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관홍
공인노무사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근로기준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연차 유급휴가에 대해서는 그 사용이 이뤄지지 않아 발생하는 수당 청구권 및 사용자의 사용 촉진 등과 관련된 문제점들 위주로 논의돼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아직까지도 그 휴가 사용 자체가 문제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노동자가 원하는 시기에 휴가를 가고자 해도 사용자가 특별한 이유 없이 그 사용을 불허하거나 휴가시기를 임의로 변경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원칙적으로 연차휴가는 노동자의 권리이므로 노동자의 청구가 있는 시기에 발생한 휴가일수 안에서 청구한 만큼 줘야 한다(근로기준법 제50조 제5항). 이렇게 휴가시기를 근로자가 정할 수 있는 권리를 ‘시기지정권’이라 하고, 노동자는 임의적·일방적으로 그 희망하는 시기를 특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 등에 “노동자가 연차휴가를 얻기 위해서는 사용자가 노동자의 휴가신청을 승낙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더라도 사용자의 시기변경권 행사가 인정될 만한 사유가 없으면 노동자는 이러한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 등에 구애받지 않고 사용자의 승낙 없이 본인이 지정한 시기에 휴가를 보낼 수 있다.

그런데 근로기준법에서는 이에 대한 예외로, 노동자가 청구한 시기에 휴가를 주는 것이 사업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을 때에는 사용자가 그 시기를 다른 시기로 변경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는데 이를 사용자의 ‘시기변경권’이라 한다. 문제는 이러한 사용자의 시기변경권 행사가 남용되는 부분에 있다.

사용자가 시기변경권을 행사할 수 있는 요건은 노동자의 연차휴가 사용으로 ‘사업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인데, 이는 노동자가 지정한 시기에 연차휴가를 실시함으로 말미암아 그가 담당하고 있는 업무가 바로 그때 시행되지 않게 될 경우, 그 시점에서의 업무상황으로 미뤄볼 때 그 노동자가 소속한 사업장의 업무능률이나 성과가 평상시보다 현저히 저하돼 상당한 영업상의 손실이 초래될 것으로 염려되거나 그러한 개연성이 엿보이는 사정이 있는 경우를 말한다.

어떤 노동자가 연차휴가를 실시함으로써 작업인원이 감소돼 남은 노동자들의 업무량이 상대적으로 증가한 것만으로는 “사업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라고 할 수 없고(즉, 돌발적인 사태가 발생해 노동자의 업무량이 평상시보다 현저히 증가된 경우에 국한돼야 함), 사용자가 연차휴가를 사용하고자 하는 노동자의 근무를 대신할 수 있는 대체근무자의 확보를 제대로 하지 아니함으로써 연차휴가일에 작업수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작업인원에 결원이 생겨 발생하는 사업운영의 차질 또한 “사업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로 볼 수 없다.(서울행법 1999. 9. 17. 선고 99구8731 판결<확정>)

다만, 근로자가 담당하는 업무의 성질상 그 업무가 특정한 시기에 그 근로자에 의해 실시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에 그 근로자가 그 특정시기와 겹쳐 연차휴가시기를 지정하게 되는 경우나, 동시에 다수의 근로자가 시기를 지정해 통상적인 범위의 대체근로자를 충원하고도 작업수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이 모자라는 경우에는 사업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에 해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노동자는 자유로이 연차휴가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하며, 사용자의 연차휴가 시기변경권 행사는 엄격한 요건하에서만 가능한 것으로 봐야 한다.

참고로 대법원은 “사용자가 근로자의 연차 유급휴가권의 행사를 사전에 혹은 행사시에 억제한 경우, 즉 사용자의 시기변경권이라고 해석해 그 적법성을 논할 필요도 없이 근로자의 연차휴가 시기지정권의 행사 자체를 방해하는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의 경우에는 근로자의 시기지정권의 행사가 적법한 요건을 갖췄는지 여부에 관해 더 나아가 판단할 필요 없이 법 위반죄를 구성한다”고 했다.(대법원 2000. 11. 28. 선고 99도317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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