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승
현대차 사내하청
해고자

1880년대에 전 세계 노동자의 ‘하루 8시간 노동제’ 쟁취 투쟁을 지지하기 위해 1889년 제2 인터내셔널이 5월1일을 “국제적인 대투쟁의 날”로 결의한 것이 올해로 123주년을 맞이하는 ‘노동절’의 유래다.

투쟁은 탄압을 의미하기도 하기에, 노동절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동자들의 피값이 있었다. 현대자동차 투쟁도 마찬가지다. 10년을 싸우는 동안 많은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었다. 노동절 주간에 현대차 불법파견 투쟁을 끈질기게 이어갈 수 있도록 만든 해고노동자들의 삶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해고자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29일 기준으로 현재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 해고조합원은 103명이다. 2003년 노조설립 때부터 2010년 울산공장 25일 점거파업까지 해고된 노동자 161명 중 아직까지 조합비를 납부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해고 사유도 다양하다. 2003년 노조 설립, 2003~2005년 파업, 2008년 고용위기 고용조정, 2007년과 2010년 업체 폐업, 2005년과 2010년 불법파견 정규직화 파업 등. 계약해지·정리해고·징계해고 등 한국사회에서 나타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해고가 포함돼 있다.

이렇게 많은 해고자가 발생한 것은 현대차가 비정규 노동자의 단결을 방해하고 불법파견을 은폐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먹고살기 어려우면 아무리 ‘법으로 이길 수 있다’고 하더라도 도중에 포기하고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이 노동자의 현실이다. 현대차의 의도는 상당부분 적중했다. 해고조합원 중 3분의 1이 현대차에 대한 저항을 중단하고 조합원 자격조차 유지하지 않고 떠났다. 또 다른 3분의 1은 조합비만 납부하며 생계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 3분의 1만 아직까지 저항하고 있다. 이것도 해고되지 않은 조합원들이 매달 3만원씩 납부하는 생계기금과 많은 분들이 지원하는 투쟁기금 탓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 돈으로 해고자들은 한 달 생계비로 70만원가량을 받고 있다. 그러나 해고기간이 계속 길어지다면 현실의 벽 앞에서 투쟁을 포기하는 해고자들이 더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

올 1월 현대차가 정규직으로 인사명령을 냈지만 불법파견 투쟁이 끝날 때까지 일을 할 수 없는 필자도 9년 동안 해고자였다. 해고생활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많은 분들이 도와줬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차비정규직지회 1공장 조합원들과 정규직 현장 활동가들은 9년 동안 필자의 밥값·술값·생계비를 지원했다. 어려울 때마다 함께 위로해줬으며 아프면 병원에 데려갔다. 필자 어머니의 표현처럼 “가족보다 더 많이 챙겨준 고마운 분들”이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대법원에서 ‘현대차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라는 판결을 받았다. 만약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대법원 판결도 없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 필자는 올 1월 현대차로부터 인사명령을 받았다. 포기하지 말라며 격려하고 지원했던 조합원들은 대부분 해고자가 됐다. 그들은 지난 22일부터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앞 아스팔트 위에 앉아 “모든 사내하청 정규직 전환과 정몽구 회장 구속”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9년 동안 도움을 줬던 동지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함께 비를 맞으며 노숙농성을 할 수도 없고, 따뜻한 음료수와 밥 한 그릇 사줄 수도 없다. 먼 곳에서 보내주는 투쟁 사진을 보면서 하염없이 안타까워하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뿐이다. 고생하는 동지들에게 “우리 포기하지 말자”는 문자와 전화통화 밖에 할 수 없다. 그래서 슬프다.

해고자는 자기만 살겠다고 투쟁하지 않았다. 노동자 단결을 위해 싸웠으며 “함께 살자”고 말했고, 지금도 포기하지 않고 투쟁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현대차 불법파견 투쟁이 비정규직 문제해결에 기준점이라 말한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투쟁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기준을 만들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해고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투쟁은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투쟁을 하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이러한 침묵은 “해고자는 조합원이 아니라 외부세력이고, 정치적 욕심이 있다”는 자본의 거짓선전이 여과 없이 언론에 나오게 하는 원인이 된다.

해고자는 신이 아니다. 해고되기 전에는 투쟁에 앞장설 것을 요구받고, 해고된 뒤 스스로 생계 문제를 해결하고, 투쟁도 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와 같은 사람이자 노동자이고 한 가정의 구성원이다. 자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저항을 포기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해고되기 전에도, 해고된 후에도 앞장서 투쟁하는 해고자들에게 빚을 갚아야 한다.

현대차비정규직지회 해고자들이 서울 양재동에서 비를 맞으며, 천막 하나 없이 몸뚱이 하나로 버티고 있다. 필자는 한국사회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포기하지 않는 현대차비정규직지회 해고자를 더 이상 외롭게 하지 말자고 호소한다. 그리고 매일 저녁 7시 양재동 본사 앞에서 열리는 촛불 문화제에 많은 분들이 참석하고, 필자가 가져다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따뜻한 음료수와 밥 한 그릇을 대신 전해 주는 기적이 일어나길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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