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문명정책연구원

"내일 오전 베이징행 비행기를 타요. 25일 덩 웨이원 공산당 중앙당학교 교수를 만나기로 했어요. 덩 교수가 올 2월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에 기고한 '중국은 북한을 포기해야 한다'는 제목의 칼럼을 보고 그를 만나야 겠다고 결론을 내렸지요."

한반도가 일촉즉발의 전쟁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장기표(68) 신문명정책연구원 대표는 "전쟁위기의 본질을 제대로 보려면 중국을 먼저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는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는데 가장 심기가 불편한 나라는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라며 "진보진영도 현재의 긴장국면을 정확히 바라보지 못하고 있어 북한정권의 반민족행위를 은폐하는데 일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 대표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올해 마흔 넷의 젊은 중국 공산당 논객을 만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미국이 아니라 중국을 남북 긴장고조의 진앙지로 꼽는 것일까. <매일노동뉴스>가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신문명정책연구원 사무실에서 장 대표를 만났다.

"북한 핵, 중국 국가안보에 중대한 위협"

- 최근 연구원 홈페이지 '장기표의 시사논평(www.weldom.or.kr)에 잇따라 북핵문제와 관련한 논평을 냈는데, 23일 베이징행 비행기 티켓을 끊은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나.

"중국 출장의 목적은 덩 웨이원 공산당 중앙당학교 교수를 만나기 위해서다. 덩 교수가 2월28일자 <파이낸셜 타임즈>에 쓴 칼럼을 보고 중국을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덩 교수는 칼럼에서 '북 핵무기 개발은 미국과 동등한 협상 지위를 가지려는 환상에 기초하고 있다'면서 '중국이 북한의 요구에 불응하거나, 미국이 호의를 보인다면 핵을 가진 북한이 중국의 팔을 비틀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북한을 버리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남한과 북한이 통일되도록 중국에서 주도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덩 교수는 이 칼럼을 이유로 중국 공산당 중앙당학교가 발행하는 <학습시보> 부편집인 자리에서 직위해제 됐다. 중국 정부와 입장이 달랐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덩 교수의 칼럼이 중국의 입장을 대변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 시기 중국 공산당의 지식인의 입을 통해 이런 지적이 나왔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 어떤 측면에서 중요하다는 말인가.

"올 초 발간한 '문명의 전환, 새로운 비전'이라는 책에서 나는 우리 민족통일의 문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나라로 중국을 지목한 바 있다. 일반적으로 중국과 북한을 혈맹관계로 본다. 나는 그것이 착각이라고 말하고 싶다. 중국과 북한은 결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세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중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둘째 중국은 북한이 개혁·개방 하지 않는데 불만이 크다. 셋째 북한은 핵을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으며 개혁·개방도 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북이 핵무기를 보유하면 중국의 국가안보에 중대한 위협이 된다. 100개가 있든 2개가 있든 핵은 핵이다. 중국의 수도 베이징은 북한에서 불과 7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코 앞에 있는 핵무기가 있는데 중국 입장에서 매우 불편하지 않겠나."

"중국이 핵무기를 반대하면 북한은 미국 편에 설 수도 있다"

- 중국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에 대해 반대할 수 있지만, 우호적인 관계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우리나라 지식인 대부분이 그렇게 말한다. 진보진영에서도 핵 때문에 중국이 북한을 밀어내지는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하지만 나의 오랜 지론은 중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막아서면 북한이 미국 편에 설 수도 있다는 것이다.

2008년 8월 베이징에서 올림픽이 열렸다. 8월8일부터 24일까지 진행됐는데 바로 다음날인 25일 오전 10시에 후진타오 전 중국 국가주석이 서울에 왔다. 매우 이례적인 방한이었다. 국가적 행사를 치르고 바로 다음날 남한에 온다는 것은 그만큼 시급을 다투는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한-중 정상은 회담을 열어 북핵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중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나서니까 남한과 협력해 북한을 고립시키겠다는 의사표시를 한 것으로 나는 판단하고 있다."

