 주차장의 맨홀 뚜껑이 열린 채 방치된 사실을 알아냈다. 빌딩 시설 하자보수를 담당하던 40대 최아무개씨가 행방불명 5일 전 맨홀 뚜껑이 깨진 걸 발견했지만 곧바로 수리하지 않았다. 최씨는 안전표지판을 세우는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런데 때마침 맨홀 뚜껑은 이씨가 행방불명된 바로 그날 오후에야 새 것으로 교체됐다.

맨홀 아래엔 깊이 3.5미터 정화조에 오·폐수가 가득 차 있었다. 누구라도 빠지면 쉽게 헤어 나오기 힘든 구조였다. 60대 후반인 청소미화원으로선 힘들 수밖에 없다. 이씨의 시신은 바로 오·폐수 속에서 발견됐다. 경찰과 검찰은 이씨가 20일 오전 맨홀에 빠져 숨진 걸로 보고 열린 맨홀 뚜껑을 방치했던 최씨를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1·2심 법원은 최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4부는 이달 1일 2심 선고 공판에서 최씨에게 1심과 같은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최씨가 수리 전 나무합판으로 맨홀 뚜껑을 덮어 두기도 했기에 당시 맨홀이 열려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이어 “이씨가 사망한 뒤 유기된 것인지 살아 있는 상태에서 정화조에 빠진 것인지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내용은 연합뉴스가 2심 재판 직후인 1일자 오전 10시10분에 쓴 <맨홀 아래서 발견된 미화원 사망 미스터리> 기사와 국민일보가 같은날 저녁에 올린 인터넷 기사를 종합한 것이다.

연합뉴스와 국민일보의 기사에선 “네덜란드 국왕 즉위식에 참석한 영국 왕세자 부인 카밀라의 몸매가 좋아 화제가 되고 있다”는 조선일보의 2일자 30면 기사보다 훨씬 진정성이 느껴진다.

법원도 고심한 여러 흔적이 보인다. 최씨의 과실이 이씨의 죽음을 불러왔다는 정황증거 외에 확실한 물증을 잡기 어려웠을 것이다.

연합뉴스가 1일 오전에 보도한 이 사건을 대부분의 일간신문이 다음날인 2일자에도 보도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청소노동자의 억울한 죽음에 침묵하는 우리 언론의 태도가 괘씸하다. 진보를 자처하는 신문들도 침묵했다.

국민일보의 보도도 아쉽다. 국민일보 인터넷판에 나온 법원의 판결 취지만 본 독자라면 쉽게 최씨의 무죄를 단정하기 어렵다. 국민일보 2일자 종이신문 8면에 실린 기사의 끝부분을 읽어야 법원의 고뇌를 다소 이해할 수 있다.

2일자 국민일보 8면엔 법원이 “이씨가 실종된 지 6개월 뒤인 2010년 10월에도 정화조 청소를 했는데 그 땐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점”에 주목했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씨가 실종된지 6개월 뒤 정화조 청소에선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왜 이 중요한 팩트가 국민일보 인터넷판엔 없고 종이신문에만 실렸는지도 궁금하다.

숨진 이씨나 과실치사 혐의를 받은 최씨 모두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라서 우리 언론이 소홀히 한 건 아닌지 못내 아쉽다.

울산저널 편집국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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