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귀국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을 보면 전쟁과 민초들의 삶에 대한 생각이 일부 엿보인다.

"이건희 회장 귀국하는 걸 보니 전쟁은 안 나겠구나."

"삼성의 정보력이 국방부 정보력을 능가한다니 믿어 보자."

"요즘은 북한 기사만 나오면 이건희·이재용·이명박 근황부터 알아보게 된다니까."

"부자들은 핵전쟁이나 진도 7 이상의 강진이 발생해도 끄떡없고 200명이 두 달을 버틸 수 있는 벙커도 있다지?"

다들 냉소적인 반응이다. 한국노총은 "우리 노동자는 생산의 직접적 담당자이고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다. 또한 우리는 사회정의 실현의 선구자이고 평화의 강력한 옹호자이며 (…) 평화적인 민족통일과 세계 평화의 달성을 위해 적극적으로 공헌할 것"이라고 엄숙히 선언하면서 "노동자가 주체가 되는 민족의 자주적·평화적 통일 실현"을 강령으로 채택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선언 및 강령의 구체적 이행을 위해 통일위원회를 두고 노동자의 통일운동 역량을 강화하고 시민단체 및 통일을 지향하는 민주적 사회 제 세력과 연대해 민족의 화해, 교류협력을 추구하며, 나아가 민족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민주노총도 "전쟁과 핵무기의 위협에 맞서 항구적인 세계평화 실현"을 강령으로 채택하고 있다. 전 세계 노동조합의 총연합단체인 국제노총(ITUC)은 "평화유지 및 강화를 강력히 지지하며, 대량 살상무기 없는 세계와 전 세계 군비축소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왜, 노동자와 노동운동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옹호하는 것인가. 노동은 살아 있는 인간의 자기실현 과정이며 생산과 건설의 과정이다. 전쟁은 생명과 노동을 부정하면서 노동의 생산물을 파괴하는 죽음이다. 전쟁은 시대적으로 그 의미를 달리해 왔으나 기본적으로 기득권층의 정치적 이해를 대변하며 자본주의 및 제국주의에 있어 전쟁은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기도 한다. 그런 측면에서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 사회정의 구현의 선구자여야 할 노동의 사명과도 배치된다. 전쟁은 누구의 승리와 패배가 아니라 노동자와 서민의 희생과 죽음만을 초래한다. 모든 전쟁의 최대 희생자인 노동자와 서민이 앞장서서 막아야 한다. 노동자들은 먹고살기 바쁘다. 저임금과 세계 최장 노동시간과 고용불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일상의 노동 그 자체가 ‘전쟁’이다. 그러나 지금 한반도를 휩쓰는 전쟁위기는 생존의 문제다. ‘한반도에서의 긴장상황이 더 심각해지고 장기화할 경우에 생산기지를 이전할 수 있다’는 것이 외국 자본의 입장이다. 이를 보면 전쟁위기가 곧 생존문제이자 고용문제에 직결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전쟁은 나지 않은 채 한반도 위기와 긴장국면이 지속되면 이는 경제위기로 이어진다. 노동자들의 밥그릇이 깨어질 판이다. 생명도 잃고 밥그릇도 깨지는 파국을 의미한다. "전쟁 반대"와 "평화 쟁취"는 노동자들의 절박한 당면 요구다.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그것이 국지전이든 전면전이든 핵전쟁이든 간에 1차 세계대전 이상의 인명피해와 인류사적 대재앙이 될 것이 분명하다. 국지전이라 하더라도 남북관계는 수십 년 후퇴하고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는 더욱 멀어질 것이며 전면전으로 비화할 경우 수백·수천만명이 희생되고, 남이든 북이든 1953년 이전의 잿더미로 돌아갈 것이 자명하다. 상상도 하기 싫으나 핵전쟁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인류사에 돌이킬 수 없는 재앙과 죄업이 될 것이다.

전쟁위협을 없애고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정전협정의 두 당사자인 미국과 북한의 역할이 중요하다. 연일 협박과 전쟁위험의 수위를 높이고 있는 북한당국은 냉정을 찾아야 한다. 남북 교류와 협력의 상징이자 실질적인 성과인 개성공단 운영중단은 당장 수많은 중소기업 종사자 및 관련자들과 하루도 빠짐없이 물자를 실어 나르던 화물노동자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바, 즉각 철회돼야 한다. 미국은 핵무기를 포함한 대량 살상무기로의 위협과 전투기 판매가 아니라 한반도에서의 전쟁위험을 제거하기 위한 전 지구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북미 간의 직접대화와 남과 북, 중·러·일을 포함한 6자회담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평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우리 정부도 책임 있고 일관성 있는 정책을 통해 신뢰를 회복하고 평화체제 구축에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개성공단 문제와 같은 국민들의 일상생활과 경제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해서는 즉각 가시적이고 실효성 있는 조치를 통해 전쟁의 위험을 제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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