- 북한이 중국과의 관계가 나쁘다고 해도 미국 편에 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덩 교수가 쓴 칼럼에서 2009년 평양을 방문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과 나눴던 대화 내용 일부가 공개됐다. 기억할 지 모르겠지만 당시 미국 여기자 2명이 북한에 억류되는 사태가 있었다.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은 여기자 2명의 사면협상 대상자로 클린턴 전 대통령을 지목했고, 그렇게 이뤄졌던 평양 방문에서 둘이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다. 덩 교수가 인용한 내용에 따르면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은 '6자회담'에서 북한이 탈퇴한 것은 중국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일 뿐 미국을 겨냥한 것은 아니었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한다. 심지어 워싱턴이 도움의 손길을 뻗어 주면 북한이 중국을 압박하는 가장 강력한 요새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고 한다. 북한이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핵무기를 사용할 수도 있다고 한 것이다.

중국에게 북한은 미국의 쿠바와 마찬가지의 위치에 있다. 북한의 핵무기가 워싱턴을 향할 지, 베이징을 향할 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전쟁이 난다면, 북한의 남침이 아니라 미국의 북폭"

- 현재 한반도 전쟁위기 배후에 중국이 있다는 말인가?

"전쟁위기를 북한의 남침으로 보는데 틀렸다. 미국의 북침일 가능성은 왜 보지 못하나.

전쟁이 나면 초반에는 북한이 유리할 수 있지만 전면전이 되는 순간 북한 정권은 무너지게 돼 있다. 북한체제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전면전을 왜 북한 정권이 감행하겠나.

지금 어쩌면 중국이 미국더러 북한의 핵무기 제거방안을 강구해보라고, 북폭을 사주하는 것일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이 이 문제를 놓고 비밀협상을 전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 입장에서는 손 안대고 코를 푸는 격이다."

- 그렇다면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미국 주도로 북한침략 가능성을 보지 않고 북한의 도발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게 문제다. 그러니까 재야세력도 대화하라고만 하고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개혁·개방을 거부하고 있다. 중국처럼 개혁·개방을 하면 경제가 발전하고 인민들도 먹고 살기 좋아질텐데 문호를 열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정권 유지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개혁·개방을 하면 경제는 성장하지만 자유화와 민주화 바람이 분다. 사회주의 체제도 붕괴 위기에 놓인다.

최근 개성공단 폐쇄 조치도 같은 맥락에 있다고 본다. 개성공단은 5만3천명의 북한 노동자의 일터이자 30만명의 생존권이 걸린 공간이다. 또한 남한에 대한 북한 인민들의 인식이 달라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초코파이가 개성공단을 통해 멀리 함경도까지 건너가는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개성공단을 폐쇄하는 것은 정권유지에 불안요인을 없애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번 전쟁위기 조성은 미국 침공에 대비하기 위한 측면도 있지만 개성공단 폐쇄를 위한 분위기를 조성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할 일도 명확해 진다. 북한 인민들이 남한과의 통일을 원하도록 지원하고 설득해야 한다. 남한과의 통일이야말로 전쟁위기를 근본적으로 없애는 길이다. 전략적으로 북한 인민들을 지원해서 남한과의 통일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남한의 보수세력은 대북 지원사업을 북한 퍼주기라며 비난하는데 틀렸다. 남한 중심의 통일을 위한 준비로 봐야 한다. 국정운영의 최우선과제로 통일을 추진해야 한다. 북한 정권이 급변할 경우 중국에 흡수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이런 일은 막아야 하지 않겠나. 연방제 통일은 엄밀히 말해 통일이라 볼 수 없다. 남한 진보세력은 흡수통일을 반대한다는 논리로 통일을 막아서고 있다. 오히려 지금은 북한 정권의 개성공단 폐쇄 조치 같은 남북협력사업 거부를 반민족행위라고 비판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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